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분의 무게 / 박종희

 

다시, 봄이다. 유순해진 바람이 게으른 나뭇가지를 흔들고 흙을 깨우느라 바쁘게 돌아친다. 봄바람이 끄는 대로 나붓대던 목련나무는 벌써 꽃망울을 터뜨렸다.

봄이 오니 주말마다 초대장을 받는다. 봄꽃 소식과 함께 자주 날아드는 것이 청첩장이다. 연락이 뜸하던 지인이 갑자기 톡을 보내오면 영락없이 모바일 청첩장이 첨부되어 있다. 바야흐로 신랑신부의 계절이다.

올봄은 예식장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썰렁했던 결혼식장이 하객들로 활기가 넘친다. 코로나가 수그러드니 미뤘던 결혼식을 치르려는 신랑신부들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원하는 달에 예약 가능했는데 올해는 2년 후 예약까지 꽉 찼다니 아이러니다.

예식이 많아지니 결혼식 피로연 식대가 천장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이제는 식비를 생각해 부조금을 얼마나 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할 일이다. 덕분에 위기에 처했던 웨딩홀은 다시 호황을 누린다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집안에도 혼례가 있었다. 지난주에 친정여동생의 딸이 결혼했다. 3년 만의 노마스크로 요즘은 결혼식장도 예약전쟁을 치른다는데 조카는 1년 전에 미리 예약해 놔 예식장 걱정은 덜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동생은 일가친척들만 모여 조촐하게 치를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실내마스크까지 해제되다니. 코로나가 풀리면서 하객이 없을까 걱정했던 일도 사라지고 비용도 저렴하게 들었으니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르면서 결혼 문화도 많이 변했다. 조카의 결혼 준비 과정을 지켜보면서 놀랄 때가 종종 있었다. 물론 30여 년이 훌쩍 지난 우리 때와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너무 많이 달라져 신기했다. 다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은 결혼식 날짜와 상견례 일정을 예비부부들이 알아서 정한다고 해서 놀랐다. 형식이 무에 그리 중요하냐고 하겠느냐만, 예전 같으면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인가.

조카도 결혼식 날짜는 물론 신혼집 마련과 혼수까지 모두 부모와 상의 없이 자기들이 결정하고 준비했다. 조카는 키워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결혼식까지 부모님한테 부담드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동생은 딸의 마음씀이 대견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걸핏하면 눈물을 보였다. 결혼을 앞두고 친정엄마와 딸이 다투는 일이 생긴다더니 동생네도 그랬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외동딸로 자라 철없는 줄만 알았던 조카가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동생한테 연락이 왔다. 예비 사위가 조카한테 프러포즈를 했다면서 동생 목소리가 한껏 들떠 있었다. 동생은 요 며칠 동안 조카가 유독 힘들어해서 마음이 아팠는데 사위가 멋진 프러포즈를 해줘서 한시름 놓인다고 했다.

동생이 자랑하며 카톡으로 보내 준 사진에는 이름 있는 명품백과 꽤 값이 나가는 반지가 있었다. 사진을 보며 요즘은 프러포즈 선물도 등위를 매긴다는 딸애의 말이 생각났다. 오죽하면 예비 신부들 사이에서는 프러포즈 선물로 어떤 브랜드를 받느냐에 따라 신랑의 재력을 인정한다고 하니 기분이 씁쓸했다.

딸애가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 사소한 것 하나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의 결혼 담을 이야기하던 딸애가 자기는 부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요즘은 부케 받을 사람한테도 사례를 하고, 결혼식날 신부의 핸드폰과 가방을 맡아 줄 친구한테도 수고비를 줘야 한단다.

예전에는 결혼을 앞둔 친구나 지인이 부케를 받아주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야박하게 변한 건지. 인생에 새 출발하는 친구 가방 맡아주고 꽃 받아주면서 대가를 받는다는 말에 슬그머니 부아가 났다. 친구끼리 너무 인간미 없는 일이지 않은가. 갈수록 이기적이고 계산적으로 변하는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5년의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리는 조카는 아름다웠다. 조카의 이미지와 잘 맞는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웨딩드레스를 선택한 것도 돋보였다. 일주일 전부터 결혼식장에서 눈물 쏟을까 봐 걱정된다고 하던 동생부부도 환하게 웃으면서 딸의 예식을 지켜보았다. 신랑이 의젓하고 씩씩하게 입장하고 제부의 손을 잡고 수줍게 입장하는 조카를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신부 아버지가 성혼선언문을 낭독하고 신랑 아버지의 축사가 이어졌다. 요즘은 신랑이 축가를 부르는 것이 대세인 모양이다. 새신랑이 신부 앞에 서더니 사랑을 듬뿍 담아 축가를 불렀다.

주례사가 없으니 참 간단했다. 이른 아침부터 동동거리며 준비한 결혼식은 그렇게 25분 만에 끝이 났다. 한두 번 박수를 쳤을 뿐인데 벌써 신랑신부의 행진이 시작됐다. 나만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서약과 다짐을 25분 만에 뚝딱 끝내버리니 결혼식 25분을 위해 많은 시간과 감정을 소비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주석에 있던 동생도 긴장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끝났다면서 예식이 끝나니 날아갈 것처럼 속이 후련하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애써 서운한 마음을 덮으려는 동생의 말에 내년에 치를 딸애의 결혼식이 걱정됐다. 결혼을 앞두고 사촌동생의 결혼식을 지켜보는 딸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딸도 조카도 부부가 되는 시간 25분의 무게를 평생 무겁게 기억하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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