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반상기 / 이용옥

엄마, 저희 집에 오실래요?

말 한마디를 내뱉고 답도 듣지 않은 채 앞치마를 두른다. 냉장고 식재료를 점검하지 않더라도 만들 음식은 정해져있다. 백미 흰밥에 소고기 맑은 장국, 빛깔 고운 배추김치는 기본. 거기에 생선맑은탕, 소고기전골, 닭꼬치적, 녹두전, 소갈비찜, 더덕구이, 도라지나물에 콩나물숙채, 어리굴젓, 북어포무침에 민어회까지. 후식은 당연히 엄마가 좋아하시는 들깨강정이다.

부엌에는 오직 나뿐이다. 일감은 많고 일손은 부족하니 몸을 재게 놀려야 한다. 핏물 뺄 고기들을 찬물에 담그고 쌀을 씻어 불리는 한편, 전거리, 적거리, 나물과 생선을 다듬는다. 무치고, 끓이고, 지지고, 볶고... 눈 깜짝할 새 해낸 음식들. 절대미각은 간을 안 봐도 최고의 맛을 찾아내고 빛 고운 고명은 아름다움을 넘어선 예술이다.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들. 이따금 나는 이렇게 초능력을 발휘한다.

그릇을 준비할 차례다. 부엌 장 맨 위 칸에 모셔둔 놋그릇, 방짜 유기가 등장한다. 주발과 탕기, 대접과 쟁첩들. 한손 안에 잡히는 앙증맞은 종지부터 조금 더 큰 보시기까지 하나하나 자태를 드러낸다. 제 몸피보다 큰 뚜껑을 쓴 납작한 쟁첩들은 입을 꼭 다문 조개, 조금 큰 보시기는 이엉을 인 오두막 초가처럼 새침하다.

놋그릇을 닦는다. 오래된 살갗 위에 눌러 붙은 청동 반점. 그 옛날 당신이 하셨듯이 지푸라기 뭉친 수세미에 고르게 재를 묻혀 재주껏 닦아낸다. 수세미로 옮겨 앉은 푸른 녹, 비로소 드러나는 매끈한 살결. 그릇이 뿜어내는 광채가 잘 익은 보리 이삭에 비친 아침햇살이자 석양에 일렁이는 금빛물결이다. 쟁첩 하나를 손등에 얹고 가운데 손톱으로 톡 튕긴다. 깊고도 청아한 울림. 세월을 뭉치고 쌓은 삶의 지층들이 그만큼의 시간을 타고 올라와 뿜어내는 숨비소리 같다.

밥을 푼다. 오목한 주발에 새하얀 입쌀밥을 고봉으로 올린다. 소고기 장국은 대접에, 생선 맑은 탕과 전골은 탕기에, 소갈비찜은 조칫보에, 닭꼬치적과 녹두전 나머지 찬들은 쟁첩에. 정갈하게 나누어 담고, 김치보시기와 간장 종지도 잊지 않는다. 소반 위를 가득 채운 음식들. 거기에 놋수저 한 벌을 정성껏 올린다. 마침내 완성된 열두 첩 반상. 바라보는 마음이 흐뭇하다. 엄마만 오시면 오늘 상차림은 대성공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길다. 엄마는 오고 계실까. 몇 번이고 창밖으로 눈길을 주지만 아직도 기척은 없다. 기다리는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막연한 불안감, 어쩌면 엄마는 차려놓은 상을 보고 불호령을 내리실지도 모른다.

"이게 왜 네 집에 있어?"

나름 유서 깊은 가문의 유서 깊은 유물이어야 할 유기반상기가 제사를 모시는 큰오빠도, 고향을 지키는 작은 오빠도 아닌 내게 와있다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더욱이 한 가문의 종부로서 관혼상제를 관장해온 엄마가 평생을 사용했던 유기를 출가외인의 집으로 옮겼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엄마가 떠나시고 3년이 되어가던 해, 오랜 감기 끝에 폐렴으로 누우신 아버지가 집안 정리를 하자셨다. 옷과 이불을 치우고, 그릇과 옹기를 내놓고, 그 과정에서 벽장에 깊이 둔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스테인리스 제기를 산 뒤로는 본 적 없는 놋그릇들, 오랜만에 빛을 본 물건이지만 뿜어내는 광채엔 위엄이 서려있었다.

"느 엄니와 혼인 할 때 선물로 받은 반상기다"

엄마 나이 마흔 둘에 태어난 늦둥이 내게 열여덟 어린 엄마의 결혼사진은 낯설었다. 눈이 커다란 소년과 젖살이 통통한 소녀가 무표정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사진, 그 어린 부부에게 혼인선물로 주어졌다는 유기그릇들.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왠지 달갑지가 않았다.

시집 와 보니 식구가 열일곱, 날마다 보리방아 쪄 그 많은 식구의 밥을 지어댔다던 엄마. 밥이 남으면 배를 채우고, 모자라면 남몰래 굶어야 했다는 어린 종부가 저 많은 그릇들을 받아 안았을 때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선물이었다는 반상기의 그릇들 하나하나가 어린 신부가 채워 넣어야 할 빈 공간이자 져야 할 짐의 무게는 아니었을지. 해마다 열 번이 넘는 제사에 공식처럼 등장했던 놋그릇의 기억. 안마당에 멍석을 펴고 수북이 쌓인 유기의 푸른 녹을 닦아내던 엄마의 지친 몰골이 환영처럼 지나갔다.

일곱이나 되는 자식들을 낳고 기르며 허리 펼 새 없었던 엄마. 자식뿐 아니라 자식의 자식들 백일, 돌상까지 빠짐없이 챙기고 보살폈던 엄마. 그런 그분이 단 한 번만이라도 당신을 위해 저 그릇을 채운 적이 있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이어지며 가슴 속이 찌르르 저려왔다. 순간 나는 아버지께 무모한 제안을 했다.

"저거 제가 가져가도 돼요?"

대답은 의외로 간명했다.

"그러렴"

그렇게 반상기는 내게로 왔다.

엄마가 그리운 날, 나는 반상기를 꺼낸다. 굳은살과 거스러미로 고울 날 없던 엄마 손이 문지르고 닦고 씻어냈던 그릇들. 그것들을 만지고 쓰다듬다보면 왠지 엄마와 닿을 것 같다. 열두 첩, 왕후의 수라상을 차려보지만 언제나 환상일 뿐. 단 한 번만이라도 다녀가실 순 없을지, 단 한 번만이라도 막내딸의 정성어린 진지 상을 받아보실 순 없는 건지... 어쩌다 꿈에라도 오시련만, 발길 한 번을 주시지 않는다. 저 유기반상기를 품고 있는 한, 한 번은 찾아오시지 않을까. 그래도 부질없는 희망을 버릴 순 없다.

펼쳐놓았던 놋그릇들을 주섬주섬 챙긴다. 또 하루가 이렇게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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