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저녁 / 이정호

 

  어느 하루의 오후였다. 하늘은 푸르렀다. 날씨는 쾌적하고 많이 덥지 않았다. 호텔 앞에 인어공주처럼 누워있는 조각상에서 나오는 물줄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햇빛에 반사되는 물의 입자가 영롱하게 보였다. 벤치에 사람들이 한가하게 앉아 있었다. 차를 기다리고 다음 여행지로 떠나려 했다. 또한 새로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 즐거운 마음으로 여유 있게 오가가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동생 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만인가. 10년도 넘었으리라. 어두 컴컴한 밤에 단체 여행일정에 쫓기는 와중에 시간을 내서 동생집을 가봤었다. 그때 계단 불이 나가서 조심스럽게 좁은 계단을 올라간 기억이 있다. 3층이었고 계단은 가팔랐다. 이제 다시 돌아와 동생 집을 방문하게 된다.

 

  동생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세계정치의 중심지인 파리로 정치학을 공부하러 갔다. 그곳에서 학업을 마치지는 못했다. 유창한 불어로 여행업을 시작하였고 식당도 운영하게 되었다.  동생은 밝고 명랑한 성격이다. 아버지처럼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다. 강렬함도 보인다. 그러나 온화함이 있다. 많은 친구들이 있고 사교적이다. 항상 창의적이며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약간 마른 듯하지만 마르지 않은 적당한 키에 갸름한 이쁜 얼굴이다. 학창시절에는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았고 서클활동도 했으며 가수 조동진을 좋아했었다. “당신은 울고 있나요. -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아직도 남은 찾을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눈이 있으니 음률이 떠오른다. 그녀는 이화여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세계로 나갈 꿈을 꾸었다.

 

  그녀는 동아리에서 남편을 만났다. 집안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엄격한 아버지에게서는 더욱 그랬다. 시대의 부모님들은 항상 풍요함을 원했다. 내가 보기에는 1 신랑감인데 부모님들이 보는 기준은 달랐다. 그런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그녀가 생각하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추구하였고 그것을 달성하였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꿈을 펼치기 위해 정치학을 공부하러 프랑스로 떠났다. 그녀는 다른 길로 들어섰지만 열심히 자기가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세월이 흘러 그녀도 60 넘었다. 아주 오래전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그녀가 이제 여기에 있다. 그녀를 생각하며 나는 호텔 앞에서 동생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차는 프리웨이를 잠깐 거쳐서 길로 들어섰다. 이국적인 모습의 집들이 나타났다. 집들은 크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담하고 고요하면서도 한적한 마을이 나타났다. 동생집은 센느강 근처에 있었다. 길은 크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좁지는 않다. 거의 작은 차들이 길가에 주차해 있다. 앞에는 공원이 있었다. 공원의 크기는 너무 커서 들어가면 길을 잃어버릴 있다. 아버지가 그러셨다. 아주 오랜 전에 아버지가 곳을 방문했을 공원을 가셔서 길을 잃어버리셨다. 언어도 통하고 길을 헤매이시다 결국은 경찰서까지 가서 도움을 청하게 되셨다. 나중에 동생과 연락이 돼서 돌아오셨지만 많은 고생을 하셨다. 나도 공원을 거닐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까지는 되지 않았다. 날은 저물어 가고 다음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집은 3층에 있었다. 건물들은 오래전에 지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계단은 좁았고 가팔랐다. 나이가 아주 많이 드신 분들은 올라 가기가 힘들 것이다. 예전에 이곳에 살던 할머니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힘들어서 동생네에게 집을 팔았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예전에 와봤던 기억이 났다. 변한 것은 없고 거의 그대로였다.

 

  저녁이 나왔다. 소고기가 네모나게 입에 들어 갈만한 크기로 썰어져 있었다. 브로콜리, 당근, 파프리카, 채소 스틱등이 있고 사우전드 아일랜드와 랜치 드레싱도 보였다. 먼저 야채를 소스에 찍어 먹으니 상큼한 맛이 안을 적셨다.  옆에는 냄비에 끊는 기름이 있었다. 꼬챙이로 고기를 꼽아서 냄비에 넣어 고기를 잠시 튀기는 것이었다. 튀겨진 고기를 소스에 발라 먹었다. 향긋하면서도 약간은 바삭한 고기의 질감이 입술안으로 들어왔다. 프랑스 어느 지방의 요리라고 한다. 별미였다.

 

  조카도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그는 L'Impératrice 밴드에서 키보드를 담당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알려진 Pop 밴드이다. 미국에도 순회공연을 하러 가끔 온다. 그는 원래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서 활동해 오고 있다.  우리들은 옛날 추억을 생각하며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조카는 마치 컴퓨터에서 검색하면 정보가 나오는 것처럼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옛날 같이 지냈던 동생, 이제는 그녀가 멀리 타국에서 그녀의 인생길을 개척하며 가고 있다. 번은 다시 와보고 싶었던 동생의 . 내가 여기와서 그들과 함께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째로 와보는 것이다. 동생을 봐서 기뻤고 즐거웠다. 따뜻한 저녁 식사를 같이 있어서 좋았다. 언제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