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기억하는 법 / 김나현

 

 

바야흐로 나무의 계절이다. 신록의 싱그러움이 초록 물이 배어날 듯 팽배하다. 나무에 갖는 애착도 연륜 따라 깊어지는 건지. 이즈음엔 유독 나무가 눈에 든다.

어떤 장소와 연관 짓게 되는 매개물이 있다. 이를테면 고목이 대표적이다. 그곳을 들먹이면 인상 깊던 우람하고 당찬 고목이 연상된다. 그 자체로 유적이 되고 역사가 되는 나무로 하여 그곳이 한결 그곳답다.

조선 숙종 때 화엄사 각황전을 중건하며 심은 홍매 나무, 보리수 염주가 유명한 지리산 천은사의 보리수나무, 남사예담초 이씨고가 부부회화나무, 하회마을 삼신당 느티나무, 구름도 쉬어가는 지리산 와운마을 부부 천년송, 세상 길흉을 소리로 예고한 거창신씨의 황산마을 느티나무. 수령이 몇백 년인 이들 나무 위상은, 나무가 그곳에 없다고 가정할 때 명징해진다.

생명력이 강해 관상수로 사랑받는 은행나무도 기억 속에 자리매김한다. 이 은행나무는 가로수로 흔히 보지만 놀랍게도 멸종위기종에 올랐다. 귀히 여길 나무다.

은행나무로 기억하는 곳이 제법 많다. 가까이는 범어사를 지키는 수호목부터, 밀양강 언덕 금시당에 우뚝 솟아 돋보이는 나무, 의령 곽재우 생가에 홍의장군처럼 우직한 몇 아름드리나무, 달성 도동서원 앞 여러 갈래로 굽이친 나무, 유연정悠然亭과 어우러진 가을 운치가 그만인 경주 운곡서원, 서석지를 고풍스레 하는 영양 연당마을···. 은행나무가 유적지마다 각양의 자태로 또렷하게 떠오른다. 존재감을 부각하는 이런 나무를 보면 처음 심은 이를 생각게 된다.

비보림으로 기억되는 곳도 있다. 마을 입향조가 터를 잡고 마을을 형성할 때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도 함부로 놓지 않았다. 특히, 마을의 부족한 지세를 보완하려고 심은 비보 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비보 나무로 동백나무, 팽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왕버들 등을 심고 마을 안녕을 기원했다. 마을의 약한 기운을 보강하고, 나쁜 기운은 막았다. 방풍림도 겸했다. 그런 목적으로 심은 나무가 우거져 후세에 푸른 기운을 전한다.

이런 비보림이 현세에 든든한 마을 자산이 됐다. 대구 옻골마을 어귀를 지키는 느티나무숲, 천연기념물인 의성 사촌마을 '사촌리가로숲'의 낙엽 활엽수림, 역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성주 경산리 성밖숲' 왕버들군, 천년을 산 제주 '성읍리 느티나무 및 팽나무군'···. 이들 울퉁불퉁 불거진 굳은살을 보면 나무에도 영이 깃드는가 싶다.

인간은 고작 백 년을 살고 세상에서 산 흔적을 지운다. 깃들어 살던 사람도 떠나고 사람을 품던 집이 허물어져도 나무는 온전히 처음 있던 그 자리를 지킨다. 우직하게 터를 지티는 나무를 어찌 함부로 대하랴.

고향마을 어귀를 지키는 느티나무는 좀 더 특별하다. 푸성귀를 팔러 장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던 느티나무 그늘은 유년의 장소다. 하얀 수염을 가지런히 기른 할아버지가 곰방대를 물고 앉아계시던 자리다. 그동안 세월을 먹은 나무는 넌출넌출 가지를 뻗쳤다. 할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어도 나무가 베푸는 넓은 그늘엔 모시옷 입은 당신이 꼿꼿하게 앉아 계시다.

나무를 보기 시작해서인가. 눈에 띄지 않던 나무도 새삼 보인다. 집 인근 미남교차로 주변 화단은 금강송 군락지다. 어느 날 차가 신호를 기다릴 때 세어보니 무려 예순 그루쯤, 이들이 교차로 사거리에 강물처럼 흐르는 교통 물결을 지켜본다. 자동차로 이곳을 지나는 이들은 매연에 찌든 도심을 지키는 금강소나무 존재를 알고 있을까.

이제는 미남교차로가 상시 정체 구간이 아니라 소나무를 보는 구간으로 인식을 바꾸어 보는 거다. 차가 좀 밀려도 기다리는 시간이 외려 푸른 소나무를 감상하는 시간이 될지 아는가.

이처럼 나무는 어떤 곳을 뚜렷하게 상기시킨다. 나무를 기억 속에만 두지 말고 맘에 드는 나무 한 그루를 내 나무로 찜해 보다. 그곳에 가는 목적이 생길 터. 쇠미산 어디쯤에도 튼실한 내 소나무 한 그루 산다. 안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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