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된다, 물꽃이다. 이파리 하나 없는 빈 가지에 망울이 맺혔다. 모진 시간을 살아내느라 두껍고 시커멓게 변한 나무의 마디마디에 가지런히 앉았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투명한 돌기가 오종종히 모인 자리에 희붐한 햇살이 투영되는 순간, 존재가 드러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님을 아는 물꽃은 바싹 마른 나무에서 먼저 싹 마중을 하고 다시 꽃 마중까지 해볼 요량이다. 스스로 그러하리라를 믿는 물꽃은 나무속의 움직임을 들여다보고 시간을 내다보며 색을 부른다.

2월의 끝자락이다. 연못에 물이 고이고 물고기가 뛰기 시작하는 때란다. 삭풍에 버터 내야 생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섭리에 봄을 기다리지 않는 생명이 있을까. 어느 때부터인지 찬바람이 이는 겨울의 초입부터 참고 견뎌야 한다는 속다짐이 생겨났다. 달력을 보며 남은 세한의 시간을 헤아리는 버릇도 함께했다. 그러니 세원 빠르다고 구시렁대던 한탄도 이맘때만은 쑥 들어가고 여력을 가늠하게 된다. 어제부터 추적거린 비 끝에 혹시나 봄이 묻어왔을까 바깥을 기웃거린다. 봄 기척은커녕 혹 치고 드는 매몰찬 기운에다 비까지 더한 날씨에 지청구가 나온다. 이때쯤이면 견디는 힘도 바닥이 드러나는지라 밖을 향한 볼멘소리를 내지르고 만다.

생명에게 혹한은 시련의 시간이다. 색을 벗고 몸피를 줄이며 속으로 침잠하는 동안 나무는 지나간 시간을 훑는다. 한때는 겉 차림새를 갖추느라 몰입했을 것이고, 넉넉해진 품새로 한세상을 부렸다. 푸르른 시간에는 기대어 살아가는 곁살이에게 품을 내어주며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으나 나무 또한 큰 힘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로 버텨낼 시간을 다잡아야 했다. 주변과 어울리면서도 저울의 눈금처럼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으로 움직이는 자연의 시계를 주시했다. 밑둥치에서 우듬지까지 남은 물기를 살피며 기지개 켤 때를 기다렸을 터이다.

물이 생명을 끌고 간다. 생명은 가히 절대적 존재인 물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순종할 따름이다. 운신하거나 제자리살이거나 간에 물의 도움 없이는 주체하지 못하고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다. 살아있는 징표를 드러내야 할 때라면 물의 동태를 더 살펴야 한다. 여느 때보다 이 무렵 물의 존재가 더 귀할 것이라 봄비인지 겨울비인지 모호한 비가 연일 추적거리나 보다.

순하게 대하면 순하게 응하는 법이다. 무색무취의 물꽃이 가지를 끌어안는다. 촉이 살을 비집고 나오려면 딱딱해진 껍질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가지에 매달린 물방울이 일제히 일궈낸 환호에 나무는 까칠하던 긴장을 풀고 촉촉하게 젖어 든다. 잎자리든 꽃자리든 움막을 뚫고 나올 의지까지 불러본다. 엄중한 자연의 법도를 따르는 물방울은 촉수가 그려낼 찬란한 색을 예견하였기에 언제나 세상 구석구석 동행을 자처했다. 눈앞만 보고 구시렁거렸던 모자랍에까지 에둘러 순리를 보여 주려 했을까.

때를 가르쳐 주신 분이 있다. 9남매의 막내인 외삼촌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야 할 부모를 일찍 여읜 탓에 힘든 시절을 보냈다. 늦둥이로 척박한 환경을 탓하지 않을 수 없겠으나 늘 자신의 좌표를 살폈다. 홀로 서서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간 여정으로 스스로 물꽃이 되기를 자처했나 보다. 진지하고 의연한 경험들은 나의 불꽃이 되었고 넉넉지 않은 형편에 함께 진로를 걱정하는 길잡이로 충분했다. 앞에 놓인 길에 천방지축이던 시절에는 귀한 위인전을 쥐여 주었고, 철들어 길을 가늠하던 때에는 흔하지 않던 참고서까지 구해 줬다. 더 너른 길은 찾아 헤매던 시기에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말씀들로 귀에 쏙쏙 꽂히는 지침이 되었으니 시의적절한 물꽃을 만난 셈이다. 마디 마디를 딛고 설 수 있는 용기와 길을 안내해 주신 물꽃 덕분에 좌충우돌하면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약자에 대한 배려가 늘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청소년기를 겪어낸 청년을 대상으로 마중물이 되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있다. 셰프를 희망하는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고난의 행군을 거쳤으나 의외로 앞날에의 의지가 다져졌고 뿌리를 반듯하게 내린 이들이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유기되거나 사회적 세태에 오염되어 엇길에 접어들었다 다시 제 길을 찾은 청년, 가정사로 짊어진 버거운 등짐에 허우적거리는 젊은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한 발짝 올라설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삶은 새 국면의 연속이라 순간적 마음먹기에 달렸다. 몸과 마음이 건장한 그들에게 시험처럼 다가온 물꽃은 담금질이 되었고 여하한 고초라도 이겨낼 힘이 심어졌을 것이다. 한 고개를 넘은 그들이 운명에 맞서 요리로 희망을 개척하려는 의지에 주최 측 관계자들은 물꽃이 되어 다가갔다.

봄을 기다리지 않은 생명은 없다. 부족해 봐야 비로소 존재의 가치를 안다. 물의 길에서 벗어난 생명은 갈증에 허덕이며 물길을 찾게 되나, 물의 길에 들어선 물상은 그 대상이 되었다는 의식마저 없이 당연하게 흘러가지는 않을지…. 연일 꽁꽁 얼어붙는 시간이라면 물의 헤아림이 더 간절한 때다. 소용돌이 날씨에 진기를 다하여 처지는 기운이면 언감생심 햇빛의 도움까지 바라게 된다.

생겨난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물꽃도 소명을 다하면 햇살 따라 스러질 것이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는 시구처럼 겨울의 고통을 이겨낸 나무에 물꽃은 그 어떤 응원보다 값지다. 잠시면 어떠랴. 생명의 순환에 동참하여 잎을 피우고 꽃을 마중하는 배역 정도면 충분하다. 길고 짧은 것은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마침맞게 자리했다가 비켜주는 선심이면 선순환의 축으로도 부족하지 않다. 매달린 방울이 제 흥에 겨워하다 뭉쳐지고 무게를 이기지 못해 흐른다. 봄비가 몰고 을 시간이 다시 파릇하겠다. 색(色) 마중을 나간 물꽃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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