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 나를 쓴다 / 권예자

 

사람들은 나를 보고 시와 수필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틀리는 말 같기도 하다. 냉정히 말하자면 시는 내가 쓰는 것 같은데, 수필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내 안에 스며있는 나의 사상과 이야기를 쓰는 것이 수필이고 보면 내가 쓰는 것이 맞는데, 이상하게 나중에 보면 수필이 나를 쓴 것 같다.

'수필' 그는 참 고집이 세고 욕심이 많다. 그는 내가 글을 쓰려고 하면 주제를 정했느냐고 묻는다. 이러이러한 주제로 쓸 것이라 하면, 흔해 빠진 주제라 신선하지 못하다. 너무 크거나 작다. 교훈적이고 매력이 없는 주제라고 시작도 못하게 한다. 소재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쓰기 쉽고 편안한 것은 진부하다고 탓을 하고, 획기적인 것은 생소하여 독자가 모를 거라며 말린다. 그래서 그의 비위 맞추기가 상당히 힘이 든다.

겨우 글을 쓰기 시작하면, 구성은 어찌할 것이냐고 묻는다. 나는 미리 구성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일단 생각을 써놓고 나서, 문단을 배열하면서 구성을 완성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는 꼭 구성을 먼저 해야 글이​ 이리 갔다가 저리로 가지 않는다며 화를 낸다. 하지만 이 일은 내가 그의 뜻을 따르기도 하지만, 내 마음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틀에 갇히는 것을 싫어하므로 일단은 실험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마음대로 펼쳐놓기 시작한다.

문장에 대해서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간결체로 하면 삭막하다고 하고, 만연체로 하면 답답하다고 하고, 강건체라 건조체로 하면 여자 답지 못하다고 한다. 우유체로 쓰면 착한척해서. 하려 제는 가벼우면서 예쁜척해서 눈꼴이 사납단다. 어조가 강하다. 힘이 없다. 맹탕이다. 참 그의 맘에 들기 어렵다. 나는 속으로 '너 참 아는 것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고 눈을 흘기면서도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글을 이어가기도 어려운데, 그는 시간적, 공간적 논리적 질서가 안 맞는다고 못을 탕탕 박고, 어떤 땐 시제가 오락가락한다며 거만하게 밑줄을 좍좍 긋는다.

특히 내 신변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내용을 쓸 때는 짜증이 날 만큼 예민하게 물고 늘어진다. '이건 아니다. 그땐 저렇게 했잖아. 왜 자꾸 치졸하게 숨겨? 그건 자기변명이야. 차 떼고 포 떼고 졸만 가지고 장기 둬? 정신 차려! 이건 수필이야.'한다. 어떤 때는 너무 속이 상해서 며칠씩 접어두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와 타협을 하고 질질 끌려가기 다반사다.

사물을 묘사하는 부분도 의견 일치는 어렵다. 나는 본 대로 느낀 대로 표현을 하는데, 그는 직설적 설명보다는 암시적 비유적인 묘사를 해야 글의 품격이 높아지는 것이라며 탓을 한다. 내가 아니라고 우기면 주제넘게 기초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쓰기부터 시작해서 그 모양이란다. 제발 책을 많이 읽고 공부 좀 하라며 그러지 않아도 아픈 상처에 소금을 팍팍 뿌린다.

아무튼,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초고를 써 놓으면 이번에는 제목이 글의 전체 내용과 맞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그뿐인가. 서두와 말미가 연결이 안 되는 것이 꼭 갓 쓰고 자전거 탄 것처럼 꼴불견이란다. 또 처음에 시작한 주제와는 글이 달라져서 배가 산으로 올라갔다며 호통을 치며 돌아서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아직 구성에 대하여는 양보하지 않으므로 문단을 앞으로 넣었다. 뒤로 뺐다. 바꿨다 하면서 글 줄기가 잘 흐르도록 하려고 노력한다. 시간의 액자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하고, 순차적으로 또는 역 순차적으로 사건을 끌고 가기도 한다. 새로운 시도로 꽃차 석 잔 마시는 시간과 그에 관한 수필 한 편을 읽는 시간을 맞추어도 보았다. 또 무생물이 수필을 쓰도록 인격을 부여해 보기도 한다.

내 딴에는 그에게 끌려가지 않고 내 뜻대로 새롭게 써보려고 이것저것 시도했어도, 나중에 보면 결국 수필 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았을 뿐이다. 이런 상태이고 보면 내가 수필을 쓰는 것이 아니고, 수필이 제 방법대로 나를 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출간한 두 권의 수필집을 읽어봐도 그렇다. 그 안에는 내보이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버젓이 나와 있고 아무도 몰래 한밤중에 꾼 꿈 이야기까지 나와서 나를 민망하게 한다. 도대체 그것들이 다 내가 쓴 것일까? 만약 내가 썼다면 우리 둘의 기싸움에 그가 승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수필은 제 방법대로 제가 정한 틀 안에 나를 가두고 써 내려간다. ​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를 것이다. 그가 잔소리할 틈을 주지 않고 그의 틀 밖으로 빠르고 날카롭게 내가 그를 쓰는 중이니까.

'…….'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그는 아마도 결정적인 순간에 턱하니 발을 걸어 나를 넘어뜨리려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 아직 '퇴고'라는 한 단계가 남아있으니 끝난 싸움은 아니다. 퇴고와 퇴고의 사이사이에 그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오늘은 나도 철저히 준비해야겠다. 수필, 그가 나를 쓴다? 아니다. 내가 그를 쓴다. 오늘만은.

이런 주도권 다툼 속에서도 나는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수필, 그는 메마른 듯 촉촉하고 모단 듯 둥그렇다. 가벼운 듯 무겁다. 쇠처럼 강하다 싶으면 물처럼 부드럽고 얼음처럼 차갑다가도 봄볕처럼 따스하다. 말은 비록 짧으나 그 뜻은 깊어 늘 감동과 여운을 이끌어 낸다. 오만한 듯 겸손한 그의 매력은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수필, 그를 사랑한다. ​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