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문 앞에서 / 정선모
우리는 별일 없는 듯 작별을 나눴다. 무심하게 손을 흔들고, 서로의 뒷모습을 보지 않은 채 걸음을 돌렸다. 나는 그 인사가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마지막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내일 보자”며 평소처럼 인사를 남긴 채 헤어졌다.
오랜 친구였던 그녀와는 삶의 골목골목을 함께 걸어왔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주는 사람이었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무엇을 해주지 않아도,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었던 친구였다.
친구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건 지난해 늦가을이었다. 아침부터 유난히 스산했던 그날, 바람은 낙엽을 마른 가지에서 툭툭 떼어내며 길을 쓸고 있었다. 전화를 잘 받지 않아 궁금하던 차에 친구의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주 가던 카페에서 만난 친구의 남편은 가볍게 목례를 한 뒤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말줄임표 가득한 눈빛이 수만 마디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다음 날 친구의 병실을 찾았다. 햇볕이 따사롭게 비치는 창가의 침대에 누운 친구는 예상보다 덤덤한 얼굴이었다. 콧등을 찡그리며 웃는 특유의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나이가 너를 엄청 무서워하나 봐. 늙지도 않네.” 평소 같으면 “그럴 리가” 하며 웃었겠지만, 그날은 웃음이 자꾸 어긋났다. 오랜 세월 함께한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장난기 어린 인사였는데, 그날은 익숙한 농담조차 이상하리만치 길게 여운을 남겼다.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친구도 말을 아꼈고,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그저 야위어버린 친구의 손만 조심스레 감싸 쥔 채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며칠 후 친구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단 한 줄의 문자가 이토록 깊고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허무를 전하다니…. 운전대를 잡은 손이 자꾸 떨려 결국 택시를 탔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이 유난히 멀고 낯설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거리였건만 풍경은 무채색 필름처럼 흐릿했고, 신호등조차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영정 속 친구는 여전히 콧등을 찡그리며 웃고 있었다. 언제 찍은 사진일까. 저 사진을 찍을 때 친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참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녀의 딸이 말한다. “엄마가 대학에 입학하던 날이에요. 뒤늦게 하고 싶은 공부 한다고 엄청 좋아하셨는데….” 삶은 그렇게 특정한 한 장면으로 압축되기도 하고, 우리가 쌓아온 시간은 고작 한 줄의 인사로 끝나기도 한다.
사람은 말보다 눈빛으로 이별을 한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대부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미묘한 숨결과 머뭇거림 사이에 스며든다. 그래서 우리는 늘 후회하게 된다.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는 것, 해야 할 말을 너무 많이 남겼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너무 평범하게 끝내버렸다는 것을.
나는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 곁에 늘 있어 주는 존재였기에, 그 존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었다. 매번 다음이 있을 것처럼 굴었다.
마지막이란 언제나 평범한 일상에 숨어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어제의 웃음, 오늘의 인사가 한결같이 이어질 것처럼 여기고, 내일의 약속이란 기약 없는 것임을 알고도 모른 척 외면하며 살아간다.
장례가 끝난 후 친구가 마지막으로 나를 배웅했던 그 병실을 다시 찾았다. 문은 닫혀 있고, 안엔 아무도 없었다. 친구가 평생 참아온 말들, 쏟아내지 못한 울음들, 그리고 끝내 이루지 못한 꿈들이 아직 그 문 앞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우리가 나눈 모든 시간, 건네지 못한 수많은 인사, 말하지 못한 진심들 역시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듯하여 한참을 그곳에서 서성였다.
다시 그 문 앞에 서면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인사하고 싶다. 무심한 척하지 않고, 침묵하거나 미루지 않고, 내 마음을 더는 가슴속에만 담아두지 않고 친구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하나하나 전하고 싶다. 잘 견뎠다고, 정말 고마웠다고, 그리고 사랑했다고.
누군가의 마지막을 배웅한다는 건, 결국 내 삶의 방식으로 그 사람을 기억하고, 남은 날들을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내겠다는 다짐일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