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품고 살아가다 / 이희숙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260625/1619018

 

기쁨을 주던 통로에 가로막이 생겼다. 은퇴 후 집 마당 한 모퉁이에 갈아 일군 텃밭은 우리 부부의 일터다.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어 옥토를 조성했다. 씨를 뿌린 후 촉촉이 물을 건넸다. 갈증 난 흙 속에 물이 스며들고 뿌리가 적셔지면 초록 생명들이 깨어났다. 떡잎이 짙푸르게 자라 넝쿨을 내밀어 뻗고, 각기 다른 색으로 꽃을 피워 열매 맺을 준비에 바쁘다. 그런데 불청객이 곁에서 왕성하게 자란다.

 

바로 잡초다. 너를 어떻게 하면 좋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엎드려 호미질하는 노동이 칠십을 훌쩍 넘긴 나에겐 큰 부담이 된다. 잡초를 뽑고 나면 며칠 동안 어깨, 허리, 팔다리가 아파 절절맨다. 하는 수 없이 군데군데 모종을 심고 가까이에 있는 잡초만 뽑아 주었다. 미처 뽑지 못한 잡초가 때를 만난 듯 마구 자란다. 생존하려는 질긴 근성을 막을 수 없어, 그냥 너도 같이 자라라고 어쩔 수 없는 아량을 베풀어야 하나? 우후죽순 올라오는 잡초만큼이나 나의 머릿속도 헝클어진다. 이제 농사일을 그만두어야 할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마음에 한국 모종을 파는 화원 앞에 발걸음이 다다랐다. 호박, 오이, 가지, 근대, 고추 모종을 차 트렁크에 덜컥 싣고 말았다. 그 모종을 담아 키울 화분을 찾아낸 덕분이다. 며칠 전 홈디포에서 이층으로 만들어진 긴 화분을 발견했다. 땅에서 위로 떨어져 있어 잡초가 자리 잡을 수 없다. 다람쥐나 야생동물이 이파리를 따 먹을 수 없다. 게다가 내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는 절묘한 발상이 아닌가. 아래 텃밭에선 잡초도 기죽지 않고 자랄 수 있으니 뽑아내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제초하지 않은 게으른 농부로 비추어질까? 갈래 길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누군가 들려준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의 핵심인 4() 원칙이 떠올랐다. 이는 인간의 과도한 개입을 줄이면서 자연의 자정 작용 즉 오염된 환경이 본래 깨끗한 상태를 되찾는 자연 치유 능력을 가져온다고 한다. 생태계의 균형을 믿고 의지할 수 있어 ! 바로 이거야!’라며 무릎을 쳤다.

 

흙이 스스로 숨 쉬고 살아 움직이며, 미생물과 벌레, 식물 뿌리가 자연스럽게 토양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무경운(無耕耘)’, 농약을 치지 않고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여 해충을 스스로 조절하는 무농약(無農藥)’, ‘무비료(無肥料)’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땅심을 기른다. 덧붙여 무제초(無除草)’는 잡초를 제거하지 않고, 잡초는 흙을 보호하고 생태계 일부로서 역할을 한다. 내 지식과 욕심으로 자연을 개조하려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질서에 맡기기로 했다.

 

노동을 최소화할 수 있다. 비료를 주고 김매기 하는 작업을 덜어내어 노동력을 줄이면서도 가능한 수확을 얻는 것이다. 고생하지 않으면서 토양과 생태계를 온전히 보전하고, 자연의 리듬에 맞춰 맛과 영양을 간직한 작물을 얻을 수 있다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농작물과 잡초가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서로 다른 것이 공존하는 의미를 살펴본다. 서로 다름을 품고 어우러지는 우리네 사는 모습과 흡사하다. 어떤 사람이나 상황을 단순히 옳다또는 그르다고만 나누기는 어렵다.

 

다르게 존재하는 그 안에서 옳음을 선택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잡초 곁에서 모종이 자라나 열매를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