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은 손주를 살피러 일리노이 딸 집을 향해 길을 나섰다. 여행은 매번 힘들지만, 이번엔 휴가철이라 더 불편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여행객이 몰리는 LAX보다 덜 복잡한 산타아나 존 웨인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을 예약했는데, 역시 한산하고 쾌적하였다.
짧은 검색대를 통과했다. 지금부터는 돌이킬 수 없는 하늘길의 시작이다. 최종 목적지에 닿아야 끝나는 길이다. 11시 30분 출발이지만 비행기는 조금 늦게 떠올랐다. 오헤어 공항까지는 4시간 거리다. 시카고는 LA보다 2시간이 빠르므로 목적지 도착은 오후 6시 전후가 될 것이다. 환승 항공기의 보딩이 7시 30분이니 탑승구를 찾아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예정시간을 지나 시카고에 도착, 환승 게이트를 확인하고 부지런히 걷는다. 내가 타려는 샴페인 행 비행기는 소형이라 방금 도착한 중형 비행기가 내리는 터미널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잰걸음으로 도착한 게이트의 전광판엔 다른 항로가 적혀있다. 데스크에 문의하니 다음 항공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옆 사람에게 재차 물어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후로 전광판엔 몇 차례나 항로가 바뀌었다. 우리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9시가 넘도록 기다렸다. 안내방송에 따라 말없이 게이트를 찾아가는 사람들. 항의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승객은 없었지만, 얼굴은 지쳐 보였다. 어떤 백인 승객이, 당신 오늘 아침에 오렌지 카운티에서 탔지요? 하고 묻는다. 네, 당신도요? 내가 되묻는다.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웃는다. 오후 9:50, 드디어 보딩이 시작됐다. 10시가 넘어 출발한 비행기는 11시가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비로소 하늘길에서 내려 캄캄한 땅을 밟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달라스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예약했다. 하지만 그 길도 쉽진 않았다. 폭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므로 제시간에 출발할지 알 수 없었다. 우려와 달리 조금 늦게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려나갔다. 비를 뿌리는 흐린 날이지만 기체가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자 햇빛이 찬란한 창공이 펼쳐졌다. 겨우 수천 피트 높이밖에 되지 않는 거기에 빛나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산다. 아무리 힘든 인생길도 그 끝엔 빛나는 여정이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다.
달라스 포트워스공항은 정말 넓다. 환승 터미널달라스 포트워스공항은 정말 넓다. 환승 터미널에 가려면 스카이 링크를 타야 하는데, 거기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보니 너무 높아서 현기증이 난다. 엘리베이터를 찾아 나선다. 에스컬레이터를 탔다가 가방과 함께 넘어지는 사고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유도 있지만, 멈출 줄 모르는 이 첨단 기계가 나는 무섭다. 간혹 기내용 가방을 놓쳐 엉뚱한 사람이 다치는 사례도 있다니 조심할 일이다.
여기서도 서너 번 게이트가 바뀌어 옮겨 다닌다. 한참을 기다리던 승객은 안내방송과 전광판의 문자를 보고 말없이 일어나 탑승구를 찾아간다. 안전이 최우선인 시스템에 훈련이 되어 있어서일까? 항의하는 사람은 없다. 맞다, 안전이 우선이고 그것은 이 나라의 힘이다. 하늘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에게서 이해하고 기다리며 인내하는 미덕을 배운다. 조급함을 누르고 내 안에서 올라오는 불만을 잠재우려 말씀을 묵상한다. 조물주의 무한한 시간과 순식간의 내 시간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정유환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