대물림의 굴레 / 김영미

"유난이다.”

식탁에 앉아 좀 전의 상황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중이었다.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가 들어온 남편의 얼굴을 보자마자 속사포로 던지는 나의 말을 끊고 나온 한마디다.

오전에 정수기를 설치했다. 사 먹던 물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며 일 년 만에 다시 정수기를 구매했다. 30분쯤 걸릴 거라는 기사의 말에 음료수 한 병 건네고 바람이 가도록 선풍기도 가까이 틀어 놓았다. 한참을 움직이더니 설치가 끝났다며 기능 조작 방법과 필터 교체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필터 하나를 분리하니 안에 차 있던 물이 몇 방울 떨어져 내렸다. 그걸 닦아낸다고 필터 접합부와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을 싱크대에 있던 행주로 닦아냈다.

“아, 그걸로 하시면 안 돼요.”

말이 끝나자 허둥대며 뒤에 있던 종이행주를 끊어 다시 닦아낸다. 이미 내 표정은 친절의 가면과 불편함 그 사이 어디쯤이었을 거다. 그런 어정쩡한 마음과 얼굴로 설치 기사에게 감사하단 인사를 하고 보냈었다.

“점점 장인 어르신을 닮아가냐?”

눈물 섞인 피곤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한마디 한다. 남편의 말은 방아쇠가 되었다. 점점 아버지를 닮아간다. 그럴 수 있다. 성격이라는 건 단순히 유전이라기보다 오랜 시간에 축적된 분위기와 태도와 결과인 거 같다. 말투, 표정, 상황을 대하는 방식 등 자라온 가정에서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자식에게 전해진다. 그것이 바로 대물림이다. 잠자리 바뀌면 잠을 못 자고 화장실도 가기 힘들다. 낯선 환경에 대한 경계와 예민한 반응 등은 아버지에게서 보는 모습이다.

얼마 전에 친정에 갔을 때이다. 커피를 마시려고 했더니 아버지가 식탁 위에 있던 커피포트를 얼른 집으셨다. 그러더니 위의 뚜껑을 열어 들여다보고 싱크대 앞에 가 섰다. 아버지 선에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셨으나 그 행동의 이유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해결 못하고 넘겼을 때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버지와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전기주전자 안쪽 바닥에 낀 물때가 오랫동안 신경 쓰이셨던 거다. 그렇게 일상에서 어느 하나에 신경이 쓰이게 되면 계속 예민해진다. 걱정과 불안으로 편하지 않다. 그래서 연로해진 아버지의 까다로움은 더 두드러지고 걱정이 된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신체기능은 둔해지는데 신경은 더 예민해지신다. 당신이 해왔던 습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안과 불편함을 보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 되는 예민함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는 둘째에게 오전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전체 상황에 대한 녀석의 생각이 궁금했다. 할아버지를 닮아간다는 말을 전하자 곧바로

“아니야, 독보적이지.”

라며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응수한다. 그렇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있는 녀석이다.

저 뒤편으로 사라졌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스라이 피어올랐다. 둘째 아들이 혼자 일어나 걷게 되었을 즈음에 먹을 것을 입에 넣어주려 하면 입술을 닫고 눈으로 확인하고 냄새를 맡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 난 끊을 수 없는 대물림의 굴레를 보았었다. 부모는 어릴 적에 그런 행동을 하는 내게 유난하다는 소리를 했었다. 군대를 다녀오면 괜찮으려나 했다. 웬걸 포장해 온 곰탕을 끓여 주면 냄새난다고 안 먹는단다. 놀랍지도 않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엄마도 그러니까’는 나의 속내다. 미역국을 끓이면 비린내가 난단다. 간만에 완두콩을 넣고 밥을 지었더니 특유의 냄새가 나서 안 먹는다고 한다. 섬이 고향인 아버지는 바다 음식을 좋아하신다. 그런데 비린 것은 입에도 대지 않으신다.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도 육고기보다 해물을 좋아하지만, 비린내는 영 싫다. 예를 들면 아버지 생신에 큰맘 먹고 갔던 한식집에서 식탁의 한자리를 차지했던 커다란 간장게장에 아버지와 나는 눈도 주지 않았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녀석은 어린시절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종종 아이를 바라보며 놀랍게도 나를 본다. 정확히 나의 좋지 않은 면이다.

복잡한 마음으로 식탁 의자에 앉아 싱크대 위에 하얗고 우아하게 얹어진 정수기를 바라보았다. 더운 날 설치 기사의 수고를 헛고생으로 만들지, 앞으로 물을 먹을 때마다 접합부의 균을 생각하며 마실지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어지럽다. 불편한 선택을 하는 건 나이 드니 더 어려워진다. 잠깐의 불편감을 감수할지 앞으로 몇 년 동안 찜찜함을 선택할지, 이런 일에는 빨리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옆에 놓여있던 설치 기사가 놓고 간 명함에 있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니 다른 말 없이 본인이 실수한 부분을 인정하며 새 제품으로 주문해 교체해 주겠다고 한다.

식탁에 마주 앉은 아들이 내 얼굴을 쓱 보더니 말을 잇는다.

“괜찮아 나이 들어서 아빠하고 둘이서 손잡고 다니면 되지. 아빠는 벤치도 닦아 주잖아. 난 아빠가 그런 줄 몰랐거든. 진짜 깜짝 놀랐잖아.”

가족이 공원 산책하던 중 벤치에 앉아 쉴 때 의자에 앉지 않던 나에게 남편이 한 행동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족은 마치 오래된 거울 같다. 그 앞에서 나조차 몰랐던 혹은 잊고 있던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거울 속에서 되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마주하곤 한다. 그리고 내가 걱정하는 아버지의 얼굴도 아들의 얼굴도 함께 어른거린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무의 깊은 뿌리처럼 존재하는 것, 때론 피하고 온전하게 벗어 던지고 싶어도 끊어낼 수 없다. 아이를 바라보며 앞서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아버지로부터의 그림자는 나를 거쳐 내 아이에게도 닿아있다.

버스 정거장 벤치에도 앉지 않는 아이를 바라본다.

‘너도 참 유난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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