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두의 중요성
어느 잡지사 편집 기자는 날마다 날아오는 원고 뭉치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가운데 되지도 않은 원고를 계속 보내오는 독자가 있었다. 물론 게재될 리 없었다. 그러자 어느 날 그 독자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사기꾼, 기자의 자격이 없는 사람” 그러자 화가 난 그 기자는 답장을 썼다.
“나는 쉰밥은 혀를 대어서 상했다면 끝까지 먹지 않는다.” 고.
편집자가 작품을 고를 때나 책방에서 책을 살 때도 다 읽어보고 사는 사람은 없다. 처음 몇 행만 읽어 봐도 그 글의 수준이나 성격을 알 수 있다. 이 서두 1행 여하에 그 작품의 성, 불성(成, 不成)이 따르게 된다. 서두가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을, 시일 관계로 그대로 되겠지 하고 진행을 시키다가는, 번번이 실패를 본다. 실로 이 서두 1행에 내용을 살릴 작품의 형식이 결정되는 일이니, 이 서두에 소화할 수가 없다. 시작만 되면 시간이 허(許)하는 한 쉼이 없다. 이 서두 1행 때문에 살이 깎인다.
김진섭은 일찍이 ‘서두는 가장 중요한 지도자요, 필자 자신을 소개하는 명함’이라고 비유했다. 결국 수필의 성패 그 발단이 여기에 있다는 말이리라. 다시 말해서 수필은 ‘발단의 예술’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서두가 신선하지 않으면 독자는 곧 책을 덮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좋은 내용이 담겨 있더라도 소용이 없다. 독자를 잃어버린 글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글을 쓰다가 원고용지를 가장 많이 버리는 부분도 이 서두요, 진땀을 흘리며 실랑이를 많이 부리는 부분도 이 서두에서다. 그만치 모래밭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이 고되고 힘든 작업이 서두이다. 우리가 글을 얼마쯤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걸 휴지통에 버리고 되돌아와서 다시 쓰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출발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서두는 너무 덤비거나 흥분해서는 안 된다.
양주동은 그의 저서 <文酒半生記>에서 처음에는 장편소설을 써 보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원고지를 펴놓고 막상 쓰려고 했으나 서두가 풀리지 않아 여러 날을 고심했으나 붓을 들지 못했다고 한다. 생각다 못한 그는 고금의 명저 백 권을 읽은 뒤에 다시 집필하려 했으나 끝내 서두가 잡히지 않아 그만두었다고 한다. 김진섭의 이야기나 양주동의 실패기는 모두 서두 때문이었고 보면 얼마나 서두가 중요한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2) 서두의 요령
①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
서두는 무엇보다도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한 무거운 문제를 다루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 설명이나 서론을 늘어놓는 것도 역시 삼갈 일이다. 그 역시 정서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흥미나 관심을 끌 수 없을 것이다. 흥미는 참신한 내용을 의미하며 관심은 모든 사람들이 요구하는 내용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그건 사장된 보물과 같다.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세월이 빨라서가 아니라 인생이 유한(有限)하여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새색시가 김장 삼십 번만 담그면 할머니가 되는 인생. 우리가 인제까지나 살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은 그다지 애석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세모(歲寡)의 정(情)은 늙어가는 사람이 더 느끼게 된다. 남은 햇수가 적어질수록 일 년은 더 빠른 것이다. - 피천득 <송년>
“또 한 해가 가는구나.”는 얼마나 가벼운 표현인가. 그리고 “새색시가 김장 삼십 번만 담그면 할머니가 되는 인생”이란 표현은 얼마나 신선한 맛이 나는가. 앞말은 전혀 읽는 이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으며 뒷말은 새로운 어감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러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누구나 세월의 덧없음에 잠시 잠겨 보게 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느껴 보는 공통된 허무다. 그리고 누구나 세모에 지난 한 해를 더듬어 보고 싶은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데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인생에 대한 문제, 삶에 대한 진지한 문제는 우리에게 관심을 끈다. 인생에 대한 문제는 누구나 아담한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기교가 없어도 빠져든다.
② 파격적인 서두도 필요하다
사람은 매일 일정한 틀에 의해 살아간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서둘러 일터로 간다. 그리고 저녁이면 다시 보금자리를 찾아온다. 이렇듯 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에서 때로는 어떤 염증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할 때가 있다. 밤늦도록 고래고래 소리질러 춤도 추며 노래도 불러 보고 누구와 마음속의 응어리도 풀어 보고도 싶어진다.
글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그런 파격을 필요로 한다. 어떤 틀에서 벗어남으로써 신선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자극이라 해도 좋고 어떤 변화라고 해도 좋다. 와트(Watt)는 일찍이 “어떤 글이든지 머리, 중심, 결말 또는 서론, 본론, 결론을 갖추어야 한다는 공식의 노예가 되었다면 그 속박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때로는 3단 구성의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③ 기발한 언어로 시작하라
누구나 깜짝 놀랄 말, 누구나 손뼉 칠 수 있는 서두면 이런 글은 우선 성공한 글이다. 서두는 좋은데 본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은 없다. 그만치 서두가 잘 다져진 글은 본문 역시 튼튼하게 마련이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워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 피천득 <오월>
얼마나 맑고 깨끗한 서두인가. 그러면서 얼마나 기발한 착상인가. 손가락에 깨끗하고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의 비유도 옹골차다. 이렇듯 좋은 서두는 처음부터 우리의 영혼을 뒤흔든다.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한다. 우리는 언제나 새롭고 참신한 말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의 영혼을 뒤흔드는 말을 발굴해야 한다. 언제나 연구하고 언제나 탐색해야 한다.
사람은 행복한 맛에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는 맛에 산다. 추구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극히 불행한 사람이다. 불행한 사람은 또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다. 사람은 그래서 다같이 살아왔다. 옆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인생이란 참으로 허무하구나 하면서도 자기만은 아직도 오래 살 것같이 믿는다. 못 믿을 자기 앞만을 믿고 산다. 나이 칠십이 넘어 수명의 바닥이 보인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결코 내일이나 모레 죽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오영 <생활의 정>
우리에게 사색을 주고 우리에게 삶의 깊이를 주는 서두다. 이런 서두를 읽을 때 우리는 한잔의 숭늉맛을 느낀다. 아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삶의 방안에 흥분하게 마련이다.
④ 안개꽃같이 시작하는 글
안개꽃! 무언가 우리에게 아련함을 주는 꽃이다. 보이지 않는 기대와 희망이 살아 있는 꽃이다. 무언가 아름다운 그림자가 커튼을 친 것 같고 무언가 많은 사연이 담겨 있을 것만 같다. 그것은 어쩌면 안개란 그 묘한 이름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도 어리고 나약하면서도 섬세한 그 꽃에서 풍기는 분위기 때문일까. 아무튼 안개꽃은 우리에게 무한한 꿈과 낭만을 주고 아련한 기대와 미지의 희망을 준다. 이런 안개꽃 같은 서두는 누구나 좋아한다. 고아 담백해서 소녀도 좋아하고 나이 든 중년도 좋아한다. 말하자면 호수와 같은 서두요, 푸른 초원과 같은 서두다. 이런 서두는 그야말로 시적 분위기요, 솔바람 같은 분위기다. 그래서 이끌리게 마련이다.
달맞이꽃이 피어나는 강둑에 앉아 피리를 불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귀 열고 들어 주는 이 없고 한 곡조 불러 달라 청한 이도 없건만. 그는 달빛이 이슥한 밤이면 풀숲에 누워 밤이 지새는 줄도 모르고 애절하게 피리를 불고 있다. - 반숙자 K회림 (會林)의 달 L
우리에게 얼마나 아련함을 주는가. 그러면서 온통 시적 분위기에 싸이게 하지 않는가. 아니 꽃덤불 속에 졸고 있는 어떤 불빛 같은 서두다. 이렇게 마음을 잡아끄는 서두를 찾는다는 것은 이미 성공한 작품이다. ⑤ 일인칭과 명사로 시작하는 서두 그밖에 ‘나’라는 일인칭으로 시작하는 서두다. 이런 서두는 비교적 쉽게 그 뒤가 이어진다. 그리고 ‘나’라고 꼭 못 박지 않는 ‘나’로 시작하는 서두 역시 무난하다.
나는 그믐을 사랑한다. 그믐달은 - - 나도향 <그믐달> 워낙 성미가 게을러서 문 밖에 나가기를 즐겨하지 않는 데다가- - 양주동 <노변잡기(路邊雜技)>
그리고 ‘언제 어디서’로 시작하는 것도 무난하며 글의 제목을 명사로 잡았을 때면 그 명사로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어제 B병원 전염병실에서 본 일이다. A라는 소녀, 칠팔 세밖에 안된 귀여운 소녀가 - - 주요섭 <미운 간호부>
명옥이는 그 허술한 주제를 그렇게 변명조로 설명하였다. - 한무숙<명옥이>
봄이었다. 삼월이었다. 강남에는 봄이 유난히 일찍이 왔다. - 김광주 <양자강 연암>
가능한 한 서두는 짧은 문장으로 쓰는 것이 무난하다. 첫 서두가 길면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것은 흡사 만나자마자 길게 사설을 늘여 빼는 사람과 같아서 인상이 좋지 않다. 그러므로 서두는 짧으면서도 산뜻하게 쓰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만 생각할 일도 아니다. 가벼운 서술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이면 무난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