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읽기와 제대로 쓰기/최원현

 

수필이 변하고 있다. 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고 변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정작 어떻게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지를 몰라 당황하기도 했었다. 신변사(身邊事)가 주로 글감이 되는 한계성과 그걸 문학화 해 내는 능력의 한계와 보다 다양한 구도를 확보하지 못하는 사고(思考)의 부족은 신변잡기라는 부끄러움을 안기도 했다. 그런데 근래 들어 너무 다양하다 싶을 만큼의 테마수필이 등장하고 중편·장편수필의 연재, 포토에세이, 영상 수필에 5-7매의 짧은 수필에 이르기까지 수필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중앙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에선 빠져 있지만 지방신문 및 지자체와 중앙 및 지역문학회가 주관하는 공모전들이 활발하여 수필을 쓰고자 하는 이들의 응모 기회도 많아져 수필의 영역 확대도 기대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수상권에 들 수 있는 정형화된 틀도 만들어지게 되고 그것은 제목 붙이기와 첫 문장 쓰기에서 가장 먼저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게 한다.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런 변화의 현상 중 하나일 수 있다. 사실 공모전의 심사는 좋은 작품 골라내기가 아니라 좋지 않은 작품의 버리기로부터 출발한다.


쌓여있는 작품을 정해진 짧은 시간 안에 자세히 다 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선외로 할 작품들을 먼저 빼버려야 하는데 그 버리기의 첫 기준이 제목과 첫 문장에서 결정된다. 제목과 첫 문장은 결국 작가와 독자(심사자)가 만나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의 결정이 그 글을 더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케 한다. 요즘 세상은 모든 게 다 고객관리적이다. 곧 고객관리에서 말하는 접점의 순간(MOT), 진실의 순간(15)인데 그 순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15초는 그 글을 쓴 사람의 역량이 보여지는 순간으로 심사자가 그걸 놓치지 않는 것처럼 독자 또한 그 이상의 시간을 허비하려 하지 않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독자를 만나러 가는 걸음이요 써진 글은 만남이다. 그런데 독자는 글과 만나면 어떻게 할까. 맨 먼저 눈을 열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마음부터 열어야 글은 보인다. 눈을 열고 마음도 열게 하는 첫 작업 곧 접점의 순간, 진실의 순간에 눈이 맞춰지지 못하면 작가는 독자와 만날 수 없다. 그냥 스쳐 가버리고 만다.


작가는 제목과 첫 문장으로 독자를 만난다. 독자 또한 제목과 첫 문장으로 작가와 인사를 나눈다. 인사를 나누었다는 것만으로도 넘쳐나는 글의 홍수 시대에서는 1차 성공이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지극히 미미한 시작이다.

하지만 이 중요한 첫 만남을 어떻게 진실하고 행복한 만남이 되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게 할 수 있을까, 그게 더 문제다. 바로 작품의 구성, 어휘 선택, 문장력 그리고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의 분명한 주제성들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힘도 되는 것이다.


수필은 어떻게 쓰는 가도 중요하지만 수필가라면 내 수필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수필도 많이 읽고 또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 수필도 제대로 쓸 수 있다. 자기는 다른 사람의 수필을 읽지 않으면서 내 수필은 읽어주길 바라는 것도 그렇고, 다른 수필을 읽어보지 않고 내 수필을 잘 써 보겠다는 것도 잘못된 욕심이다.

조병화 시인이 한국수필학회의수필학창간에 부치는 축시를 주셨었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글은 인간의 정신을 이어가는/큰 개울/이 큰 개울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사람이/그 겨레의 영혼을 이어 갑니다//

글이 없는 민족이 번창하는 것을/이 역사 위에서 본 사람이 없습니다/그 영혼이 없는 겨레가/살아 남는 것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수필은 생활/수필은 사색/수필은 영혼의 마을/수필은 마을 사람들이 정답게/마시고 사는 맑은 우물//

우물을 좀 더 넓게/우물을 좀 더 맑게/우물을 좀 더 깊게/만들어 가려는 사람들이/이곳 수필학에 모였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또 탄생하는 거/영혼의 우물을 맑게, 깊게, 보다 넓게,/탐색하며, 발견하며, 발굴해가려는/인간의 꿈,/얼마나 숭고하게 아름다운/민족의 작업이랴,//

 

맞지 않은가. 수필이야말로 생활이고 사색이고 영혼의 마을이며 사람들이 정답게 마시고 사는 맑은 우물이 아닌가. 그리고 그 우물은 우리가 더 넓게 더 맑게 더 깊게 만들어가야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 수필의 역사를 튼튼히 하고 그렇게 우리 영혼의 우물도 맑고 깊고 넓게 하여 문학하면 수필이 떠오르도록 해야지 않은가.


제대로 읽기, 제대로 쓰기를 통해 작가는 독자를 만나고, 독자는 작가를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시대는 바야흐로 작가가 독자이고 독자가 작가인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더욱 많이 읽고 더욱 많이 생각하고 더욱 많이 쓰는 글쓰기의 기본을 더욱 충실히 해야 할 때이다. 기본에 충실 하는 것, 그것은 결코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제대로 가는 길임을 잊으면 안 된다.

   1112/에세이포레 2011.겨울호 계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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