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유포자 / 황선유

이런 물음을 해본 적 있다. 설화에 나오는 갓장이는 대나무 숲에다 외쳐서라도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의 비밀을 말하고 싶었을까? 신화 속의 이발사는 우물에다 대고 소리치기까지 왕의 비밀을 참을 수는 없었을까?

이야기의 결말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대나무를 베어내고 우물을 메워도 갓장이와 이발사의 외침은 바람결을 따라 퍼지고 퍼져서 여기 나에게까지 왔다는 것. 그러니 그때나 지금이나 비밀은 없다?

만약에 갓장이와 이발사가 죽기까지 비밀을 함구했다면 어떠했을까? 일테면 ‘최초 유포자’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제아무리 엄연하고 은밀한 실체의 ‘당나귀 귀’일지라도 저 불안정한 ‘바람’ 앞에 함부로 나신을 내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비밀의 실체인 당나귀 귀와 최초 유포자인 갓장이와 이발사 그리고 널리 또 널리 퍼뜨린 바람까지. 이렇듯 삼각의 위태한 구조가 비밀의 방정식인 셈이다. 마땅히 근은 구할 수 없을 터이니 참과 거짓 또한 가릴 수 없는 만고에 막막한 비밀 방정식.

더한다면 한 가지 난처하고 불편한 진실이 있다. 숨 쉬고 말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너나없이 별도의 보호 장구 없는 무방비로 비밀 방정식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모자 속에 감춘 당나귀 귀가 새 나갈까 노심하거나. 갓장이와 이발사의 딜레마에 머물다 부지불식이든 아니든 어느 순간 무례 무정 무책임 무자비의 최초 유포자가 되기 위하여 대나무 숲으로 달려가고 우물가를 두리번거리거나. 향방 없는 바람에 무색무취 무감 무애 무진 무변으로 휘돌아다니거나.

나는 지금 최초 유포자가 되어 엄청 엄청난 비밀을 누설할 것이다. 명백하니 어제까지는 비밀이었다. 읽고 왕창 김빠질 독자를 위하여 잠시 심호흡을 권해 드린다. 행여 바람이 되려 하는 그대에게도 잠시만….

좀 멀리 초등학교 6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진주의 신설 사립중학교에서 장학생을 뽑는 시험이 있었는데 상당한 혜택이 있었던 걸로 안다.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방과 후 따로 남도록 하여 시험 준비를 시켰다. 문제를 풀고 설명을 들었다.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한동네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둘이 같이 가라며 등을 다독거려 배웅했다. 늦게까지 기다려 준 친구가 무척 고마웠지만 어떤 말로 표현했는지 기억은 없다. 집으로 가는 길에 꼬빡 해가 졌다. 학교에서 집까지, 저수지 둑길과 이어진 산길까지 십여 리를 걷는 동안 둘이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도 기억에 없다.

다음 날 그다음 날이 되었다. 선생님은 급식으로 주는 강냉이 식빵을 한 덩이씩 우리 손에 들려주며 어서 집에 가라 손짓했다. 빵을 먹었는지는 모르겠다. 저수지 둑길 한가운데쯤 왔을 때 별안간에 그 일이 일어났다. 책 보따리를 땅에 패대기친 친구가 내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겨 땅바닥에 자빠뜨렸다.

“집에 가서 저녁밥 해야 하는데 선생님이 너랑 같이 가라고 남으라 했다.”

선생님인지 나에게인지 분노의 주먹질로 머리와 등을 마구 때렸다. 그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모내기 철에는 학교 대신 어른들 틈에 끼여 모품을 파는 아이였다. 나는 감히 울 수조차 없었으며 생전 처음 공포를 느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가고, 분을 추슬러 재운 친구는 나동그라진 내 책 보따리도 마저 챙겼다.

“말하면 가만 안 둔다!”

다행히 사방은 침묵했고 본 사람은 없었다.

“가자!”

그러고는 내 앞서 걸었다. 전혀 빨리 걷는 것은 아니었다. 말없이 뒤따르는 나와의 거리를 가늠해가며 걷는다는 걸 으스름과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제야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흘렀지만 단단히, 입술을 감물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