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0 (목) 12:00:00 성민희 수필평론ㆍ소설가
전화를 끊고 곧 성귀와 같은 동네에 사는 정자한테로 다이얼을 돌렸다.
“성귀는 못 오더라도 정자 너는 꼭 와야 한다.”
다짐을 받고 전화를 끊었다. 좁은 차 안에서 대화 내용을 모두 들은 남편이 싱글싱글 웃음을 흘렸다.
“당신 친구들은 이름이 다 와 그렇노?”
핸들에 손을 얹은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앞만 쳐다보며 말했다. 생뚱맞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
“왜? 정자가 어때서. 그게 뭐가 촌시런 이름잉교? 정자, 영자, 경자. 우리 학교 다닐 때는 그런 이름이 얼마나 많았는데. “
남편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노래를 부르듯 느린 템포의 리듬까지 넣으며 말했다.
“성기에, 정자에... 당신 친구 중에 난자는 없나? 거기에 난자만 있으면 끝내주는데. 성기가 정자하고 난자 데리고 찜질방 가면 참 환상적이겠다.”
결혼식장에 도착할 때까지 마주보고 웃고 또 웃었다. 옆에 오던 차들이 급히 차선을 변경하며 우리 차를 피해 갔다.
토요일 오후. 찜질방에 둘러앉자마자 내가 막 고자질을 했다. 우리들은 팥빙수를 앞에 두고도 먼지가 펄펄 날리도록 데굴데굴 굴렀다. 찔끔 난 눈물을 닦으며 정자가 정색을 했다.
“내가 오십 평생을 살아도 내 이름 가지고 그렇게 연상하는 것 처음이다. 너그 남편 참말로 얄궂다 마. “
“그기 문제인기라. 니가 와 하필 성귀 옆에 살아가지고 둘이 짝이 되었노 말이다.”
혼자 있으면 아무 문제없는 이름이 난데없이 벼락 맞은 형국이라고 위로했다. 대학교수 친구가 마치 학생들을 나무라듯 근엄한 얼굴을 했다.
“성귀! ‘귀할 귀’인데 겡상도 가시나들 발음이 마, 멀쩡한 아~ 이름을 성기로 바까삐린기라. 가시나 너그들 발음 좀 똑바로 몬하것나.”
지엄한 꾸중이 떨어졌다. 그러나 어쩌랴. 혀끝에 굳어버린 발음인 것을.
“우짜몬 좋노. 나는 죽어도 발음은 몬 고친데이. ”
“이 나이에 이름을 새로 지을 수도 없고. 할 수 없다. 영어 이름 하나씩 만들어 주자.”
모두 왁자지껄 영어 이름을 불러댔다. 여기서 나온 이름 저기서 안 어울린다고 손을 내젓고 저기서 지은 이름 여기서 발음하기 어렵다고 퇴짜를 놓았다. 한참 승강이를 한 뒤 찜질방을 나올 무렵에야 겨우 세련된 영어 이름 두 개를 탄생 시켰다. 성기(?)는 스텔라로, 정자는 조이스로.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성귀는 아들한테서 그 이름을 또 퇴짜 맞았다 한다. 그렇잖아도 씩씩한데 이름까지 그리 지으면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가 떠오른다며 펄쩍 뛰더란다. 우리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귀한 이름을 완전히 배반할 수 없어 이니셜 S자만은 살리려고 고심해서 지은 이름인데... 불쌍한 내 친구 성기.
<성민희 수필평론ㆍ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