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 이정호
‘이방인’을 다시 읽었다. 박연실 수필가의 ‘언니, 내년엔 프라하 가자’를 읽었는데 카뮈의 ‘이방인’이 나온다. 그래서 다시 읽고 싶어 졌다. 이 소설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도입부에서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시작한다. 왜 엄마가 죽은 날을 모르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을 담당하는 사람으로부터 어머니를 볼 수 있도록 나사 못을 뽑아 준다고 했지만 뮈르소는 거절한다. 나중에 원장에게서 전화가 와서 장의사에서 사람들이 왔는데 마지막으로 관을 닫기 전에 어머니를 보겠느냐고 물어 보지만 또 거절한다.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아버지가 임종하셨을 때 미국에서 한국으로 급하게 갔지만 코비드 시대여서 지방에서 일단 격리가 되었다. 그래서 영안실에 제 때에 갈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 얼굴을 못 보면 어떻게 하나 마음 조였던 기억이 난다. 못 보면 아쉬움 속에서 계속 살 것 같았다. 다행히 이미 닫힌 관을 다시 열어서 발인 전 날밤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뫼르소는 삷과 죽음을 초월한다. 죽음과 삶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진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어머니의 장례식도 이제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을 다르게 생각하지 않은 그의 생각과 행동은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형일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그가 이방인으로 보인다.
그는 정상적이며 보통 사람처럼 보이지만 무언가 홀린 듯,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하듯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우리들과 똑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 속에서 방아쇠를 당긴다. 사실 그는 원래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과 아랍사람들이 서로 싸울 때 같은 층에 사는 레몽이 총을 쏠 것 같아서 그에게서 총을 달라고 했다. 그러다 해변을 걷다가 우연히 싸웠던 그 아랍사람을 만나게 된다. 뫼르소가 나중에 재판에서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죽였다고 진술한 것처럼 아랍인이 뽑은 단도에 태양 빛이 그의 눈에 반사되었을 때 총을 발사하게 된다.
뫼르소는 솔직하게 그를 나타낸다.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가식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게 유도하는 변호사의 요청에 따라가지 않는다. 변호사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슬펐었냐고 그에게 물었을 때 그는 몹시 놀랐다고 한다. 법정에서 양로원 원장이 증언했다. 그녀는 뫼르소가 장례식날 담담한 나를 보고 놀랐었다고 한다. 그가 어머니를 보려 하지 않았고,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무덤 앞에서 묵도를 하지 않고 곧 물러났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결국 그는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면회를 온 사제는 그에게 기도를 해주겠다고 하고 나를 껴안아 주겠다고 하지만 뫼르소는 거절한다. 그리고 그에게서 무엇인가가 터져버리고 말며 사제를 향해 외친다. ‘ 나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의 신부복 깃을 움켜잡았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채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마음 속을 송두리째 쏟아버렸다.’
그는 사제에게 사제의 신념이란 건 가치가 없으며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기는 분명한 확신이 있으며 자기의 인생과 다가올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말한다. 자기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생애 전체에 걸쳐, 자기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걸쳐서 자기에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오래간만에 어머니를 생각했고 왜 인생이 다 끝나갈 때 어머니는 약혼자를 만들었고 생을 다시 시작해 보려고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죽음 가까이에 이르러서 비로서 어머니는 해방감을 느꼈고 다시 살아 볼 마음이 내켰으리라 여긴다. 그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고 그것은 자기를 닮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낀다. 다만 소원이 있다면 그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써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뮈르소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말한다. 그것이 맞다 틀리다를 말하지 않는다. 뮈르소가 어머니가 죽고나서 한 행동이 크게 잘 못 된 것인가. 그가 뭔가 홀려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이 사형을 당할 만큼 큰 죄인가. 우리에게 문제를 던져 생각하게 한다. 그는 죽지만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 모든 것은 평범한 우리의 사고의식을 흔들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