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그 존재만으로 / 김희숙 - 제7회 선수필 문학상
올해도 새로 산 초의 심지를 세웁니다. 성냥불이 닿자 불씨가 일며 자신을 녹이는 본성이 깨어납니다. 노란빛이 놋그릇에 일렁이며 어둠을 구석으로 밉니다. 연약한 뜨거움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나 감성을 자극하고 생각을 끌어냅니다. 은은한 단향과 구수한 냄새 풍기는 밥까지 지원에 나서면 당신을 맞을 준비가 끝납니다. 물잔과 밥솥만 놓인 간소한 제상이지만 당신은 해 년마다 기꺼운 마음으로 찾아오리라 믿고 있습니다. 문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불꽃을 키워 제사의 시작을 알립니다.
제가 당신을 부르는 호칭은 ‘외할아버지’입니다. 뵌 적 없고 존함 외에 아는 것이 없습니다. 어릴 적, 명절이나 기일에 제 어머니께서 아버지 눈치 봐가며 안방이 아닌 작은방에 제상을 차렸다는 것만 기억납니다. 그나마도 아버지의 술이 과한 날에는 부엌 한켠에 밥그릇과 물대접만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어머니를 유복녀라 불렀습니다. 어머니가 외할머니 태중에 있을 때 당신이 먼 길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장독대 뒤에서 눈물 훔치는 날이면 그제야 당신의 제삿날인 줄 알아챘습니다.
1950년, 당신은 스무 살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직후 우리 땅은 빈터와 같았습니다. 정부도 국민도 자리 잡지 못한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좌우 이념이 각자의 씨앗을 퍼뜨리려 안간힘을 쓰던 때라 나라를 주인 없는 밭으로 착각한 이들이 가만히 놔두질 않았습니다. 급기야 사상의 씨앗 뿌리기는 전쟁까지 불러왔습니다. 영광군은 한국전쟁 발발 전부터 이데올로기 갈등이 유독 심한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지리산으로 들어가지 못한 빨치산이 이 고을로 모여들면서 옹호하는 쪽과 배척하는 사람들 사이 감정의 골이 깊었습니다. 바닷가에 은둔하기 좋은 높은 산이 있고 여차하면 바다를 통해 북으로 갈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끊긴 인민군 잔당들까지 합세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곳보다 군경의 수복이 늦어졌습니다. 침략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민간인들의 희생은 커지는 법입니다.
밤에는 빨치산이, 낮에는 군경이 들어와 상대의 씨를 뽑으려 갖은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생명은 본능적으로 살 궁리부터 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어둠과 밝음 중 무엇이 먼저인지, 밤손님을 따라가야 하는지 낮손님에게 협조해야 하는지 선택을 강요하였습니다. 그 끝에 다다르면 일인 독재체제로 들어간다거나 군부의 탄압이 극심해지는 세상이 기다리는 줄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모두가 발을 땅에 닿지 못하고 황소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민들레씨 신세였습니다. 당신도 좌든 우든 가정 꾸리고 자손을 번성시킬 방향으로 몸을 틀었겠지요.
그해 겨울, 동갑내기 부인은 해산을 앞두었습니다. 초음파 기계가 없던 시절이니 성별은 몰랐을 테고 당연히 아기 머리와 손가락 발가락 사진을 보거나 심장 뛰는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겠지요. 그저 울룩불룩 움직이는 태동을 손으로 느끼며 하루하루를 꼽았을 겁니다. 당신은 어떤 아버지를 꿈꾸었습니까. ‘씨도둑은 못한다’는 말처럼 당신 닮은 다부진 어깨에 숱 많은 머리카락 가진 사내아이를 기다렸을까요. 서글서글한 눈매를 빼닮은 모습으로 방실거리는 딸을 상상하셨나요. 자식을 품에 안았더라면 분명 다정다감한 분이지 않았을까 그려봅니다. 잔가시라도 목에 들어갈까 봐 조기 살을 조심스럽게 발라 밥숟가락에 얹어 주고 앙증맞은 발로 걷는 것조차 아까워 목말 태워 다녔을 테지요. 조잘대는 아이의 웃음을 굳건히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세월이 더 흘러, 당신의 책 읽는 습관을 내림한 손자 손녀에게 여느 할아버지들처럼 한번 안아보려고 온갖 비위를 맞추거나 자전거 뒤에 아이를 싣고 논둑길을 달렸을지도 모릅니다.
씨를 말려라! 인천상륙작전 직전, 적을 속이기 위해 군산으로 유엔군이 들어왔고 잘못된 정보인 줄 모르는 군민들은 환영식을 열었습니다. 이후 외국 병사 몇이 지나갔을 뿐 여전히 빨치산 치하가 지속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의 씨앗 한 톨도 남기지 마라는 북의 지령이 내려졌습니다. 누구 하나의 이름이 뜨면 씨, 그 존재만으로 젖먹이부터 노인까지 일가친척을 모조리 잡아갔습니다. 보복의 씨를 없앤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말입니다. 그들 편에 서지 않았던 당신도 포함되었습니다. 저승길로 끌려가면서 뱃속의 씨앗을 지키려는 당신의 노력을 감히 떠올릴 수 없습니다. 얼마나 몸서리쳐지는 상황이었기에 외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허공에 뒷욕을 해댈 뿐 그날에 대해선 굳게 입을 닫으셨습니다.
당신은 보았습니까. 스승이었던 자가 학생을 끌고 와 칼로 찌른 후 밭고랑에 처박고 다른 아이들에게 돌을 던지라고 윽박지르는 광경을.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어린애의 목에 돌을 매달아 바다로 던지는 참상을.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능지처참, 척살, 참살, 수장, 생매장, 총살, 구타 등 별의별 수단으로 죽임당한 이들을. 야월교회 기독교인순교기념관에는 처참한 현장이 지금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알고 계셨나요. 공보처 통계국이 1952년 펴낸 ‘6·25사변 피살자 명부’에 의하면 전체의 칠십 퍼센트가 전라남도 사람들이고 그 절반에 가까운 이만 천여 명이 영광군 주민입니다. 이십 세 미만과 여성 희생자가 제일 많은 것도 일가족이 학살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군경에 의한 피해까지 합치면 민간인 사망자는 삼만 명이 넘습니다. 영광군이 한국전쟁 최악의 킬링필드였다는 사실을 그동안 세상은 모르고 지나왔습니다. 그저 피해를 크게 입은 고장 정도로만 알려졌습니다. 외할머니처럼 빨리 잊기 위해 말을 아끼거나 증언해 줄 핏줄 하나 남아 있지 않아서였겠지요.
천운으로 살아남은 씨가 잎을 내고 뿌리내리기까지 삶은 어찌나 엄혹한지요. 홀로 남겨진 여인에게 ‘청상靑孀’이라며 수군댔고, 아버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아이에겐 ‘애비 잡아먹고 태어난 자식’이라는 굴레가 씌워졌습니다. 젊은 어미는 애꿎은 밭을 갈아엎으며 청춘을 보냈습니다. 당신이 지켜낸 씨앗은 건실하게 자라 또 다른 씨들을 키워내며 세대를 이었습니다.
제상 차릴 때마다 늘 의문이 들곤 합니다. 옛말에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 죽을지언정 농사지을 종자만은 미래를 위해 남겨 둔다는데 삶의 터전인 마을을 불태워 없애고 가문의 대를 끊어낸 살의殺意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사람의 존엄 위에 놓인 이념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고 생명보다 귀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답을 구하려 책을 뒤적이고 학식 높은 분들의 말에 귀 기울여 보지만 미욱한 저는 촛불이 바닥에 닿아 가물거리도록 정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하여, 내년에는 좀 더 단단하고 긴 초를 꽂으렵니다.
어느새 꼿꼿하던 향은 재가 되었고 훈기가 사라진 밥은 꾸덕꾸덕 말라갑니다. 촛대의 불씨마저 사그라들었네요. 이제 당신을 보내 드려야겠습니다. 부디 옛일은 잊고 편히 가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