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네들의 가슴속에 품어야 할 것이 많고 서리는 한이 많아서인가 치마의 가지 수가 많기도 하다. 한 겹으로 된 홑치마, 안을 넣어 겹으로 바느질한 겹치마, 부엌일할 때 앞에 두르는 앞 치마, 양쪽으로 선단이 있어 둘러 입게 된 풀 치마, 선단이 없이 지은 통치마, 겉치마 밑에 받쳐 입는 속치마, 속치마 중에서도 길이와 색깔을 각양각색으로 하고 3층, 5층, 7층 등 홑수로 지은 무지기 치마, 금박 무늬의 스란을 대어 예복용으로 입는 스란치마 등이 있다. 질감에 따라서도 그 이름이 각기 부쳐진다. 무명치마, 옥양목 치마. 삼베 치마, 명주 치마, 비단 치마, 비로도 치마가 있다.
게다가 허벅지를 다 들어 내놓아 벌거벗은 듯 망측하기도 하고, 모양새가 얄궂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던 서양 치마가 있다. 60년대 초에 첫 선을 보인 미니스커트를 시작으로 양장 치마가 도입되면서부터 모양과 형태에 따른 치마의 종류는 더 이상 나열할 수 없을 지경이다. 주름치마도 있고 월남치마도 있으며, 속은 바지요 겉은 치마인 치마바지란 것도 있다.
내 어머니의 치마는 늘, 몇 번씩이나 헤진 곳을 기우고 검정 물을 들인 광목 치마였다. 겉치마의 남루함으로 미루어 보아 한 겨울 추위에도 따뜻한 속치마 하나 변변히 입어 보지 못하셨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홑치마폭에 묻혀 나는 자랐다. 핏덩이 갓난쟁이 시절에는 얇은 치마폭으로 어머니는 가슴 졸이며 냉기와 온기를 가려 주셨을 것이다. 아장아장 앞 마당에서 노닐다 청개구리라도 만나 무서움에 떨 때면 얼른 어머니의 치마폭에 숨어 화를 면해 보려 했을 것이다.
칼 바람이 몰아치는 경루, 십 리 길 학교에 다녀올 때면 어느새 어머니의 치맛자락은 금방 얼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포근히 감싸 녹여 주었고, 고뿔이라도 걸려 콧물을 훌지럭거릴라치면 치마폭 훌렁 걷어 콧물을 훔쳐 주기도 하였다. 탐나는 물건이 있어 욕심이 생길 때에는 치마말기가 벗겨질 지경에까지 매달리면 뭐든지 해결되기도 하였고, 엄하신 아버지의 불호령 앞에서는 어머니의 치맛자락만큼 견고하고 든든한 방패도 없었다.
어머니의 치마폭에 싸여 그 은혜로 잔뼈가 굵어 오면서도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다. 제 스스로 자란 줄만 알았다. 어느새 치렁치렁한 치맛자락이 거추장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춘기를 지나고 나이 스물 넘어서는 벗어나고 싶어 안달을 했다. 아마 맵시 있고 화려한 새로운 치마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질감이 좋아 부드럽기도 하고 포근하기도 하며 유행에 뒤처지지 않은 예쁜 신식 치마였다. 아내의 치마였다. 그러나 아내의 치맛자락은 맹목적인 사랑으로만 감싸주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오지랖 넓은 성격 탓에 끼일 곳, 안 끼일 곳을 분간 못할 때는 일일이 참견을 해 주었고 혈기 왕성하여 먹고사는 일 제쳐 두고 싸돌아다닐라치면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구분 지어 주었다. 친구들과 술자리라도 잦아지고 길어지면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사나이 우정 따위는 변명으로 통하지 않았다. 천둥벌거숭이처럼 세상살이 분간 못하고 잡기판에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이내 네이도와 같은 금속성의 날카로운 비수를 꺼내 들기도 하였다.
그 모든 것이 고맙기는커녕 사나이 가는 길에 장애물이라 여겨졌다. 꼴 같지 않은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그 치마폭을 밀쳐 내려 안간힘을 썼다. 짜증 내고 아귀다툼을 하기도 하였고 치마폭에 휘감기면 무덤에라도 들어가게 되는 듯 발악을 했다. 억지를 부리며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발광을 해서라도 거친 치맛자락을 겨우 잠재우고는 승리한 듯 미소를 지었다. 언제든지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세상살이가 제대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 하물며 치맛바람은 패가망신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치마폭에서 꼼짝 못 하는 친구들을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아마도 아내의 치마폭이 아니었더라면 그나마 인간 꼬락서니가 더없이 말이 아니었을 터인데 말이다.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을 겪었겠는가. 오죽하면 남편을 일컬어 '철없는 큰아들 하나 더 키우는 셈 친다'라고 체념에 가까운 우스갯소리를 할까 싶다.
적자생존의 거친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휘청거릴 때마다 희생적인 맞바람으로 잠재우고 평온함을 지켜 주었다. 부드러움 속의 강직함, 조용함 속의 인내심, 불안감 속의 침착함을 두루 갖춘 치맛자락이 한 가정을 지켜주었고 가정이 더해져 나라를 이루고 있으니 온 세상을 지탱해 주고 있는 근본이 치맛자락 아니겠는가. 치맛자락의 고마움과 그 위대함을 깨닫기까지가 무려 오십육 년이나 걸렸다. 이제는 치맛자락의 흔들림이 감지되지 않으면 알몸으로 내팽개쳐진 것 같은 외로움과 불안감에 안절부절을 못한다. 어느새 지치고 나약해진 것일까. 아니면 이제서 조금이나마 철이 들어가는 것일까. 치마폭에서 시작된 생이니 치마폭에서 마칠 수 있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염치없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생각이다.
'측은지심으로라도 감싸주겠지' 기대해 보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할 수가 없다. 이제껏 무엇 하나 또렷하게 해놓은 것 없는 허풍쟁이일지언정 풀 죽은 모습을 보면 썩은 기둥뿌리 보듯 불안해 하기 때문이다.
외출 채비를 하고 나서는 딸아이의 짧은 치맛자락이 아슬아슬하고 민망스러워 당최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다. 한마디 하려다 속으로 삭이고 만다. 지금이야 제 한 몸 감출 수 있으면 그만이겠지만 머지않아 품어야 할 것이 많아지고 감싸 주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길이가 길고 폭이 넓은 치마를 챙겨 입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