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ᄒᆞ 노피곰 도ᄃᆞ샤 / 최상근 - 2025년 제8회 아산문학상 금상

 

익숙한 듯 온전치 않은 정읍사井邑詞가 아내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듯 아내의 목소리는 망설임과 흐릿함을 품고 있었다. 그리움이 음절에 걸려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숨결을 밀어내어 한 구절을 길게 늘이기도 하는 것 같았다.

정읍사란 행상을 나간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불렀다는 고대 백제시대의 가사다. 아내가 흥얼거리는 그 가사에는 누구의 얼굴이 깃들어 있을까. 그리움이 가볍게 피어오르듯 흘러나오는 그 음성 속에 아내의 마음이 어른거렸다.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면 가사는 조금 더 길어졌지만, 끝까지 부르는 일은 드물었다. 무엇이 그녀를 멈추게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노래의 끝에는 늘 어떤 감정의 절벽이 있는 듯했다.

가끔은 한숨처럼 제목 같은 노랫말만 내뱉고 말았다. 그 짧은 구절이 모든 마음을 다 말한 것인가. 남은 말들은 목구멍 어딘가에 머물다 스러졌다. 음의 높낮이나 리듬은 아랑곳없었다. 그날의 마음결에 따라 흘러갔다. 그 노래에는 아내의 인생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고요한 흥얼거림 속에서 나는 아내의 과거와 마주쳤다. 말 없는 독백을 듣는 듯했다

내 마음속에도 어른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부모와 형제, 친구들과 한때 사랑했던 얼굴도 일렁거린다. 그들은 내 심신을 사랑의 온기로 채워준 양육자들이다. 그들 안에 나의 기원이 있다. ‘나’란 존재는 스스로 완성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사랑과 침묵 그리고 시선이 쌓여 길러지고 조각된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몸짓을 기억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기억은 이성의 작용이 아니라 감각의 누적이다. 어떤 날은 창문 너머로 스미는 햇살에 문득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형제들과 다투다 함께 웃던 밤이 지금도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떤 풍경이 때때로 나를 지탱해주는 뿌리다.

아내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아내의 마음에도 지워지지 않는 손길과 목소리가 남아 있을 것이다. 한때는 그 존재들이 삶을 채웠으리라. 지금은 그 빈자리가 노래가 되어 남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움은 그렇게 시간을 타고 흘러 다가온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때로 미련이 된다. 아내가 부르는 노래의 구절 속에서 나는 그 모든 감정의 그림자를 본다. 완전히 말해지지 않는다. 끝까지 불리지 못한 그 노래처럼, 사람의 마음도 언제나 조금쯤은 미완으로 남는다. 그 미완의 결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것 아닐까.

나는 괜스레 아내가 마음에 품었을 누군가를 상상해 보았다. 들은 바 없어 그 상상은 허공을 맴돌다가 아득히 흩어졌다. 어쩌면 이미 잊힌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면 다시 살아나는 이름일 것이다.

아쉬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아쉬운 누군가를 마음속에 묻어 둔 채 살아간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삶이 얽히고설키어 마음 한편에 어둠이 질 때면 무의식 깊숙이 감춰두었던 감정이 문득 깨어난다. 말없이 펼쳐지는 무언의 연극 같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의 그늘이 걷히고, 현실이라는 족쇄도 느슨해진다.

밤이 되면 의식은 가라앉는다. 대신 상상력이 물처럼 퍼져나간다. 그리움은 날개를 달고, 밤하늘로 떠오른다. 별이 되어 박힌 그리움은 저마다의 사연을 은빛으로 떨며 반짝인다. 저 별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그 옆의 별은 또 어떤 아픔을 삼켰을까. 무연고 묘지처럼 조용하던 별들이 어느 순간 감정을 흘려보낸다. 그때마다 별빛은 젖은 기억처럼 가슴 한가운데로 흘러들어온다.

그날 밤 함께 처음 걸었던 설렘이 사라지지 않는다. 골목을 나란히 걷던 충만함도 떠오른다. 열이 나는 나의 이마를 짚으며 눈빛으로 묻던 그녀의 염려도 여전히 살아 숨 쉰다. 그 모든 순간이 오랜 시간의 저편에 포개지며 하나의 그물망처럼 엮여 있다. 그것들은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오를 수 있다는 은근한 증거들이다.

추억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다. 낡은 냄새 하나에도 비일상이 열린다. 마음은 그 틈을 따라 과거로 미끄러지듯 빠져든다. 추억은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로가 된다. 그것은 과거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길이기도 하다.

가장 건전한 관계는 서로에게 틈을 내주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관계는 언제나 강압적이다. 기대가 지나치면 실망도 커진다. 실망은 곧 상대를 바꾸려는 욕망으로 변질된다.

그러나 틈은 가능성이다. 변화가 들어설 여지이다. 그것은 상대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공간이다. 서로를 전부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여유이기도 하다. 곧 완벽한 일치를 포기하는 지혜다. 같은 방 안에 있어도 각자의 창문을 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틈이 있다는 건 그만큼 서로를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붙잡지 않아도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다.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이다.

관계는 늘 이어져야만 건강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진다. 침묵이 흐른 뒤 다시 말이 오간다. 그때 비로소 단단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틈을 통해 비로소 서로에게 다가간다. 거리를 두되, 그 거리만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틈은 마음의 창이다. 그 창이 닫히지 않는 한 관계는 언제든 빛을 들이고 바람을 통하게 할 수 있다. 아내와 나 사이에도, 그 바람은 조용히 오갔으리라.

아내의 노래에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음의 고저가 제법 자리를 잡은 듯했다. 두 눈은 어딘가 닿을 수 없는 곳을 응시하는 듯했다. 목소리는 현실을 밀어내려는 듯 힘이 실려 있었다. 그건 단지 노래가 아니었다. 마음을 끌어올리는 간절한 몸짓이었다. 막연하고도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 이끄는 외침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그리움을 품은 채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오행이 만물을 이루는 근본이듯, 그리움 또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본질일 것이다. 그래서 그리움은 사라지거나 부스러지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우리의 심장 언저리를 서성인다. 육지와 바다가 맞닿는 바닷가의 돌그물에 물고기가 걸려들 듯, 우리가 머물렀던 어느 자리에 그리움도 여전히 맴돌고 있을 것이다. 그 서성임은 마치 심장 소리처럼 조용히 그리고 집요하게 마음을 울린다.

수많은 이들이 내 곁을 스쳐 갔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내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다. 또 어떤 이는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은은한 향기를 피운다. 그 향기를 맡을 때마다, 나는 삶이 조금 더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아내가 다시 노래를 불렀다.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 나는 조용히 후렴구를 읊었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아내가 피식 웃었다. 투명한 웃음이 얼굴에 스쳤다. 한동안 침묵이 우리 사이에 머물렀다. 말은 없었지만, 그 정적 속에는 많은 것이 오갔다. 눈길과 숨결이 감정을 대신했다. 우리는 서로의 그리움을 조금씩 껴안고 있었다. 누구도 먼저 묻지 않았다. 먼저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각자의 그리움이 서로에게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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