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 강지안 - 제17회 복숭아문학상 수필 최우수상

 

당신 마음대로 해. 아내가 종이 한 장을 테이블 위에 던졌다. 이혼 합의서였다. 아내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현관으로 향했다. 문이 큰 소리를 내며 굳게 닫혔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도, 힘든 시간을 늘 함께 견뎌온 아내도, 얼마 전 중증치매 판정을 받은 어머니도.

아내가 어머니 문제로 화를 낼 때마다 나는 반박하면서도 큰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얼마 전 해고 통보를 받은 이후 나는 실업자가 되었고, 아내가 살림에서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어머니는 평소에는 방 안에 가만히 계시다가도 틈만 나면 집안 물건을 죄다 꺼내 바닥에 뒤집어 놓으셨다가, 지저분한 물걸레로 수 차레 닦은 후에야 다시 당신만의 방식으로 정렬하셨다. 아내는 이것만으로도 못마땅한 기색이었으나, 아내가 정말 참지 못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어머니는 종종 말도 없이 집 밖으로 나가 마트를 찾아가셨다. 편의점도 아니고 집 근처의 마트를 가 놓고선 정작 검은 비닐봉지 안에 복숭아만 한가득 사오셨다.

어머니는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도 유명한 구두쇠 생선가게 아줌마였다. 고도리 삽서 옥돔 삽서 갈치 들어왔수다 하나 상 갑서. 시장에서 제일 목소리가 컸던 어머니는 집에만 들어오면 아무 말 없이 돌아앉아 돈을 세기 바쁘셨다. 납작하고 기다란 회칼로 사시미를 뜨는 솜씨 하나는 시장에서 제일 가던 어머니. 어머니는 시장 밖에서 늘 어깨를 구부리고 다녔다. 어머니와 함께 다닐 때 주변 사람들이 어머니 쪽을 보고 코를 찡그린 기억이 있다. 하물며 집에서조차 구부정하게 다니면서 내게 품 한 번을 내주지 않았다. 새벽이면 어머니는 늘 고기를 사러 판매장으로 향했고, 시장을 정리한 뒤 늦게 들어와 곧 잠에 들었다. 어머니의 옷에는 종종 허옇게 빛나는 생선 비늘이 묻어있었다.

어머니의 말 없는 외출이 벌써 일곱 번째를 기록했다. 사라진 어머니가 있을 곳이야 뻔했지만 한동안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7년의 연애 끝에 받아낸 결혼 허락,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우리의 결혼 생활이 오늘 이렇게 녹아버렸다. 시선을 굴리자 벽 한 켠에 걸려있는 가족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 어머니가 없는 집, 우리 가족은 어머니가 오기 전까지 그 어떤 가정 못지 않게 화목했다.

집에서 도망치듯 벗어나 마트를 향해 뛰었다. 간만에 뜀박질은 고작 몇 분에도 숨이 찼다. 걸어서 약 15분 거리의 나들이마트. 역시나 어머니는 검은 봉지를 들고 마트에서 나오고 계셨다.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가는 와중에도, 집에 도착한 후에도 어머니는 계속 내게 잘 익어 솜털이 일어난 복숭아 하나를 내밀었다. 운전 중에도 계속 핸들 쪽으로 복숭아를 내미는 통에 순간 핸들을 다른 쪽으로 꺾을 뻔 했다.

20대 초반을 넘기고 나서는 어머니에게 화를 내본 적이 드물었다. 화를 내고 나면 온 몸에 기운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언 20여년 만에 어머니에게 언성을 높였다. 분을 참지 못하고 냉장고 과일칸에 쌓여있던 복숭아를 전부 종량제 봉투에 쑤셔넣었다. 반투명한 비닐봉지에 복숭아의 분홍색 빛이 번졌다. 이제 그만 좀 하시라고요 어머니. 나는 꽉 찬 종량제봉투를 바닥에 내던졌다. 쓰레기와 뒤섞인 달큰한 과일 냄새가 형용할 수 없는 악취를 풍겼다. 어머니는 바닥에 쓰러진 봉지를 바로 세웠다. 아이고 이 아꼬운 거... 어머니는 갈라진 손톱으로 봉투의 매듭을 뜯으려고 애썼다.

여름철 딱 한 번, 어머니는 시장의 문을 닫았다. 집 앞에 심은 복숭아 나무에 복숭아가 가장 맛있게 익는 날. 그 날은 어머니와 오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 우리는 그 날만 되면 같이 복숭아를 따고, 껍질을 벗긴 뒤 몇 개는 잼을 담구고 몇 개는 주변 이웃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가장 잘 익은 복숭아를 같이 나누어 먹었다. 평소 나와 시간을 잘 보내주지 않았던 어머니와 같이 앉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의 나에겐 달큰한 복숭아보다 더 소중했다. 그날만 되면 하루가 너무 빨리 끝나서 늘 아쉬워했었다. 평소에는 근처에만 가도 나를 돌려보내던 야속한 어머니가 그때만큼은 날 밀어내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기어이 봉투를 열고 제일 멀쩡해 보이는 복숭아 하나를 꺼내셨다. 묵묵히 부엌으로 가 흐르는 물에 복숭아를 씻어 내 손에 쥐여주셨다.

내가 돈이 없어서 하나 밖에 못 샀주만은 이거 다 먹고 화 풀어이. 어머니가 내 손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나는 어머니가 주신 복숭아를 한 입 베어물었다. 달큰한 과즙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자꾸만 옷을 얼굴 쪽으로 끌어당기며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셨다.

"생선 냄새 잘도 남주게? 빨래 허여도 냄새가 안 빠져부난 지유 어멍도 도망간거주?“

“아녜요, 어머니 때문에 지유 엄마 나간 거.”

“기이? 그라믄이 형들 오기 전에 얼른 이거 먹어불라. 잘도 달 거 닮아이.”

어머니 말씀대로 복숭아는 적당히 말랑하고 색이 진한 게 먹기 좋게 익어있었다. 나는 복숭아를 한 입 더 베어물었다. 약간 질긴 껍질 안, 달콤하고 시원한 향이 입 안에 퍼졌다가 금방 사라졌다. 형들과 서먹하던 내게 어머니는 가장 가까운 상대이자 가장 가까워지고 싶은 상대였다. 복숭아는 내게 있어 어머니와의 시간과도 같았다. 하지만 달콤한 시간은 너무도 빨리 녹아 사라지고, 추억의 잔상만이 남아있었다.

아내와 딸이 떠난 집에 한기가 감돌았다. 아내에게 먼저 연락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우리의 관계가, 우리 가족이 완벽하게 사라져버릴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번에 돌이킬 수는 없어도 천천히 되돌려나가야 했다. 지금까지 찾아보려 하지 않았을 뿐 가족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어딘가에는 있겠지. 살짝 물러진 복숭아 조각을 입에 넣자 행복했던 순간의 달콤함이 되살아났다. 소중했던 시간은 마치 복숭아 향과 같아서 순식간에 녹아버리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져야 했다. 이 순간이 녹지 않기를 바라며 입 안에 퍼지는 달콤함을 천천히 음미했다. 미래의 새 껍질을 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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