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가마 앞에 앉아 숨을 죽인다. 가마의 열기가 서서히 내리고 옹기를 꺼내려 하는 시각이다. 한낮의 불볕이 등묘 위로 내리자 발아래 앉았던 그림자가 지쳤는지 동쪽으로 조금씩 늘어진다. 오후 두 시에 열겠다던 가마는 세 시가 되어서야 열린다고 한다. 노산을 지켜보듯 애가 말랐으나 처음 대하는 기대감에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천 년을 빚어낸 흙빛 숨결'이란 주제로 옹기문화 엑스포가 열리는 울주군 외고산 옹기마을이다. 옹기가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행사 기간 동안 몇 군데의 가마에서 시현을 한다. 평소 옹기 제작 과정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지인들과 하게 된 동행이다. 옹기 앞에는 우리 외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다. 마치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같다. 노심초사하는 눈빛들이 나뭇잎에 반사되는 오후의 햇살처럼 빛난다.
첫아이 출산 때였다. 늦게 가진 아이였기에 가족들의 걱정이 많았다. 해산 날이 다가오자 아기의 머리가 크다며 난산이 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겁이 났다. 진통을 겪다가 안되면 수술할 예정으로 종합병원에 입원을 했다. 임신 기간 내내 유별난 입덧으로 고생을 했는데 출산 또한 순조롭지 못할 것 같아 애가 탔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의 말이 나를 더욱 긴장하게 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몸속 뼈의 문을 온통 열었다 닫는 것이라며 그 고통은 겪지 않으면 모를 것이라 했다. 어머니는 천장에 달린 전등이 눈에 뵈지 않아아 아기가 나올 것이라 했고, 언니는 웬만한 아픔은 엄살일 거라며 저승길 모퉁이를 잠시 쳐다보다 와야 한다고 했다.
분만실에 들었다. 간호사가 내 팔에 유도 분만 주사를 꽂았다. 처음에는 통증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차츰 배가 부푼 풍선처럼 터져 버릴 것 같았다. 허리는 왜 그렇게나 아픈지, 끊어지기라도 해야 의사가 달려올까. 그 정도의 아픔에는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을 뜨고 올려다보면 일렬로 배열된 형광등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형광등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했으니 더 참아야 했다. 아홉 시간 동안 온갖 몸부림을 치며 견디었다. 내가 갔다 온 곳이 저승길 모퉁이라면 나는 열 번도 더 그곳을 갔다 왔다.
가마는 이틀 동안 예열로 몸속의 습기를 말끔히 제거한 뒤 옹기를 넣고서 사흘 정도 다름불을 넣어 벽을 달군다. 가마가 닷새 정도의 임신 기간이 끝나고 이제 출산을 앞두고 있다. 의식 없는 눈으로 천장의 형광등을 쳐다보던 그때의 나 같은 상황일 게다. 불을 때는 동안 가마는 저승길 모퉁이를 열 번도 더 갔다 왔으리라. 옹기의 색을 가늠하며 잿물을 녹이느라 양쪽의 창구멍으로 찬불을 하루 들이고 서서히 식힌 후 가마의 문을 연다고 했다. 산모처럼 오도카니 누워 있는 가마의 아궁이가 흙으로 봉해졌다.
드디어 가마의 해산식解産式이 시작된다. 흰옷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옹기장이가 장인을 도와준다. 산파처럼 귀한 자식을 받으려는 의식이어서인지 머리에 흰 끈을 동여매고 흰 고무신까지 신었다. 잠시 바람이 숨을 죽인다. 지켜보던 나무들도 애가 타는 모양이다. 옹기 장인이 네 번째 등묘 앞에 선다. 순산이 어려운가. 제왕 절개라도 하듯 메스 대신 망치를 들고 쌓았던 벽돌을 차례로 거둬낸다. 불을 들인 아궁이로 옹기를 내는 줄 알았더니 가마의 옆구리로 문이 열린다. 그 앞에 한 평 정도의 레드 카펫이 펼쳐진다. 산도처럼 붉은색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떻게 생겼을까? 카펫을 통과할 옹기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고통의 극점까지 도달했다 싶은 순간, 내 몸에서 붉은 불덩어리 하나가 쑤욱 빠져나왔다. 나는 잠시 혼절했고 아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왕자입니다!" 아득한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왕 절개를 하지 않고 자연 분만을 한 것이었다. 나는 행여 아기의 사지가 성한지, 손가락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을 하고는 안도감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세상의 어떤 고통이 출산의 순간보다 더할까? 출산처럼 아름다운 고통이 또 어디 있을까.
옹기장이가 등묘 속에 들어간다. 조심조심 정성으로 옹기를 들어내는 것을 보니 새삼스럽게 생명의 존엄이 느껴진다. 한배에서 나온 자식도 제각기 인물이 다르듯 옹기의 품새도 천차만별이다. 갖가지 문양이 새겨진 옹기의 미끈한 몸매가 반짝거린다.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은 긴장감에 숙연하기까지 하다. 낮은 언덕 구릉 위로 누운 가마를 보니 산고로 의식을 잃은 것이 아닌지 안타까움마저 든다. 얼마나 애를 태웠던지 가마의 온몸이 바싹 마른 듯 보인다.
옹기를 잠시 레드 카펫 위에 세운다. 옹기 장인이 자궁을 빠져나온 아기를 살피듯 요리조리 살핀다. 제 몸에 틈을 내고 열꽃을 심은 건 아닌지, 성하지 못하여 비틀린 것은 없는지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손가락으로 두드려 울림을 주기도 하고, 대견한 듯 쓰다듬기도 한다. 선택된 옹기들이 가지런히 탁자 위에 놓인다. 태어난 옹기들은 이제 풍진세상으로 내려갈 것이다. 포플러 나뭇잎들이 바람을 내어 옹기의 몸을 식혀 준다.
해산을 끝낸 가마의 몸은 초췌해 보이면서도 성숙해 보인다. 어쩌면 진정한 여자의 몸은 출산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비스듬히 누운 가마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제 자식들을 느긋이 바라본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옹기들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가마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깊은 수면에 빠져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