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배미 / 오덕렬 

 

삼월이 오면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새로운 분위기에서 학교생활이 시작되므로 일상성을 벗어나고 싶은 심정에서 일 것이다.

이십여 년 전, 교육대학을 갓나와 초임 발령을 기다리며 고향에 있었다. 나는 그때 논에서 까배미하시던 아버지를 도왔다. 작은 논배미의 논둑을 까내어 없애고 둘이나 세 다랑이를 하나로 합하는 이런 논일을 합배미라고도 말한다. 합배미는 대개 설을 쇠고 시작하기 마련이다. 아직은 논흙이 덜 풀려 삽날 끝에 얼음 조각이 부딪친다. 그렇다고 별다른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삽과 괭이, 그리고 바지게가 까배미에 쓰이는 농구의 전부였다.

날마다 해동갑을 하며 다뿍다뿍 삽으로 파고 지게로 짊어내며 일을 굻렸다. 한짐 그득 짊어졌을 때, 어깻죽지를 누르는 중량감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리게 했다. 지게질이 서투른 나는 아버지의 부축 없이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했다. 어떤 때는 몇 발짝 가다가 고꾸라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서투른 흙 등짐을 하면서 발령 소식을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다가 드디어 신규 교사 발령을 받게 되었다. 임지는 애초에 원했던 고향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남해안의 작은 국민학교였다. 나의 교직 생활은 몸에 배지 않은 지게질처럼 서투르고 힘겨운 출발이었다.

논머리에서 발령 소식에 접한 나는 교육자도 농사를 짓는 농부나 다름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농사가 일년지기라면 교육은 백년지기라 할 수 있지 않은가. 백년지기의 소임을 맡은 나로서는 그 그릇으로 부족함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을 잘 모르는 나였지만 논밭의 작물도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떠올렸다. 내 반 아이들에게 한 알의 밀알로 썩어서 밑거름이 되고 샘물 같은 신선함으로 거목의 꿈을 키우도록 감동을 안겨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솔바람과 함께 몰려와 썰물처럼 교실을 빠져나가는 남자 반 개구쟁이들이 내 꿈의 조각들이었다. 일요일이면 개펄로 달려가 고둥도 줍고 게도 잡았다. 그러던 중, 그해 봄이 다하기도 전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휴직과 복직, 고시검정을 통해서 중등계로 옮기며 철새마냥 옮겨 다녔다.

그동안 내 마음에서는 여러 싹들이 조금씩 자라는 듯했다. 그렇지만 이것들이 모두 품평회의 출품작이 될 수는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 아무리 장원감을 찾아보려고 해도 잡히는 게 없었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불혹을 넘겨 대학 공부를 마친 일이라 하겠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지으시던 논밭의 경작 면적을 넓히던 하나의 까배미와 같은 뜻을 가지리라. 까배미할 때 없애는 논밭의 흙은 객토(客土)의 역할도 톡톡히 하게 된다. 그러니 까배미는 이중 효과가 있는 셈이다.

나의 늦고 부는 까배미의 구실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늦고 부로 인연한 '방송대 문학상'은 나에게 문학의 눈을 조금 뜨게 한 계기가 아니던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아버지, 당신께서 하시던 까배미가 그때는 무척 뜻이 컸지만 지금에 와서는 상황이 달라지고 말았다. 아버지께서 까배미할 때 쓰던 농기구들은 이제는 그 기능을 잃었다. 또 젊음을 바치셨던 까배미는 현대 장비의 한나절 일감에 지나지 않는다. 하기야 어디 아버지의 경우만이 그러하랴.

퍼뜩 고향 마을 아저씨의 경우가 생각난다. 농사를 부칠 만한 땅은 없었지만 가진 야산은 넓었다. 여기서 닭도 쳐보고 소도 길러 보았다. 신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뽕나무를 심기로 하였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에서 살았다. 모두들 그분의 의지에 감탄했다.

얼마 안 되어 뽕나무가 산을 덮었다. 토담집이 헐리고 덩실한 기와집이 들어섰다. 이를테면 까배미의 힘을 입어 성공한 예라 하겠다. 하나, 요새 나도는 투기 바람, 청문회에서 거론되는 거액으론 따지지 말아야 이야기가 풀린다. 까배미의 의미는 그 해낸 일의 양이나 돈으로 따질 성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문학의 새 밭을 일구려고 꿈을 부풀리며 지평선 저쪽의 세계를 그려본다. 때로는 묵정밭도 삽질하고, 작은 다랑이를 합하며 새경도 없는 상머슴 노릇을 쉼 없이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박토일망정 고래논보다 실한 소출을 낼 것이 아니겠는가. 삶은 이상을 향한 까배미의 과정이라 생각하니 나의 생활에서 마음밭을 일구는 까배미는 이어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 까배미의 의미를 빼고는 나의 삶은 빛을 잃어 희미해질 것만 같다.

자갈논 천둥지기일지라도 돌을 주워내고, 객토를 하고, 물 대기를 맞춰하며 농사일에 힘을 기울이고 싶다. 그러면, 나의 마음 밭에도 어거리풍년이 들어 가을일이 흥겹고 수확이 풍성하리라.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삼월이다. 나는 벌써부터 긴장하며 심전의 까배미에 쓸 연장을 챙기기 위하여 긴 겨울의 더께를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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