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와 악어새의 위험한 동거 / 서연이 - 2025년 제9회 디멘시아 문학상 당선작
엄마는 오늘도 아리실 밭에 있었다. 일찌감치 밭에 나와 있는 것을 보니, 아버지와 별스럽지도 않은 일로 티격태격 다퉜던 모양이다. 땅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오라질’을 내뱉는 입이 연신 씰룩이는 것만 봐도 읽을 수가 있었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면 달창난 신발을 신고 나와 풀을 뽑고 있는 것인지, 한 손 가득 풀 끄덩이를 낚아챈 손끝에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투박한 호미질에 애먼 흙덩이들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도 무슨 일로 성이 났는지 지레짐작해 볼 뿐이다. ‘칼칼칼’ 성난 호미질에서 머리끝까지 차올라 있는 울화를 느낄 수가 있었다. ‘저러다 흙덩이들이 가루가 되겠네’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엄마가 쏟아내는 넋두리에 맞장구를 쳐주는 수밖에 별도리 없었다. 엄마는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면서 인심 좋게 웃어 보였다.
아리실 밭은 엄마의 대나무 숲과 같은 곳이다. 할머니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어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며 붉은 닥세리 같은 밭을 샀다. 다락방 같은 비밀 아지트가 필요하다는 뜻이었으니, 앞뒤 따질 것도 없이 무조건 엄마의 편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밭을 가꾸는데 꼬박 일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매일 돌을 파내고 천지사방에 널려 있는 온갖 들풀들을 뽑아낸 밭에 질 좋은 황토와 비료를 세 번에 덮어줘야 했다. 비가 내리고 눈이 쌓였다 녹기를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기름진 땅이 되어 갔다.
엄마가 손톱이 닳도록 일군 밭에 고추와 깨를 심는 날, 집안사람들이 총동원되었다. 그동안 땅속을 헤집다가 목이 부러져 나간 호미가 몇 자루인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할머니의 감시망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자 장만한 밭이 엄마의 지독한 부지런함으로 일궈진 밭이었다. 한바탕 속을 쏟아내고는 마음이 편해졌는지, 내가 좋아하는 비빔국수 해준다면서 그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삼 년 지기 벗 유모차에 기대어 신작로를 걸어가는 팔순 노모의 고스러진 등허리에 여름 볕이 엉겨 붙어 지글지글 지져대고 있었다.
“느그 할매가 저 달맞이꽃을 좋아 했잖여. 노인네 성화가 왜 그리 맵고 쓰던지. 고추 당초는 쨉도 안됐어 야‘
할머니의 말만 꺼내도 진저리를 치면서도 어그러진 시간 속을 여행 중이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들이 나쁜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낮 달맞이꽃에 힐끔 눈길 한번 던져주고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개망초 꽃이 진 들판에 낮 달맞이꽃이 엄마의 고까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펄펄 끓는 하늘을 뒤집어쓰고 노란 꽃잎을 나풀대고 있었다.
엄마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이십칠 년을 같이 살았다. 군 내 나는 세월도 빗겨 갈 수 없었던지, 과격한 말투나 성격이 테칼코마니(D′ecalcomanie)처럼 닮아 있었다. 시간을 거꾸로 걷고 있는 할머니와의 동거는 매일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때로는 따로 또 같은 생각으로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존의 방식을 찾아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면서 미운 정의 힘으로 살아냈다. 언젠가 내가 물은 적이 있다.
“그렇게 전쟁같이 싸우면서, 할머니를 왜 그렇게 챙기는 거야”
“불쌍하잖여, 노인네가 밉다가도 평생 고생만혀서 그런가. 요 짝이 짠혀. 느그 할매는 내가 이기니께, 널랑은 마음 쓰지 마러”라면서 다독였다.
할머니는 증조할머니한테 겪었던 시집살이를 화풀이하듯 엄마한테 고스란히 대물림하려고 했다.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사랑 주는 법을 몰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열두 살 차이 나는 할아버지와 열여섯 살에 결혼했으니, 세대 차이를 뛰어넘지 못했으리라. 생활력이 강했던 할머니는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겠다는 듯이 자기주장이 강했다. 돈이 되는 것은 무슨 일이든 악착같이 해서 재산을 불려갔다. 양반집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허드렛일도 마다치 않고 했으니,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까지 견뎌내야 했던 속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보리밥도 배불리 먹을 수 없던 시절, 초근모피(草根木皮)로 끼니를 때워야 했을 정도로 족보만 남은 양반 집의 맏며느리였다.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쌈쟁이 여장부가 될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얻어진 할머니의 별명은 쌈쟁이 할매, 욕쟁이 할매였고, 동네에서 억척스럽기로는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엄마의 하루는 할머니 뒷수발로 시작되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간식을 간식 그릇에 그득히 채워 놓았다. 알약을 못 넘기는 할머니를 위해 약을 곱게 갈아 물에 녹여 설탕을 타서 줬고, 할머니가 대소변을 실수해도 타박하지 않고 목욕부터 빨래까지 불평 없이 해냈다. 그때는 할머니도 아이처럼 떼쓰지 않고 온전히 몸을 맡겼지만, 식탐도 늘어 시도 때도 없이 밥을 달라고 채근했다. 하루에 일곱 끼니를 차려야 했던 밥상에 할머니가 좋아하는 고기를 올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느 때는 머릿속에 벌레가 기어 다닌다기도 하고, 귀신 새가 짖어댄다던 할머니가 귀찮을 법도 한데 데려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다고 했다. 기억의 엇박자 속에 혼란을 겪고 있던 할머니가 안쓰러웠던 것일까. 성격이 깔끔한 노인네가 당신의 몸이 따라 주지 않으니 얼마나 갑갑하겠냐면서 ‘밉다 밉다’ 하면서도 미운 정도 정이라고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할머니가 구순을 넘기면서 치매 증세는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악화하였다. 그 무렵 엄마도 당뇨 합병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던 터라 하는 수 없이 내가 아버지에게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시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엄마가 완강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버렸다는 사람들의 불편한 눈초리가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말 많은 시골 동네에서 시시콜콜 꼴같잖은 소리를 듣고 사느니, 당신의 힘이 닿는 한 할머니를 모시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이십 년이 넘는 기가 막힌 세월을 이 꼴 저 꼴 다 보고 살았는데, 집 떠나면 죽는 줄 아는 노인네를 현대판 고려장 하듯 요양원에 보낼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부모를 버렸다는 죄책감이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기 싫다는 엄마의 황소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엄마의 진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 때는 아홉 살 아이가 된 할머니는 아들을 ‘오빠’라 부르고, 엄한 말로 엄마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할머니의 치매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녀인 나한테만큼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내가 어릴 적에 형편이 어려워 부모님과 떨어져 시골집에 내려와 있어야 했다. 습관처럼 내뱉던 욕도 하지 않았고, 친구들과 교회에 갈 때면 속바지 주머니에서 쌈짓돈을 꺼내 내 손에 쥐여줬다. 동무들 먹는 것 쳐다보지 말고 하꼬방에서 맛난 것 사 먹고, 교회에 헌금도 내라면서 말이다. 할머니 손에 들어간 돈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는 원칙이 깨어지는 날이다. 나를 위해 뻐꾸기시계와 라디오를 사서 마루 기둥에 매달아 준 나는 할아버지 덕분에 어린이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꿈을 키웠다. 내가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베려 깊은 사랑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머릿속에 지우개가 모든 것을 지웠어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 이름과 생일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뇨합병증으로 반신 마비가 온 엄마가 더는 할머니를 모실 수 없어 요양원에 입실시켰다. 엄마의 품을 떠난 할머니는 다섯 달 만에 돌아가셨을 때의 연세가 아흔일곱이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는 엄마의 안부를 묻고 또 물었다고 한다. 치매로 아들도 못 알아보고, ‘오빠’라 부르면서도 악어새 같던 며느리의 건강을 걱정했던 모양이다. 애증(愛憎)이 깊어지면 사랑도 될 수 있는 것일까.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이십 년이 넘었다. 내가 가끔 옛 생각에 젖어 할머니와의 추억을 꺼내면, ‘그런 일이 있었어’라면서 사람 좋게 웃어 보인다. 유전적으로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는 원칙이 맞는 것은 아닌가 보다. 올해 들어 아버지는 부쩍 치매 증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자리에서 생각을 나누면서도 다른 대답을 할 때가 종종 있어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아버지의 치매 증상이 더는 심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엄마의 “인생 주기(life cycle)” 안에 습작기(習作期)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머피의 법칙에서 벗어나 노후가 좀 편안하지 않았을까. 추상적으로 연출이 된 자화상은 감성의 연습 물일지 모른다.
이울어가는 어둠이 느슨해지는 오후,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환갑을 넘긴 딸내미를 배웅하는 엄마의 손 인사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른다. 안 봐도 뻔하다. 딸내미가 탄 버스의 뒷 꽁무니가 당신들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신작로를 서성일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눈물 바람이겠지. 가슴속에 뜨끈한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다.
후회하고 돌아서면 더 외로워진다고 했던가. 그 뒤로 전화기가 여남은 번을 더 울렸던 것 같다. 울다 지쳐 제풀에 끊어진 전화기에서 울 엄마 버튼을 찾아 지그시 누른다. 괜스레 엄마한테 응석 부리고 싶었는지 마음과는 달리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다독이면서 올려다본 하늘에 노랗게 익은 눈썹달이 따라와 비추면 엄마의 밤도 깊어 지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