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풀기 / 조춘희

 흔들린다는 건 중심이 조금씩 기울고 있다는 것, 약속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흔들리는 횟수만큼 불안이 증폭되고 있었다. 제 위치를 지키는 일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언제나 긴장감을 갖고 센터를 지키지 않았던가. 순전히 대문을 지키고 서 있던 밤색 단추 때문이었다. 단단히 잠겨있던 단추가, 늘어진 실 길이만큼 풀어져 있고, 지퍼는 덩달아 반쯤 내려져 있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은행 볼일을 보러 가는 길이다. 왠지 허리가 허전해 내려다보니 아뿔싸! 단추가 한 가닥 실에 온몸을 의지한 채 달랑거리는 게 아닌가. 신경이 온통 그리로 쏠렸다. 바삐 걷다가 바지가 훌러덩 벗겨지기라도 하면 벌건 대낮의 그 망신을 어쩌란 말인가. 허겁지겁 돌아와 사무실 서랍에 대기 시켜 놓은 반짇고리를 찾아냈다. 알록달록 열 가지 색깔로 질서정연하게 들어있는 실타래 속에서 내가 찾는 밤색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웬일일까 잔뜩 엉켜있어 쉽사리 첫 매듭을 찾을 수가 없다. 언제 이렇게 엉켜 있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며칠 전 쓸 때 급하게 풀다가 조금 엉킨 걸 그냥 둔 기억이 났다. 진작 다가앉아 미리 풀어놓을 일이었다. 아무리 애써도 첫 매듭을 찾지 못해 화가 치밀어 가위로 싹둑 잘라버렸다.

아버님 아버님! 소리쳐 불러도 뒤 한번 돌아봐 주지 않으셨다. 수돗가에 앉아 낫을 갈고 계시다가 내가 다가가자, 홀연히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 뒷모습에서 오랜 정적만 흘렀다. 잠시 후 천둥소리가 났다. 두려웠다. 그토록 사랑스러워하던 며느리가 아니던가. 어딘가에 낙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맞아야 할 벼락을 누군가 대신 맞은 게 아닐까. 낱낱이 들추어내지 않으셔도 울면서 잘못을 빌었다.

꿈속에서 시아버님을 뵙게 된 건 한없는 기쁨이었다. 얼마나 놀랍고 서러웠던지 목이 터져라 불렀다. 간절한 만큼 말씀 한마디 없으시고 자꾸 멀어져 가는 뒷모습에서, 그때 아버님의 섭섭함의 깊이가 느껴져 왔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그 사랑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스물한 살에 시집온 철부지 며느리가 넙죽 절을 할 때 환하게 웃으시던 아버님의 모습을 난 잊을 수가 없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며느리를 어느새 완전히 지워 버리신 걸까.

결혼해서 전세방 하나 얻을 돈도 마련해 놓지 못하고 4000원짜리 사글셋방에서 출발한 며느리를 무척 대견해 하셨다. 홀로 계신 아버지의 생활비 조달을 위해 봉급 타면 몽땅 아버님께 갖다 드렸으니 단 50만 원 전셋값도 없을 수밖에... (그때 당시엔 50만 원짜리 전세가 있었음) 가난한 공무원에게 시집와 불평 없이 살아가는 아내를 대견해 했고, 시아버님 역시 사랑스러워하셨다. 그 와중에도 근근이 저축해, 시숙이 낳아놓고 책임지지 않은 5남매를 보살폈다.

홀로 계신 아버님의 유일한 낙은, 충주에 사는 작은 아들네 집을 거쳐 서울에 살고 있는 딸네 집을 다녀가시는 것이었다. 어느 해 봄날,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즈음, 양복을 말끔히 차려 입고 아버님께서 오셨다. 서울 시누네 집을 다녀오시겠단다.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고깃국을 끓여 정성껏 대접하고 옷매무새를 살펴 드리다가 속에 입으신 와이셔츠가 꼬지레 한 것을 발견했다. 도저히 그냥 가시게 할 수 없었다. 장롱에 즐비하게 걸린 남편의 와이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하나를 꺼내어 갈아입으시도록 말씀드렸다. 몇 번 입혀 드리고 매만져 드리면서 잘 코디해드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며느리가 마음 써 드리는 만큼 흡족해하지 않으셨다. 그럴 수밖에…….

아버님 체구는 아담하신데 아들은 거구였다. 품이나 팔 길이가 맞을 리 만무한데 자꾸 잘 어울린다고 우겼다. 속에 입는 것이라 그럭저럭 입고 가셔도 될 텐데 며느리 마음도 모르시는지, 계속 입었다 벗었다 하시더니 종내 안 입고 가시겠단다. 아기하고, 시장이나 가까워야 쪼르르 달려가 사다 드릴 텐데. 이래저래 속이 상했다. 아니 일부러 역성을 냈다. 시집 온 새 며느리에게, 전셋집 하나 못 얻어주신 시아버님이 원망스러워, 이때다 싶어 억지를 쓴 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 걸 괜찮다고 우기는 며느리가 얼마나 야속했으면 딸네 집으로 휑하니 떠나셨을까. 시집와 처음으로 아버님께 낯을 붉힌 셈이다. 서운함이 있으셔도 좀체 말씀을 안 하시던 아버님, 아내를 일찍 떠나보내고, 외로운 삶을 꾸려 가시던 아버님께 서운함을 드렸던 죄책감에 오랜 날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을 꿈속에서 뵌 것이다.

혼자 있을 땐 질서의 개념이나 합의론적 개념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둘 이상만 되어도 어떤 약속이 필요한 것이다. 두 사람의 욕구나 의견이 상충되어 갈등이 생길 때, 어떻게 매듭을 풀어갈까 하는 문제는 어쩌면 사회학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자 질문일 것이다. 사회는 많은 개인들로 이루어졌고 그 이루어진 집단이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합의점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어떤 형태로든 합일점을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유명한 사회학자 파슨스는 어떤 공통의 합의 기준이 없으면 사회란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지금 우리에겐 사회적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언제나처럼 헐뜯고 흠집 내기식 대안으론 매듭 풀기가 요원할지도 모른다. 각자 자기들의 이익만 쟁취하기 위해서 갈등할 것이 아니라 보다 평화롭고 진일보한 사회 구현을 위해, 서로의 합일점을 찾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나치게 과거에 연연해, 현재의 중요한 부분들을 놓쳐 버리기보다는 서로 인정할 것은 하고 최대한 투명하게 이루어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타인과 나 사이에 일정한 가치 기준이 공유되어야 할 것이다. 자꾸 뒤엉키는 갈등의 매듭이 풀어지고, 균형 잡힌 사회 체계에서 마음 놓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그날은 진정 올 것인가.

생존해 계실 때 시아버님 가슴의 매듭을 왜 풀어 드리지 못했을까. 20년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때늦은 후회로 가슴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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