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울다 / 허숙영 - 제7회 순수필문학상
뒷집 처마에 매달린 풍경이 운다. 한바탕 광풍이 휩쓸었는지 온몸을 부딪쳐 깨뜨리는 소리에 살풋 들려던 잠에서 깨어났다. 밤늦도록 내 밤을 깨우고 자신도 잠들지 못한다. 울부짖는 것이 바람인지 풍경인지 아니면 집주인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아니다, 소리 내어 울 수도 없는 집주인의 절규를 대신하고 있는 쇠 물고기다.
평소에는 경쇠소리를 내며 적막 내려앉은 빈집을 홀로 지킨다. 청아한 바람 따라 소릿결을 가다듬으니 어찌 마음 빗장을 열어 귀 기울이지 않을까. 어쩌면 정령을 깨우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살아 있다는 증거를 대기 위해서 말이다.
뒷집에 사는 친척 형님은 젊은 시절 남편을 잃었다. 사랑방 주인이 세상을 등진 뒤 사십여 년을 먼지만 둘러쓴 사랑채를 얼마 전 헐어냈다. 그리고는 넓은 마당을 온통 시멘트로 덮어버렸다. 쥐들의 놀이터였고 길고양이들의 은신처였던 사랑채는 쇠망치 한 방에 풀썩 내려앉았다. 흙먼지가 구름처럼 일었다. 우리 집과 등을 맞대고 있어 볕뉘 한 줌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사랑채가 낡삭은 서까래와 기둥 몇 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내 마음이 환해지는 것처럼 들떴다. 그 자리에 예쁜 화단을 만들어 꽃을 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도 꽃을 좋아하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네.”
메마른 대답이 돌아왔다. 도시에서 어쩌다 한 번 들르는 나 같이 철없는 사람의 한가로이 던지는 말에 얼마나 실소했을까.
형님의 며느리가 세상을 떴다.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남겨두고 눈이나 제대로 감을 수 있었을까. 짧은 생애 뒤에 남겨진 살비듬 같은 것들을 다독이는 일은 이제 그녀의 손에 맡겨졌다. 스스로를 돌보기도 벅찬 나이에 장애인 손녀와 아들을 보살피려 도시로 갔다.
그녀가 떠나고 없는 빈집은 휑하니 넓어서 바람이 더 자주 드나들었다. 시골에 가면 나는 뙤창을 열어 수시로 빈 마당을 훔쳐본다. 비가 오면 빗물이 마당의 하수구를 잘 빠져나가는지 굳게 닫힌 문들은 덜컹거리지 않는지를 살피며 한숨을 내쉰다.
오랜만에 뒷집에서 인기척이 들려서 보니 현관문이 열렸다. 문이 열린다는 건 주인이 집에 다니러 왔다는 뜻이다. 그런 날은 뒷집이 분주하다. 엉거주춤하게 구부린 성치 않은 허리로 손수레를 끌고 밭에서 수확한 채소들을 마당 가에 널브러뜨려 놓았다. 그것들을 다듬고 씻다가도 볕 바른 장독대 앞 수돗가에 퍼질러놓은 손녀의 뒤처리까지 한다.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하지만 한없이 자애로운 할머니의 미소는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수많은 일을 하루에 끝내고 또 아들네로 간다며 대문을 잠근다.
사랑채에 가려져 들리지 않았을까. 형님이 떠난 그 밤, 어디선가 워낭소리가 들렸다. 귀를 의심하다가 자세히 들으니 풍경소리였다.
듣는 사람 마음에 따라 소리도 달라지는 것일까. 풍경이 운다는 말이 가슴에 닿는다. 리듬감이 있어 신이 나는 게 아니라 겉 쇠에 스스로를 때려 아파서 우는 소리였다. 형님은“내가 덕이 없어 며느리가 그렇게 됐다”라고 자신을 탓하며 눈물을 훔쳤다. 풍경도 같이 자지러졌다.
산 깊은 그늘 가지 끝에 매달린 또 하나의 풍경이 나를 울렸다. 어느 날 울창한 숲에서 의식을 일깨우는 푸른 소리가 났다. 산에 잇닿은 밭에 두릅을 따러 가는 길이었다. 예전처럼 소에게 풀을 먹이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있을 리도 없는데 풍경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남편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아름 둥치 푸른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 끝에 풍경이 있었다.
“저기다 풍경을 어떻게 매달았지?”
나무 아래는 다랑이 밭이다. 부직포를 덮어 무르팍이 닿을 정도로 편백 묘목을 가득 심어놓았다. 밤이면 산짐승들이 내려와 묘목을 파 뒤집어 놓는 바람에 밭 주인이 언덕 위 튼튼한 나뭇가지에 풍경을 매달았다 한다. 풍경 하나로 산돼지를 쫓을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밭은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달그랑 소리를 내어 절로 눈이 갔다. 한데 이듬해부터 봄이 되고 여름이 되어도 그 가지에는 새순이 돋지 않았다. 시름시름 앓는 것 같았다. 같은 나무, 다른 곳에서는 푸르게 잎이 흔들렸지만, 그 가지는 끝내 삭정이가 되어갔다.
풍경에도 영혼이 깃드는 것일까. 아무도 가지 않는 호젓한 산길에 혼자 깨어 얼마나 자신을 때리며 울었을 것인가. 새 한 마리 앉아 쉬지 못하게 방향타를 잃고 밤낮을 외로움에 흔들리고 흔들렸을까. 새순조차 돋아나지 못할 만큼 오래 바람을 몸에 들이며 몸부림친 게 틀림없다.
풍경소리는 일렁이는 마음의 잡념을 털어내고 평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던가. 사람도 환경에 따라 다르듯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매달렸는가에 따라 소리도 다른가 보다. 대웅전 아득한 처마 끝에서 바람을 만났을 때는 수행자들의 마음을 다잡아 수행의 끝을 놓지 말라는 뜻일 테다. 또한, 그곳을 찾는 불자들이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안정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비명이라 여겼던 소리를 되새김해 듣는다. 다시 귀를 기울이니 또 다른 소리로도 들린다.
뒷집의 풍경은 집주인을 흔들어 깨우려는가 보다. 녹초가 되도록 일하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주인을 위무하는 것만 같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은 허물어지는 것도 순간이다. 한데 풍경이 살아 있다며 기척을 내는 바람에 벌레나 새들도 함부로 근접하지 못해 낡아 가는 것을 막아 주는 게 아닐까.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그들의 궁극적 사명을 들으니 미몽에서 깨어나듯 정신이 맑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