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에세이] 그린란드
2026-08-26 (수) 12:00:00 이명숙 수필가
그린란드는 왜 초록의 땅이 아닐까? 그 나라와 관련된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난 후 의문이 들었다. 국토의 80%가 얼음으로 뒤덮인 나라인데 왜 그린란드일까? 처음 그 땅에 도착한 바이킹이 초원이 무성한 해안 일부를 보고, 더 많은 사람을 이주시키기 위해 이름 붙였다는 설이 있다. 그에 비해 근처의 아이슬란드는 얼음의 땅이란 이름답지 않게 훨씬 온화한 기후와 푸른 초원도 많다. 이 두 나라의 국명이 바뀐 듯한 아이러니가 재미있다.
‘얼어버린 시간 속에서(Against the Ice)’라는 실화 기반 영화를 보았다. 북그린란드를 발견한 미국이 그린란드가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고 주장을 한다. 덴마크는 하나의 땅임을 증명하기 위해 돌아오지 못한 그전 탐험대가 기록하고 보관한 지도를 찾으러 1909년 원정대를 결성한다. 혹한 속에서 불가능해 보이고 동상에 걸린 자가 속출하자, 두 사람만 남고 원정대는 다시 오기로 하고 철수한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이 벌인 865일 간의 사투를 담고 있다. 결국 구조된 이들이 찾아낸 지도 덕분에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자치 영토가 되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그린란드가 덴마크 왕국의 자치령인 줄도 몰랐다.
덴마크 정치 드라마도 보았다. 여주인공이 외무부 장관으로 있는 동안 그린란드에서 석유가 난다. 그린란드의 석유개발을 반대하는 환경 보호론자들과 독립을 위해 석유개발에 따른 부의 축적이 필요한 그린란드 자치정부, 미국, 중국, 러시아 입장까지 많은 것이 얽혀있는 정치와 외교의 곡예가 참 재미있었다. 주위 강대국들과의 신경전, 국가 경제의 막대한 이익과 평소 이념이었던 환경보호와의 상반된 입장 속에서 여성 정치가로서 소신을 바꾸어야 하는 딜레마를 그렸다. 이 이야기의 중심이 그린란드인 만큼 웅장한 그린란드의 풍광과 원주민 이누이트족, 자치정부의 정치적 야심 등이 입체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고래잡이 원주민 이누이트 인은 빨리 녹아 사라져가는 빙하를 보며 석유개발로 더 가속화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돈과 멋진 최신 배를 받고 토지 사용권을 허락해 준다. 그의 자책과 자괴감이 서린 말에 외무부 장관인 그녀 자신도 그 범죄(?)에 가담했음을 인정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복잡다단한 셈법의 여러 형태 속에서 쉽지 않은 정치싸움을 벌리는, 그러면서도 결국 최종적으로 인간적인 결론과 실리를 놓치지 않는 노련한 정치의 미학을 볼 수 있었다.
빙하는 자꾸 녹고 그 밑에 숨겨져 있는 여러 희귀 광물 때문에라도 뉴스에 자주 나오는 그린란드. 이 나라가 초록색 땅으로 변하게 되면 지구의 다른 곳은 어찌 변화되는 것인지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전보다 자주 나는 산불, 멈출 줄 모르는 전쟁으로 지구 곳곳이 더 뜨거워지고 있다. 대재앙으로 지구가 멸망할 때 그린란드에 있는 거대한 지하 벙커를 향해 필사적으로 도피하는 가족을 그린 재난영화 제목도 ‘그린란드’이다.
그린란드가 마지막 피난처가 될지, 이름의 아이러니만을 지닌 얼음 왕국으로 계속 남아있을 건지 미래는 알 길이 없다.
<이명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