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오법 및 일자문결/정민
▶作文五法
명나라 원황(袁黃·1533~1606)이 '간생에게 주는 문장에 대해 논한 글(與干生論文書)'에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를 꼽았다.
첫째가 존심(存心), 즉 마음 간수다. "글은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이 거칠면 글이 조잡하고, 마음이 섬세하면 글도 촘촘하다. 마음이 답답하면 글이 막히고, 마음이 천박하면 글이 들뜬다. 마음이 거짓되면 글이 허망하고, 마음이 방탕하면 글이 제멋대로다(夫文出于心, 心粗則文粗, 心細則文細. 其心鬱者其文塞, 其心淺者其文浮. 其心詭者其文虛, 其心蕩者其文不檢)." 글은 마음의 거울, 글에 그 사람이 훤히 비친다.
둘째는 양기(養氣), 곧 기운 배양이다. "기운이 온화하면 글이 잔잔하고, 기운이 가득 차면 글이 화창하며, 기운이 씩씩하면 글이 웅장하다. 글을 지으려면 먼저 기운을 길러야 한다(盖氣和則文平, 氣充則文暢, 氣壯則文雄. 凡欲作文, 須先養氣)." 평소에 기른 호연지기(浩然之氣)가 글에 절로 드러나야 한다.
셋째는 궁리(窮理)다. "이치가 분명하면 표현이 명확하고, 이치가 촘촘하면 글이 정밀하며, 이치가 합당하면 글이 정확하다. 이치가 주인이라면 표현은 하인에 불과하다. 주인이 정밀하고 밝은데 하인이 명을 따르지 않는 경우란 없다(理明則詞顯, 理密則詞精, 理當則詞確. 理譬則主人也, 詞譬則奴僕也. 未有主人精明, 而奴僕不從令者)." 어떤 문장력으로도 허술한 생각을 살릴 수는 없다.
넷째 계고(稽古)는 옛 글을 익혀 자기화하는 과정이다. "정밀하게 골라 익숙히 익혀 아침저녁으로 아껴 외운다. 틈날 때마다 옛 글을 읽으면 내 글 속에 절로 옛 글의 풍격이 스며든다(精擇而熟參之, 朝玩暮諷, 使古文時在唇吻間, 則出詞吐氣, 自有古風)." 이 노력이 없으면 말투나 흉내 내다 작대기글로 끝난다.
다섯째 투오(透悟)는 깨달음이다. "육예(六藝)의 학문은 익숙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고, 깨닫지 않고는 정밀함이 없다(凡六藝之學, 不熟則不悟, 不悟則不精)." 끝없는 반복으로 온전히 자기 것이 되면 언제 오는지도 모르게 깨달음이 내 안에 쏙 들어온다.
▶일자문결 (一字文訣)
"문장에 딱 한 글자로 말할 만한 비결이 있을까? '긴(緊)'이 그것이다. 긴이란 장(丈)을 줄여 척(尺)으로 만들고, 척을 쥐어짜 촌(寸)으로 만드는 것을 말함이 아니다. 글이 꽉 짜여 빈틈이 없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옛 사람은 글의 포치(布置)는 느슨해도 결구(結構) 즉 짜임새는 촘촘했다. 지금 사람은 구성은 촘촘하나 짜임새는 엉성하다.
솜씨가 교묘한 자는 마치 준마가 시내를 단숨에 건너뛰는 것 같고, 재주가 못난 자는 노둔한 소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文章有一字訣乎? 曰緊. 緊非縮丈爲尺, 蹙尺爲寸之謂也. 謂文之接縫鬪筍處也. 古人布局寬, 結構緊. 今人布局緊, 結構寬. 巧者如駿馬跳澗, 拙者如駑牛登山.)"
긴(緊)은 긴밀(緊密), 긴요(緊要), 긴절(緊切) 같은 단어에서 보듯 단단히 얽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긴 글을 쥐어짜 줄인 것이 긴(緊)이 아니다. 좋은 글은 한 글자만 빼거나 더해도 와르르 무너진다. 한유(韓愈)가 말한 "풍부하나 한 글자도 남지 않고, 간략해도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는다(豊而不餘一字, 約而不失一辭)"는 경지다.
위 원문의 접봉투순(接縫鬪筍)에서 접봉은 꿰맨 재봉선(裁縫線)이 잘 보이지 않는 바느질 솜씨다. 투순은 죽순이 앞 다퉈 솟아날 때 서로 떼어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단단히 엉겨 붙어 있는 것을 말한다. 빈틈이 없이 꽉 짜여 하나가 된 상태의 비유다.
여기에 다시 포국(布局)과 결구(結構)의 긴밀함과 느슨함으로 옛 사람과 지금 사람을 구분했다. 포국은 글의 전반적인 배치, 지금 말로 개요에 해당한다. 결구는 하나하나의 문장이 서로 엇짜여 빚어내는 조직(組織)이다.
옛 글은 그저 읽으면 벙벙해 보여도 따져 살피면 어느 문장, 어느 글자 하나 허투루 놓인 데가 없다. 지금 글은 군사 작전하듯 개요를 작성하고 예시를 주워 모아 단단히 준비해도 막상 실전에 투입하면 여기서 새고 저기서 넘쳐 정신을 못 차리다가 스스로 궤멸하고 만다. '긴'! 빈틈없이 꽉 짜여야 좋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