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엘에이 근교의 명승지를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중에 우연히 찾아낸 장소가 ‘아구아 둘세 캐니언’(Agua Dulce Canyon)이다. 한 번만 보기에는 미련이 남는 장소였다. 그래서 오월의 어느 날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을 다시 찾았다. 하늘은 푸르렀고, 산들바람은 산야를 부드럽게 휘감았으며, 야생화는 만발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이곳의 ’바스케즈 록스 (Vasquez Rocks) 자연공원은 지각변동과 지진 활동으로 형성된 거대한 사암층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라 경이로움을 준다. 영화 ‘스타트렉’의 외계 행성 장면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나는 40~50분 걸린다는 1.6마일 짧은 루프 코스를 골라 작은 물병 하나만 들고 산길로 들어섰다.
자연의 품에는 언제나 볼거리도 다양하고 이야기 거리도 많다. 걷는 도중에 나타나는 기이한 암석들 구경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머, 여기는 작은 그랜드캐니언 같네, 그런데 지난번에는 왜 이걸 보지 못했지?’ 길을 잃은 듯하여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내가 표지판을 놓치고 확장 루프로 들어선 것 같았다.
갑자기 날씨가 너무 덥고 목이 말랐다. 그러나 물병은 이미 비어 있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바람같이 나타난 남자가 “조심 하세요, 저쪽에 코요테가 나타났어요.” 라고 말하곤 홀연히 사라졌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되짚어 내려오는 길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불안감과 더위에 한 걸음 옮기는 것도 힘들어 바위그늘에 주저앉았다. 정신이 가물가물해 지는 것 같은데 옆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으세요?” 조금 전 코요테를 조심하라 알려주고는 사라졌던 사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를 잡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는 내 말에 대답하기 전에 배낭에서 물병부터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그야말로 생명수였다. 단숨에 물을 들이켜고 나니 그제야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Wow, You are a handsome angel!” 낮게 중얼거린 말에 그 사람이 살풋 웃었다.
그가 자신의 왼쪽 팔을 내밀었다. 자신을 의지하여 걸으라는 무언의 배려였다. 내려오는 길엔 정말로 코요테가 있었다. 늑대를 닮은 회색 털의 동물이 30미터 전방에서 여차하면 달려들 기세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도 모르게 그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팔은 사막의 공포를 건널 수 있을 만큼 단단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주차장에 겨우 도착했으나 하필 내 차는 먼 구역에 주차되어 있었다. 천사가 자신의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염치불고하고 뒷좌석에 올라타자, 그가 차 안에 있는 또 한 병의 물을 건넸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완벽하고 다정한 천사였다.
삶의 여정에서 이렇듯 온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인생의 험한 고비마다 늘 천사가 있었다. 산에서 굴러 발목에 중상을 입었을 때도 생판 모르는 한 여인은 자신의 옷을 벗어 내 다리에 나뭇가지를 감고 고정하는 응급처치를 해 주었다. 이들로부터 받은 호의는 내게 가장 생생한 산교육이었으며,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내 영혼이 현실의 땅에 굳건히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묵묵히 삶의 모범을 보여준 그 모든 길 위의 천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조옥규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