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 / 김서연 - 제13회 정읍사 문학상 대상
들판의 벼 이삭이 막 뜨물을 품을 무렵이었다. 캐나다에서 사촌 언니가 왔다. 언니와 나는 같은 동네에서 자랐기에 공유한 것이 많다. 오랜만에 만나도 할 얘기가 많은 이유다.
마중 나간 나는 장난기 속에 설렘이 통통 튀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여전히 육십 나이를 잊고 소꿉놀이하듯 반가움을 표했다. 이미 행선지는 정해져 있었다. 목적지인 내 집을 가는 데는 빠른 길이 있지만 우리는 망설임 없이 고향으로 머리를 둘렀다. 부모가 안 계시지만 언니와 나는 아직 고향 안에 있다. 새로 난 길을 두고 굳이 우리가 학교 다니던 길로 들었다. 학교 버스에 밀려 아이들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경운기 지나간 자국만 움푹 파여 있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자 점차 속도가 준다. 언덕길을 한 뼘이라도 놓칠세라 두리번두리번 기억을 찾는다. 해 저무는 줄 모르고 한 줌 가득 삐비를 뽑고 토끼풀 꽃을 엮었었다. 짐짓 놀란다. 나도 그렇게 한가로울 때가 있었지.
동네는 조용했다. 내장산을 뒤로하고 일렬횡대로 펼쳐진 마을은 등 굽은 어머니같이 쪼그라져 있다. 어렸을 적 그대로다. 낡은 것 말고는 낯설 이유도 없건만 우렁이 껍데기 드나드는 바람 마냥 기운이 휑하다.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등진 집들이 하나하나 뒤로 밀려가는데 잘 정돈된 집 한 채가 우리 앞으로 다가온다.
“여기가 거기지? 그 집”
소위 잘 나간다는 친구의 집이다. 크막한 항아리마다에 펑퍼짐한 인정이 지금도 가득 차 있는 듯하다. 느릿느릿 차창 밖을 훑는데 뒤뜰도 주인을 닮아 각색이다. 어느새 내가 살던 집에 다다랐다. 얼른 자동차에서 내렸다. 이젠 깨금발을 짓지 않아도 담장 안의 모습들이 훤히 보인다. 마음 좋은 동네 분에게 집을 팔았었다. 가지런한 쪽파, 밑들기 시작하는 무, 속 채워가는 배추들이 어머니가 가꾸던 모습 그대로다. 글 한 줄 제대로 쓸 줄 몰랐던 어머니는 밭에 씨를 뿌리고 가꾸며 세상 이치를 터득했을까.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을 입버릇처럼 말하며 틀림없다고 고개를 주억였다.
금방이라도 정지문을 열고 어머니가 나올 것만 같다. 딸이 왔다고 얼른 벼락지를 버무릴 것이다. 참기름 한 방울 더 떨어트린 것이 전부인 밥상, 맑디맑은 살림에 딸을 맞이하는 것이 그렇듯 남을 돌아볼 여력은 없었을 것이다. 지인 하나는 베풀기 좋아했다는 부모님 얘기를 종종 했는데 빗대어 만든 속담이 당신의 경전이었을지언정 내 어머니는 정작 물질은 나누지 못했다. 주모가 단단했다. 톡, 털어버렸다던 참기름도 꼭 써야 할 때가 되면 어디서 들고나와 기름칠을 했다.
“그렇게나 했으니 느그들 키웠지”
이젠 다 옛말이 되어 자갈 자갈 웃는 우리 형제들 앞에서 어머니는 눈을 흘기며 억울하다는 시늉을 하곤 했다. 고무신도 헝겊을 대어 꿰매 신던 어머니다. 우리는 옷소매를 뒤집어 웃음 끝에 맺힌 눈물을 찍었다.
“작은어머니도 고생 참 많으셨지.”
발을 못 떼는 나를 재촉해 언니가 얼른 차에 오른다.
사촌 언니가 살던 큰댁 자리를 지나 마을의 상징인 절을 돌아 나왔다. 큰어머니와 어머니가 치성을 들이던 곳이다. 여장부였던 큰어머니는 형편보다 더한 보시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단다. 훗날 자식들의 관운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공양간에서 품 보시를 했을 어머니의 종장 걸음에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데 언니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불현듯 우물집에 가보자고 했다. 십 리 학교 길을 걷다가 목이 타면 들르던 곳이다. 학교 점방만큼이나 친숙한 그곳을 나도 잊지 않고 있었다. 모든 것이 풍족하지 못하던 시절, 어떤 집에서는 두레박을 감춰 놓기도 했었다. 아이들이 서툴게 들어 올리는 양철 두레박은 우물 벽에 부딪혀 우그러지기 일쑤였지만 아주머니의 얼굴은 한 번도 일그러지지 않았다. 다 새어버리고 반쯤 길어 올린 두레박 귀퉁이에 입을 대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봤었다. 우물 ‘정’ 자에 걸친 햇살이었다.
우리 집은 물도 공동 우물에서 길어왔다. 물 한 바가지 나누지 못했지만 고향 사람들은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언젠가는 심덕값 하실 줄 알았다며 어머니께 잘 해 드리라 이른다. 돌아보면 어머니는 물질은 나누지 못했지만 악의 씨앗을 뿌리지는 않았다. 곰살맞지 못해 누구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하실 줄 모르지만 항상 변함없이 사람을 대했다. 특히 입이 누구보다 무거웠다. 절집 드나들며 들은 무서운 구업을 생각했다기보다 입에서 뱉어낸 수박씨의 싹이 더 가까웠으리라. 우리 집을 사서 이사했던 서 씨 아저씨 자녀들도 제 앞가림 하며 잘 산단다. 고향을 지키는 사촌 올케의 말이다. 집터의 기운 운운하며 우리 형제의 안녕도 함께 바라는 올케다. 피가 나게 아끼면서도 당신의 도리는 다 했던 어머니를 시집오면서부터 보았던 터, 이 또한 어머니가 뿌린 씨앗이다.
어머니를 닮은 것이라곤 알뜰한 것 밖에 없는 나다. 보고 배운 대로 어느 틈에 텃밭에 씨를 뿌려 갖가지 채소를 거둔다. 뜯어도 뜯어도 새로 돋는 상추를 옆집 아짐네나 읍내 사는 친구 가져다 주면 좋으련만 요즘은 씨를 조금만 뿌린다. 나누는 것도 일이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일을 털어 내는 나는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언니와 내가 쓴 오늘 하루의 일기가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 상념에 젖어 서로 많은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말귀를 조금 알아듣는 아이처럼 집에 도착하기까지 내내 얌전했다.
오뉴월보다 더한 땡볕이 머리가 벗어지게 따갑다. 왜 아니겠는가. 처서가 코앞인데 영글어야 할 벼 이삭이 아직도 가벼우니 마음이 급하겠다. 언니와 내가 나누는 이야기도 노란 들판처럼 물들 날 있을까. 아직은 각자의 텃밭에 뿌려둔 옛 생각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며 있다. 좌로 우로, 우물집 쪽으로 고향 집 마당 쪽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