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영적 동반자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영화 <사일런스>를 꼭 보라며 청주 상영관까지 알려줍니다. 그때부터 제 머릿속은 영화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에 그 영화의 원전인 『침묵』이라는 소설을 감명 깊게 읽고 가끔씩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충북 내 영화관이 똑같이 종영하는 날, 가까스로 진천에 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이 <사일런스>라는 영호로 제작되어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일본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받던 시기에, 순교와 배교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는 포르투갈 신부 로드리고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룹니다. 일본 관리는 로드리고 신부에게 성화를 앞에 놓고 밟으라고 강요합니다. 그것은 배교를 한다는 암묵적 행위입니다. 신부가 성화를 밟으면 신자들은 살 수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성화를 밟지 않아 운젠 지옥 열탕에서 순교하였고, 로드리고 신부 뒤에도 많은 신자들이 죽음 직전에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
신부는 그들을 보면서 깊은 고뇌에 휩싸입니다.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닙니다. 땅에 구덩이를 파놓고 그 위에 신자들을 거꾸로 매달아 신부의 배교를 강요합니다. 산부는 고통에 짓눌려 “고난의 순간에 당신은 왜 침묵하십니까?” 하고 울부짖습니다. 그때 신부의 귀에 “밟아라” 하는 말씀이 들립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목울대까지 차오르는 아픔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느끼며 전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혼자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이삼일 동안 저를 화끈하게 닦달하신 의미가 무엇일까 묵상하다가 느닷없이 “밟혀라” 하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상도 하지요. 영화에서는 분명 ‘밟아라’하셨는데, 느닷없이 ‘밟혀라’ 하시니 종잡을 수가 있어야지요.
‘에구, 주님, 제 귀가 둔하니 알기 쉽게 말씀해 주세요.’
그런 제가 오늘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서야 답을 찾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고자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호산나’와 ‘못 박으시오’를 한자리에서 들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 유다에게 은돈 서른 닢에 매매를 당하고 으뜸 제자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배신을 당하십니다. 유대인의 임금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을 받으십니다. 얼마나 처절한 밟힘인가요?
수난기를 읽다가 “저는 아니지요?” 하는 유다의 얼굴을 제 얼굴에서 봅니다. 만원 버스에서 발등을 조금만 밟혀도 죽기 살기로 다투고, 남을 밟고 올라가야 출세를 하는 세상에서 오늘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밟아라. 나는 밟히기 위해 왔느니라. 너희도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