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비밀 정원 / 현정원
아버지는 오늘도 병실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같은 말을 했다. “오랜만이네, 어디 갔다 오냐?” 함께 있다 잠깐 병원 지하에 있는 슈퍼를 다녀올 때나 오늘처럼 닷새 만에 나타날 때나 아버지는 늘 같은 인사를 한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내게 더 자주 오라고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평생 누구를 섭섭해 하거나 미워한 적이 없다. 아버지가 늘 같은 인사를 하는 것은 오랜 치매 생활 끝에 얻은 나름의 지혜, 그렇게 말해야 실수를 얼버무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이제 아버지에게는 뭔가를 스스로 해낼 힘도, 뭔가를 계획할 지식이나 방법도, 오래오래 주고받을 얘깃거리도 없다. 식구들을 알아보고 자신의 이름과 아내인 엄마 이름, 오빠 이름, 살고 있는 집의 주소를 외울 뿐이다. 잠은 또 왜 그렇게 많아진 건지, 내가 왔음에도 아버지는 자꾸 잠만 자려 한다. 하기는 재활치료와 물리치료까지 받았다니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피곤할 것이다.
아버지의 숨소리가 깊어진다.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억이 사라진 사람은 어떤 꿈을 꾸는 걸까. 혹시 기억이 사라지면 꿈도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가 꾸고 있는 꿈이 궁금해진다. 어쩌면 그것은 가장 오래된 기억일지도 모른다. 치매란 병이 가까운 기억부터 지워지는 것이니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마지막에 꿀 꿈,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일까.
아버지가 만들어 준 연습장에 가갸거겨, 글씨를 반복해 쓰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언니와 함께 건어물 가게에서 말린 복어를 쳐다보던 일도 생각난다. 위경련을 일으킨 엄마가 뜬금없이 말린 복국이 먹고 싶다고 해 사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유치원 나이의 일, 그보다 훨씬 먼저의 기억도 있을 것이다. 그럼 엄마와 함께 절에 가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송충이들을 보고 놀란 것은 언제 적 일일까. 언니를 따라 동생과 함께 태권도장으로 오빠를 찾아갔던 일은. 그때 오빠는 다리 찢기를 하며 우는 듯 웃는 표정을 지었었다. 플랫폼에 서 있다 기차가 내지르는 기적 소리에 놀라 울음을 터뜨리던 일도 있었다. 아버지의 품에 안겨 검은색 지프에서 내리던 일도 생각난다. 그때 나는 잔뜩 뽐내는 표정으로 빨간 풍선에 달린 끈을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아무래도 커다란 대야에 앉아 아버지가 끼얹어 주는 따뜻한 물을 온몸으로 좋아하던 일인 것 같다. 그렇다면 내 최초의 기억은 기껏 다섯 살 안팎의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물장난이란 말인가. 문득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서처럼 잃어버린기억을 불러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프루스트 부인은 기억을 찾아 주는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를 비밀 정원으로 만들어(아파트가 온통 식물로 가득 차 있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낸다. 소설 속의 마르셀 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으로 시간 여행을 했다면 영화 속 프루스트 부인은 음악을 미끼로, 허브 차를 낚싯바늘 삼아(마들렌은 허브 차의 뒷맛을 없애기 위해 먹는다), 사람들의 기억을 낚아 올린다. 청년 피아니스트인 주인공 폴은 우연히 프루스트 부인의 비밀 정원에 들어가게 되고 그녀의 도움으로 두 살적의 기억들을 되살려 낸다. 그리고 두 살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그래서 그로 하여금 말문을 닫게까지 한 고통의 장면들을 이해하게 된다. ‘파파’ 하고 두 살의 폴이 엄마를 향해 말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해 서른세 살의 폴이 자신의 아들을 향해 ‘파파’ 하고 새롭게 말문을 여는 것으로 끝나는 회복의 이야기가 아름다웠다.
자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표정이 어린 아기처럼 순하다. 가만, 비밀 정원의 주인공 폴이 불러낸 장면들은 두 살 이내의 기억들이지 않던가. 아버지는 어쩌면 아기적 일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병실을 비밀 정원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낮고 규칙적인 아버지의 숨소리를 미끼로, 허브 차를 낚싯바늘 삼아, 내 기억을 낚아 보려는 거다. 이왕이면 멀고먼 기억, 최초의 나까지 올라가 보는 거다.
1층 카페에 내려가 카모마일 차와 블루베리 스콘을 사들고 병실로 돌아온다.
이런! 서쪽 창문 너머의 저녁 해가, 동그란 제 몸을 온전히 드러낸 샛노란 해가, 노란 벽지가 발린 병실을 더욱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이제 아버지의 병실은 다름 아닌 카모마일 꽃밭이다.
침대 옆 커튼을 당긴다. 노랗게 물든 아버지의 얼굴에 푸른 그늘을 끌어다 놓고 의자를 가져다 가리개 앞에 놓는다. 이제 내가 할 일은 푸른 가리개를 담장이벽 삼아 따뜻한 카모마일을, 그 노란 액체를, 마시는 것이다.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내 시작을, 내 최초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어둠과 고요 속의 아주 조그만 점, 나를….
소리들이 점차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도, 아버지의 숨소리도,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아득해져 간다. 아, 엄마의 자궁!
어쩌면 나의 최초는 아버지와 엄마가 사랑을 나누던 그 순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솟구쳐진 아버지의 씨가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는 엄마의 알에 끼워져 태반에 들러붙던 그 순간에. 두 사람이 정신적으로육체적으로 합쳐져, 서로를 끌어안은 채, 상대를 기쁘게 해주려 애쓰던 그 순간에. 매혹된 두 육체가 불쑥 달려들어, 구르고, 넘실대는 가운데 내가 생겨났다는 게 새삼 감격스럽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몸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엄마의 뱃속에서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눈을 감은 채 앞을 바라본다. 희박한 어둠 속에서 노랗기도 하고 하얗기도 한 것들이 움직인다. 가끔은 작은 섬광이 번쩍이기도 한다. 마치 구겨서 비비다 다시 펴낸 금박종이 같은 느낌…. 내가 엄마의 뱃속에서 보던 광경도 이런 것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때 듣던 소리는? 엄마의 심장 소리, 음식물을 섞고 운반하는 위장 소리였지 싶다. 여섯 살 언니가 재잘거리는 소리, 두 살 오빠가 칭얼거리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때로는 엄마가 마구 소리를 질러대 귀를 막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다정하게 소곤거려 귓바퀴를 쫑긋거렸을지도. 희붐한 엄마의 뱃속이 암흑으로 변할 때면 나도, 느린 리듬의 숨소리 듀엣을 들으며 잠을 청했으리라. 불현듯, 아버지가 나를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안아 줬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엄마의 몸에 감싸인 채 나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고 안겼던 것이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며 신음 소리를 낸다. 수술한 허리가 아픈 게다. 일어나 아버지를 살핀다. 아버지가 이내 다시 꿈속으로 빠져든다. 의자로 돌아와 카모마일 차를 한 모금 마신다.
몸이 나른하다.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고 나도 다시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드디어 그날이다. 어둠 속, 내 안온한 동굴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천장이 내려앉기도 하고 바닥이 솟구쳐 오르기도 하면서 내 공간이 용트림을 하고 있다. 거친 숨소리에 섞여 엄마가 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들려온다.
“아기가 나올 것 같아요. 어서 들통에 물 끓여요. 가위는 작은 냄비에 따로 소독해요. 준비한 것들 다 가져와요. 빨리빨리.”
용감한 엄마는 세 번째라는 자신감으로 아버지에게 산파를 부르지 말자고 했다. 둘이서 아기를 낳자고 한 것이다. 얼떨결에 그러마고 했지만 아버지는 원체 겁이 많은 사람, 허둥대며 무릎과 손을 벌벌 떨었으리라.
결국 내 동굴이 뚫리면서 내 공간이 물로 쏟아져 내린다. 알몸으로 쫓겨나듯 밀려나오는 나. 밝음이다. 눈이 부실정도의 환함이다. 놀란 내가 울음을 터뜨린다. 그 순간, 나를 들어 올리는 손!
아, 그랬구나! 내가 이 세상으로 굴러떨어질 때 내 몸을 건져 올려 나를 처음 바라본 사람은, 나를 처음 품에 안아 준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구나!
왈칵, 눈물이 솟는다. 벌떡 일어나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아버지가 입을 반쯤 벌린 채 고른 숨을 내쉬고 있다. 나는 말없이 아버지를, 이마와 눈가는 여전히 편안한 데 입이 지쳐 보이는 아버지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너 왜 거기서 그러고 자냐. 밤잠은 침대에 가서 자야지.”
아버지의 말에 내가 눈을 뜬다.
“어머, 깜박 잠이 들었나 봐요, 아버지, 언제 깨셨어요? 그런데 아버지, 아직 밤 아니에요. 이제 곧 저녁 드실 시간인걸요.”
하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 밤이라며, 얼른 너도 네 방에 가서 자라며, 반쯤 들었던 고개를 베개에 내려놓고 다시 눈을 감아 버린다. 아버지가 거짓말처럼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아버지는 당신이 지금 집에 있는 것으로 안다. 내가 거듭 허리 수술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거라고 해도 부득불 아니라고 우긴다. 5년 전, 같은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집에 가겠다며 밤새 소동을 피웠었다. 낮에는 시도 때도 없이 엄마에게 전화 걸어 달라고 졸랐었다. 그때 아버지가 엄마 떨어지기 두려워하는 유치원 아이였다면 지금 아버지는 낯도 가릴 줄 모르는 돌전의 아기인 걸까. 요즘 아버지는 누구를 보고도 웃는다. 누구의 말이든 고분고분 들어 준다. 나도 식사가 나올 때까지 아버지를 그냥 내버려두자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방금 꾼 꿈, 왜 이렇게 생생한 걸까. 지금도 나를 안던 남편 팔의 압력이, 가슴에 부딪쳐 오던 남편 가슴의 감촉이, 그대로 느껴지지 않는가.
꿈속에서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성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붉은 반점들이 고르게 돋아 있는, 머릿속을 살피고 있었다. 겁이 덜컥 났다. 무슨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싶어진 것이다. 나는 두피가 아닌 거울 속 내 얼굴로 눈의 초점을 옮겼다. 나이 든 여자. 거울 속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늙은 여자가 있었다.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미 입가는 울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거울과 나 사이를 남편이 비집듯 파고들었다. 파고들어서는 나를 꼭 껴안았다. 아, 그 느낌! 넓지는 않지만 힘이 느껴지는 남편의 가슴에 안겨 나는 첫 포옹의 때를 떠올렸다. 아까와는 다른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드르륵.
급한 일이 생겨 잠깐 나갔다 오겠다던 간병사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많이 서둘렀는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다. 이제는 나도 집으로 돌아가야만 할 때. 일어나 아버지에게 다가가 이불 위로 아버지를 안는다. 아버지 뺨에 내 뺨을 살짝 비빈다. 그리고 아버지의 딸답게 항상 같은 인사를 조그맣게 읊조린다. “저 금방 갔다 올게요. 한 숨 주무시고 계세요.”
간병사에게 인사하고 병실 문을 연다. 엄마의 자궁 같던 아버지의 비밀 정원을 나선다. ‘어디 가려고? 알았어. 빨리 갔다 와.’ 아버지의 늘 같은 인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런데, 왜 나는 아버지의 정원에서 그런 꿈을 꾸었을까. 꿈속의 남편은 남편이 아니라 아버지였을까. 꿈속의 나는 내가 아니라 엄마였을까. 엄마의 몸속에서 내가 아버지를 껴안은 것처럼, 엄마의 몸 위로 아버지가 나를 껴안은 것처럼,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몸을 지금도 끌어안고 또 끌어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