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 이제원 - 2025년 흑구문학상 대상

 

 

  내년에 해외 자전거 여행계획을 세워놓고 가슴 설레던 중, 자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산 노인일자리센터를 통해 집에서 가까운 **택배회사를 소개받았다. 아침 일곱 시에 시작해서 열 한 시에 끝난다는 조건이 너무 좋았다.

  택배관리센타로 가면 밤새 물건을 싣고 달려온 기사와 육중한 화물차가 어둠을 끌어안고 곤하게 잠을 자고 있다. 작은 택배차들이 새벽을 깨워가며 불 만난 불나방처럼 커다란 택배 트럭 근처로 모여든다. 물건 하차 준비가 끝나면 두 명이 커다란 택배차 안으로 올라가 컨베이어 벨트로 물건을 내리고, 작은 택배차 주인들은 자기 짐을 선별해 싣는다.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컨베이어 벨트가 차 짐칸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차 안에 실린 물건 일부를 헐어내는 일이다.

  손을 넣을 공간이 없어 어느 곳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난감하다. 모든 일이 시작하기가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일단 컨베이어 벨트가 들어갈 공간이 생기면 두 명이 차에 올라 택배 상자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 내려놓기 시작한다. 택배 상자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 그냥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서 더 힘들다. 다음 사람이 물건 위에 붙어있는 송품장을 쉽게 스캔할 수 있도록, 택배 상자에 붙어있는 송품장이 윗면으로 오게 한 다음, 글자가 가로로 보이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건을 들고 좌우로 이리저리 돌려 보며 송품장을 찾아야 한다. 제일 힘든 것은 송품장이 커다란 무거운 택배 상자 아래 붙어있는 경우다. 송품장을 찾기 위해 사방을 둘러 본 후 없으면, 송품장이 상자 밑바닥에 붙어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택배 상자를 거꾸로 엎어 놓아야 한다. 손목이 견디어 내기 어렵다고 소리치면, 나도 모르게 물건을 실은 사람에게 육두문자를 보내게 된다.

  내 키보다 더 높아 손이 닿지 않는 물건도 골치가 아프다. 펄쩍 뛰어도 손이 닿지 않으면, 그 아랫부분의 물건을 먼저 꺼내 위에 있는 물건을 낮춘 다음에 내려야 한다. 어느 때는 물건들이 내게로 와르르 쏟아져 머리에 부딪히게 되면 부딪힌 부분이 얼얼하다. 운 좋은 날에는 차 한 대 분으로 하루 작업이 끝나지만, 네 대 분의 물건을 처리해야 하는 날도 있다. 게다가 다음 작업할 화물차가 늦게 오면 내 차에 올라 히터를 틀고 땀에 젖은 속옷을 갈아입고 차가워진 손과 발을 녹이며 화물차를 기다려야 한다. 이런 날은 열 한 시가 훨씬 넘어서까지 일해야 한다.

  택배 알바를 하면서 아침 운동 방법도 바뀌었다. 아침마다 하던 요가와 스트레칭을 마치고 나면, 택배 하차 일을 위해 아령으로 팔과 손목 근육을 키우고 손목을 돌려가며 근육을 유연하게 풀어주는 운동을 더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손목을 돌리고 주무르기도 하면서 미안하다고 보듬으며 위로해 준다. 제일 무거운 짐은 농산물인데. 그중에서도 소금에 절인 배추가 가장 무겁다. 손으로 잡을 수 있도록 상자 중간에 손가락이 들어갈 구멍을 내놓지 않아서 더 힘들다.

  절인 배추 상자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팔에 힘이 불끈 들어간다. 김장철인 초겨울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절인 배추가 이렇게 무거운 것일까? 여름 내내 양산도 쓰지 못한 배추가 감내한 뜨거운 햇볕 무게에, 거무스레하던 소금이 따가운 햇볕에 질려 하얗게 변한 공포의 무게가 아닐까. 여기에 농부와 염전 노동자의 땀방울까지 더해졌으니, 어찌 가벼울 수 있겠는가. 아무리 무거워도 김치를 먹는 사람의 마음은 가벼웠으면 좋겠다. 다가올 설 명절 전에 쏟아져 나올 많은 택배 상자에 대해 걱정이 섞인 기대감도 가져본다. 나이 들어가면서 내 체력을 시험해 보고 싶다.

  무겁고 힘든 짐일수록 가슴 가까이 끌어안아야 한다. 옷처럼 가벼운 짐은 한 손으로 잡아서 쉽게 던질 수도 있다. 내가 살아온 방식을 생각해 본다. 이와 정반대로 살았던 것 같다. 교사로 있으면서 착하고 공부 잘해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은 끌어안고, 공부도 못하고 말썽만 피우며 자기 앞가림하기 어려운 아이들은 한 손으로 가벼운 물건을 다루듯 건성건성 했던 기억에 얼굴이 화끈해진다. 교사가 되기 전에 택배 일을 해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라서 더 안타깝다. 출발지에서 물건을 싣는 사람들도 생각났다. 물건을 실을 때는 물건을 들어올려야 하니 내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아 손이 닿지도 않는 곳까지 어떻게 물건을 올리나 궁금했다. 불현듯 나도 물건 싣는 일도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그들은 그토록 어려운 일의 대가로 얼마나 받을까. 너무 힘든 일이라 네팔이나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의 노고가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화물차의 덮개가 열리면 그 차가 어떻게 왔나가 보인다.

  빠르고 급하게 온 차에 실린 물건들은 제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전체가 앞으로 쏠려있다. 이럴 때도 어느 곳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하다. 서로 뒤섞여 의지하고 있어 건드리기만 해도 물건들이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이다. 달음질치듯 살아온 내 인생도 조물주가 보기에 저렇게 앞으로 쏠려있으리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택배 상자 위에는 보낸 이와 받는 이를 비롯한 모든 이력이 빼곡히 적힌 바코드를 들여다본다. 물건이 크고 작건, 싸고 비싸고 간에 모두 일회용 딱지 한 장이 붙어있다.

  물건이 주인에게 도착 되면 필요가 없어져 휴지통으로 들어가야 하는 전혀 쓸데없는 것들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지위가 낮건 높건, 가난하건 부자이건 간에 조물주에게 도착하면 소용이 없어져 떼어져 버릴 일회용 딱지들이 아닐까? 바코드에는 출생지와 경유지 그리고 종착지가 숫자와 긴 막대로 되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있다. 오직 스캐너만이 그 비밀을 읽어낼 수 있다. 우리도 누가 어디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살아온 것들을 끝끝내 감출 수는 없으리라.

  스캐너를 만나면 택배의 모든 것들이 드러나듯, 우리도 종착역에서 조물주를 만나면 모든 것이 숨김없이 드러날 것이다. 앞으로라도 조심조심 삶의 발걸음을 떼어야겠다. 일을 다 마치고 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땀이 식으면 감기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 행복감이 스멀거리며 밀려오면서 몸의 피로도 말끔하게 가셔진다. 육체노동은 전체 삶에 탄력을 붙게 해주어 좋다. 홀로 지내기에 춥기는 하지만 행복한 겨울이다. 다음 겨울에는 어떤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려나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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