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굽기 / 조귀순

  거행 마을에 질그릇 굽는 가마가 있었다. 동창생 아버지가 옹기장이었다. 진흙으로 어떻게 그릇을 만드는지 구경하고 싶었지만 만들어놓은 질그릇을 깨뜨릴까 봐 어른들은 그곳에 알씬을 못 하게 했다.여름 방학이었다. 친구들과 놀다 물 마시러 우물가로 갔다가 우연히 옹기 빚는 곳으로 들어갔다. 흙벽돌로 지은 움막집은 중간중간에 벽돌을 한두 장씩 떼어낸 구방으로 바람과 햇빛이 스며들었다.

아저씨는 치대놓은 찰흙을 떡가래처럼 만들어놓고 물레 앞으로 다가 앉았다. 한 발로 물레를 천천히 돌리면서 찰흙을 이어붙였다. 손만 댄 것 같은데 그릇 형태가 생겼다. 동그스름하고 예쁜 물동이였다. 무엇이 맘에 들지 않았을까. 아저씨는 일껏 만들던 물동이를 우그러뜨려서는 걷어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멈췄던 물레를 다시 돌렸다. 어린 눈에도 나는 그때 아저씨의 정신이 손끝에서 흙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아저씨는 배둘레선이 고운 물동이를 빚어냈다. 손잡이만 붙이면 완성품이었다. 그 작은 손잡이를 붙이는데 어찌나 세심한 공을 들이던지. 아저씨 표정은 근엄했다. 손끝으로 옹기의 서사를 담아낸다고 해야 할까. 며칠간 응달에서 잘 말려야 된다는 아저씨를 따라가보니 물동이들이 꽃송이처럼 피어 있었다.

가마 굽는 날 정말 하늘은 불덩이를 안고 있었다. 칠흑 같은 그믐밤도 활활 타오르는 가마불로 온 동네가 황했다. 자다가 깨보면 뒷문 창호지가 빨간 홍시 빛이었다. 밤이 이슥할 무렵 지핀 가마불은 밤새 타고서 동틀 무렵 사라졌다. 옹기장이의 마음도 함께 오롯이 하룻밤을 꼬박 새워 굽는다. 남은 열기로 뜸을 들인 후 질그릇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파치로 빼놓은 질그릇은 마을 사람들이 가져다 썼다. 어느 날 아버지도 자배기를 들고 오셨다. 생긴 건 영락없는 떡시루인데 밑에 구멍이 없다. 일그러진 데도 없었는데 실금이 생겨서 상품으로 내놓지 못한 거였다. 아버지는 황토를 물에 개어 자배기 안쪽에 짓이겨 발랐다. 황토가 실금을 메꾸고 옹기도 단단해지게 한다고 하셨다. 자배기는 장작불을 담아도 트지 않고 잿불도 느루 가는 질화로가 되었다. 아무리 매서운 추위에도 뭉근한 질화로만 끌어안고 있으면 온몸이 훗훗했다. 한낱 한줌의 흙으로 아저씨는 어떻게 시루와 물동이 같은 그릇을 만들어낼까.

글쓰기가 안 될 때면 옹기 아저씨를 떠올린다. 흙 반죽을 할 때 양동이로 물을 계량해서 넣었을까. 흙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찰지려면 몇 시간이나 치댔을까. 아저씨가 여러 옹기를 빚어내듯 나도 다양한 글을 쓸 수는 없을까.

나의 글쓰기는 서른 후반에 우연히 시작되었다. 유치원생 아이 마중을 나갈 때 새마을 이동도서관 차를 만났다. 생횔비를 쪼개어 책 사기는 어렵고 한 권씩 빌려보았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았으나 두 아이를 키우며 책 읽기란 쉽지 않았다. 식탁 위에 놓인 책은 퇴근한 남편이 읽었다. 차츰 남편이 좋아하는 대하소설만 빌렸다. 나는 책 심부름만 했는데 엉뚱하게도 책 많이 읽는 여자로 알려졌다. 그러더니 주부백일장에 참여해달라고 통장 아줌마가 찾아왔다. 학창 시절 일기밖에 쓴 게 없는데 백일장이라니. 새댁에게 삼 년 묵은 김치 맛을 내라는 격이 아닌가.

백일장 분위기가 궁금했다. 장롱 깊숙이 걸어둔 옷을 차려입고 중앙도서관 잔디광장으로 갔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수수하다. 빼입은 내가 민망스러웠다. 수필 시제를 보곤 한숨부터 나왔다. 책 많이 읽는 사람이란 이미지나 지킬 걸. 글을 읽는 것과 쓰는 일 사이에는 건너야 할 강이 있었다.

장님 문고리 잡은 격으로 입상을 했다. 수필 공부를 해보자는 문학회 선생님 제의에 가슴이 설렜다. 내 안에 글쓰기의 목마름이 있었나 보다. 나는 밭고랑에 묻힌 어머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 안에 머물러 있던 나를 끌어냈다. 지도 선생님 격려를 칭찬으로 알고 엄벙덤벙 써나갔다. 등단만 하면 술술 풀어낼 줄 알았는데 허둥대며 시들시들한 세월을 보냈다. 사랑도 결혼도 멋도 모를 때 해야 한다는 말이 맞았다 합평 시간에 쓴소리를 들으면 집어치워야지, 했다가도 멀리할수록 활기를 잃었다. 오히려 자판을 두드릴 때 느껴지는 손끝의 그 떨림이 심장을 흔들었다.

나의 글은 고향 마을 시냇물에서 찰싹거리는 수준이다. 음악이나 미술 지식도 없다. 그러나 거미도 줄을 쳐야 벌레를 잡듯 한 줄씩 써나가다 보면 내 글단지도 채워지지 않을까. 평생 가마를 구운 아저씨도 매번 좋은 그릇만 내놓은 건 아니다. 만들다 부수기도 했다. 굽다 보면 금이 가고 이가 빠지고 깨진 옹기가 수두룩이 나왔다. 구워낸 그릇이 다 상품은 아니었다. 불속에서 다져져야 그릇 다운 그릇이 나왔다.

정통 가마에서 구운 옹기는 백 년이 흘러도 숨을 쉰다고 한다. 그 안에서 발효된 간장 된장은 오랜 세월 고유의 깊은 맛을 품고 있다. 삶의 경험과 추억을 그려낸 내 글이 비록 눈에 잘 띄는 글은 아니어도, 숨 쉬는 옹기처럼 오래도록 진한 맛이 우러나는 나만의 진정성이 담긴 글을 굽고 싶다.

“글은 소품이든 대직이든 머리가 있고 고리가 있는 생명체이기를 요구하는 것”이란 이태준의 『문장강화』 글귀를 되새기며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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