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초상 / 박정희 - 제5회 동래구 우하박문하문학상 대상

 

하마하마 기다렸다. 학수고대하던 변신의 귀재를 만났으니 그 여정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 서는 순간, 어둠 속 등불처럼 환하게 벙그는 꽃뭉치에게 어느 말을 골라봐도 딱 맞는 말이 아닐 듯하다. 온몸으로 세상과 타협하는 천성 앞에 무어라 표현해도 부족하겠다. 입안에서 자꾸 우물거리다가 결국 무언으로 조아린다.

태종사 수국이 몽탕몽탕 피었다. 사십여 년 전 이곳 절 언저리에 수국 천국을 조성한 덕분에 해마다 여름 입구를 성대하게 장식한다. 비탈길의 크고 작은 다발꽃이 가상의 색으로 세상 밖 세상 영입을 자처한다. 말로 조합할 수 없는 은은한 색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번진다. 엷은 하늘빛에서 맑은 분홍으로, 짙어가는 청보라색으로 어우러진 꽃세상이 마치 나를 기다린 듯하여 좌우를 두리번거린다. 수국의 시간표에는 온유한 색 순환길이 깔려 있나 보다. 꽃밭 전체를 한눈에 넣을 즈음, 장엄해진 기운에 산만하던 심사가 가라앉는다. 지금 이곳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수국의 시간에 젖어 든다.

꽃 중에서도 수국을 선택한 뜻을 짚는다. 한 가지 색에 집착하지 않는 종자의 형질을 감지했을 터이다. 먼 옛날 꽃씨는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따르는 것이 상책이라는 주문이라도 들었을까. 생명의 길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색을 내려놓겠다는 서약이라도 했을지 모른다. 낱꽃이 모여 둥근 덩어리를 만들었고, 꽃 방울이 자라는 동안에 시시때때로 땅의 형편은 물론, 공기의 낌새까지 알아차리면서 환경에 동화되려는 일심을 키웠던 꽃이 아닌가. 그러면 이쯤에서 누군가가 붙였던 변심이라는 꽃말도 적응의 귀재쯤으로 바꾸고 그 의지를 치하해야 하지 않으려나. 수국처럼 자신을 바꾸는 조절력으로 세상과 어울리는 처세이면 웬만한 파도는 건널 수 있으리라.

기어이 꽃으로 부른다. 절 주변을 꽃단장하여 천상의 세계에 이르는 길로 보이려는 뜻은 아닐 듯하다. 헝클어진 심사로 주변에서 위안을 찾는 때라면 꽃만 한 물상이 있을까. 어떤 궁색한 상황일지라도 비집고 나갈 용기와 힘을 실을 수 있을 것이고, 그 길까지 안내할 수국이라면 굳이 말이 필요 없다. 수국이 마음 탄탄한 연결 다리를 만들어 낸다.

세상살이에 누군들 고군분투하지 않으랴. 그럼에도 가로막고 나서는 벽 앞에서 시름이 깊어지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절 마당에 찾아든다. 부질없는 오기로 현실을 읽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는 동안 더 흔들리고 삐꺽거리며 생채기만 늘어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 세상에서 혼자 생각에 갇히는 동안 해법은 보이지 않았고, 오늘같이 이 생각 저 생각이 불쑥거려 심상이 잡다해지는 날에는 부처님의 지혜가 궁금해진다. 절 마당에 오르기 전, 수국이 몸소 보여주는 이치를 알아듣고, 다시 세상의 길을 살필 용기와 한숨 돌릴 여유를 얻는다면 일상의 환란을 비껴갈 수 있겠다. 여태 수국밭에 서서 머뭇거리며 그 행태를 부러워하는 나에게 기억 한 자락이 비집고 나선다.

몇 년 전 불교단체의 수련회 이력이다. 참가자는 자신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한 공간에서 한 말씀에 동참해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렵사리 기회를 얻어 모여든 일행은 평소의 행동이나 먹던 음식은 물론, 세상의 시간마저 내려놓았다. 팍팍한 삶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아 나가겠다는 각오로 모였으니 하나같이 단단한 표정이다. 몇 시쯤 되었을까. 기상! 기상! 기상하란다. 희붐한 밖을 보면 이른 새벽쯤 되었겠다. 어리둥절하며 일어나 앉은 자리에 질문이 돌멩이처럼 날아온다. “너는 누구냐.” 하릴없이 당찬 목소리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물음에 일행은 나는 나다. 나는 아무개다. 모른다. 등등의 시큰둥한 대답으로 이어가려 했으나, “그럼, 아무개는 누구냐.”라는 공세가 이어지고 어떤 대답에도 다시 대답이 질문으로 둔갑하는 바람에 다들 입을 다물고 만다. 나는 누구일까.

 

단박에 풀릴 리가 없는 질문에 일행은 더 시무룩해진다. 눈을 감고 나를 찾는다. 여태 나라고 생각하고 믿어 왔던 인물은 누구인가. 세상의 끈에 닿아있고 매여있는 인물이 나인가. 수십 년 동안 나라고 여겨 왔던 인물이 내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혼란스러워진 일행의 속을 들여다본 듯, 스님은 약간의 힌트를 보탠다. 우리의 고통은 나라고 하는 아집에서 비롯되고 그 나라는 집착을 내려놓으면 편안해진다는 말씀쯤에서는 목소리에 힘을 더한다. 내가 편하려면 내가 변하면 된다는 말씀이, 들을 때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나라는 존재도 변화가 실재이다. 순간순간의 인연에 따라 생성되고 변질하고 소멸하므로 멈추지 않는다. 고로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말은 성립한다. 참가자들은 이해하고 수긍하는 척하는 편과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갸우뚱하면서 대응할 말을 더 찾는 쪽으로 양분되었으나, 어느 누구도 쉽사리 수용하거나 허물어질 리 없다. 이틀째 똑같이 질문이 반복되었고 자신이 굳게 믿었던 신념에 균열이 가는지 표정은 더 굳어졌다. 오랫동안 자신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순간일 뿐이지, 자신의 전체를 대변한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해야 할수록 얼굴빛은 더 곤혹스러워진다. 이쯤에서는 묻지 않아도 스스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집착 덩어리를 내려놓는 데까지 적지 않은 갈등과 반문이 있었으나, 닷새간의 일정을 수료할 무렵에 낯빛이 대개는 가벼워지고 대화 또한 부드러워졌다. 새 믿음이 얼마나 갈지 또 다른 의문을 품고 하산하였다. 수련회 경험은 한동안 나를 살피며 조심하게 하였다. 오늘 수국 앞에 서니 찌릿했던 순간을 소환한다. 처음 새김질했던 그날 이후, 지당한 진리를 얼마나 반추하며 살았을까.

다시 꽃을 살핀다. 두루뭉술한 꽃덩이 속에 모여 사는 낱꽃 하나하나의 색은 흩어지더라도 모양이 다르지 않아 한통속이다. 다른 듯 같은 낱낱의 꽃색을 견주는데 꽃 속에서 난데없이 엄마 얼굴이 얼비친다. 중얼거리는 듯 속삭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종부로서 한 집안을 두루 살펴야 했던 당신은 언제나 요모조모를 맞추려 했다. 무엇보다 중한 책무인 종손을 두지 못했으니 자칭 죄인으로 낙인찍었고, 주변의 질타를 당연한 처사로 받아들였다. 평생 말수를 줄였고, 주장보다는 수용의 방식을 택했다. 집안의 어른은 물론 손아래의 비아냥거림도 귓등으로 흘려듣던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했다. ‘그런 사람, 그래 봐야지.’ 밖에서 언짢은 일로 북덕거리며 하소연하는 딸에게조차 위로 대신에 ‘네가 바꾸면 된다.’는 말씀을 가볍게 던질 때는 몹시 서운했다. 내가 변하면 쉬울 것을 상대를 바꾸려고 덤비는 동안 더 어렵게 된다며 번번이 강조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말도 더러 들었다. 매사에 체념한 것처럼 보여,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태도가 지금에서야 상수의 처신이었음을 알겠다.

땡볕 아래서 색이 일렁인다. 풀빛에 둘러싸여 작은 바람에도 반응을 하는 꽃 덩이의 유연함에 눈길을 놓는다. 주어진 환경에 맞춰 색을 더하고 색을 빼며 변모하는 수국은 어울렁더울렁 살아가는 삶이 최선이라는 말을 누누이 강조한다. 보통의 꽃이 한 가지 색으로 꼿꼿하게 살다 가는 것을 오래된 지조라고 본다면, 아무 흙에나 꺾꽂이해도 잘 자라는 수국은 이 시대에 더 필요한 처세술을 가졌다.

수국은 꽃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와 색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타고난 성정을 백지로 되돌릴 순 없다 하더라도 동조하려는 처신이 결국 자신을 지킨다는 사실을 되짚는다. 내가 수국을 기다린 것은 은근하고 부드럽게 변모하는 꽃색을 다시 눈에 넣을 때가 되어서이다. 막 피어나는 색과 한창인 색, 이울어지는 색이 한자리에서 조화를 부리기에 나는 유월을 기다린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