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우정의 종소리

2026-08-18 (화) 12:00:00 홍용희 수필가
광복절이다. 8월 15일의 저 창공이 유난히 푸르고 바닷물이 넘실대는 우정의 종각엔 축제가 한창이다. 휘모리로 몰아치는 바람의 노래, 수면을 차오르는 돌고래의 아치. 연 날리는 가족의 웃음꽃이 피어나는 공원이다. 풍물패의 꽹과리와 장구, 징이 자유를 기념한다. 마침내 울리는 장엄한 원음. 두 우 웅, 두 우 웅, 두 우 웅… 세사 너머로 번지는 우정의 종소리다. 하늘과 바람와 파도의 열망이 그 울림을 타고 태평양을 건넌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곳을 가끔 찾아온다. 이 바다 너머 저편이 곧바로 모국에 닿을 듯한 자리여서다. 우정의 종각은 샌페드로 언덕에서 바다를 굽어보며 홀로 서 있다. 그 장엄한 원음이 울려 퍼지기에는 한적한 광활함이 오히려 격에 맞는 듯하다. 얼마 전 이곳을 찾았을 때, 종각은 중병에 걸린 듯 쇠락했었다. 해풍에 부식된 기둥, 빛바랜 단청, 금이 간 서까래에서 들려오는 신음까지 다 서러웠다. 그래도 종소리는 에밀레종처럼 맑고 길게 울렸다. 쇠락한 집에 외로이 살아도 소리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나아갔다.

울려 퍼지는 종소리 속에서, 종신의 네 면에 손을 맞잡은 한·미 두 여신이 아늑한 빛을 전한다. 횃불을 든 여신이 자유의 불꽃을 밝히면, 태극을 든 여신은 조화의 기운을 모아 모서리를 채운다. 음양이 어우러져 생명이 싹트고, 그 생명은 결코 꺾이지 않을 자유로 완성된다. 이어 무궁화, 월계수 가지와 비둘기를 든 여신들이 삶의 길을 비추며 말 없는 울림을 보낸다. 바람은 그 손끝을 부드럽게 스치고, 넓은 바다는 발밑에서 잔잔한 물결로 응답한다.
 
나는 이 장엄한 여향을 들으며 생각한다. 인류의 불빛은 과연 무엇인가. 서로 다른 이상은 온전히 조화될 수 있을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자유는 가능한가. 대가 없는 자유는 없다. 여전히 지구 한편에서는 전쟁이 이어지고, 너와 나 사이에, 나와 나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다.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나는 얼마나 더 상처를 다독여야 할까.?

우정의 종은 참으로 희귀한 선물이다. 간절한 마음을 소리에 담아 보낸 종이다.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해 왔지만, 그 안에는 더 깊은 뜻이 있다. 양국민의 우호와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다 산화한 영웅들을 기리고, 고단한 이들에게는 진심의 위로를 건넨다. 어렵사리 만든 범종, 그 안에 에밀레종의 혼을 담았을까. 영혼 없는 종은 실을 수 없는 소리, 그 신비한 울림을 불어넣었다. 초록이 무르익는 언덕에서 그 소망은 지금도 변함없다. 지상의 존재는 하나 되자고, 갈등의 피를 멈추자고 하는 말을 담은 듯하다.

종각은 정성이 빚은 열매다. 하늘까지 닿을 듯한 청기와 지붕, 실금 하나 없는 범종, 천 년의 혼령이 깃든 에밀레종의 후예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펄럭이고, 오방색 단청이 화음을 이룬다. 우정의 종소리. 하늘과 바다와 대지가 이룬 영혼의 소리이다. 맥박에서 맥락으로 이어지는 온기가 영원으로 울려 퍼진다.

멈출 듯 멈출 듯 이어지는 맥놀이.

두 우 웅. 두 우 웅. 두 우 웅.

<홍용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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