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밀려난다. 썰물과 하늬바람이 배를 물목으로 몰아붙이면 뱃사람들의 '어기여차' 힘을 쓰느라 소리가 높아간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이 대를 물려 노를 젓는다. 목소리도 물려받는다.
섬에서 노 젓는 일은 일상이다. 섬 아이들은 뭍에서 노는 것보다 바다에서 작은 배를 타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도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노는 것처럼 그들은 덴마를 타고 논다. 덴마는 경상도 전라도 방언으로 본래는 전마선(傳馬船)이라 부른다. 배의 크기는 6미터 남짓, 육지로 이동하거나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가까운 섬과 섬을 이동할 때 이용한다. 덴마를 움직이는 것은 서양식 주걱 노가 아니라 전통 노이다. 덴마는 무게가 꽤 나가는 편이라 보트에 사용하는 서양 노로는 배를 움직일 수 없다. 전통 노로 저어야 밀물이든 썰물이든 바람이든 무거운 배를 힘차게 저어 나아갈 수 있다. 전통 노는 5미터 정도로 배 길이만큼이나 길다. 어른이든 아이든 같은 크기의 노를 사용한다.
서양 노는 조류가 약하고, 물이 깊지 않은 곳에서 사용한다. 조류가 수시로 변하고 하늬바람 샛바람 서마 바람이 변덕스럽게 불어대는 깊은 바다에서는 전통 노를 저어야 안심이 된다. '전통 노는 무겁고 진중하고 서양 노는 가볍고 경박하다.' 명량해전에서 12척 배로 왜군 330척을 섬멸한 것은 전통 노의 무겁고 단단한 힘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이 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선원들을 무사 귀환시킬 수 있었던 것도 전통 노가 가지는 과묵하고 인내할 줄 아는 뱃사람의 기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전통 노를 만드는 사람은 조류와 물길을 잘 알고 거친 파도를 오랫동안 겪어본 사람이어야 한다.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 깨나 받는 인품도 지녀야 한다. 어른의 성품이 쓸모 있는 노를 만들어낸다. 노를 만드는 참나무도 단단하면서 결이 부드러운 어른의 성품을 닮았다.
노는 손잡이와 물살을 갈라내는 날로 되어 있다. 노의 윗부분을 만들기 위해 껍질을 벗겨내고 자귀로 먹줄을 퉁기고 먹줄을 먹인 데까지 손도끼로 파내고 다듬어낸다. 노를 만드는 사람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때는 노의 날을 대패질할 때이다. 노 젓는 사람이 힘을 덜 들이고 빠르게 노를 저을 수 있도록 이음새가 조금씩 굵어지면서 굴곡 없이 유선형이 되도록 해야 한다. 중심을 잡아주는 놋좆의 구멍을 끌로 파내는 일 또한 정성을 요구한다. 그 구멍은 헐거워도 빡빡해도 안 된다. 헐거우면 노 잡는 팔에 힘이 들어가야 하고 빡빡하면 밀고 당기는 데 힘이 든다. 물살이 노를 젓는지 바람이 노를 젓는지 노가 노를 젓는지 시늉만으로 노를 저을 수 있어야 한다. 잘 만들어진 노는 온종일 저어도 지치지 않는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노를 저어야 한다. 얼핏 보면 오른쪽 노잡이와 왼쪽 노잡이가 서로 경쟁하는 듯 보이지만 서로 호흡을 맞춘다. 오른쪽 노잡이는 방향을 틀거나 속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경험이 많아야 한다. 유속(流速)을 가늠해 물살이 거세면 노를 얕게 넣고 물살을 짧게 빨리 썰어야 한다. 물살이 약하면 노를 깊이 넣어 길고 묵직하게 썰어야 한다. 잡아당길 때는 들숨을 밀 때는 날숨을 쉬어야 한다. 호흡과 일심이 되면 노의 날이 물을 갈라서 밀어내는 것이 힘들지 않다. 어느 한쪽이 힘이 세다고 밀어붙이면 배는 순간 기우뚱하거나 한쪽으로 뱅뱅 돌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노 젓기는 힘이 아니라 노련함이 있어야 한다.
노 젓는 것을 들여다보면 함께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멀쩡하게 근무하던 대학교를 그만두었다. 아내는 기가 막혔고 남편의 사직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아들을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야 했고, 딸이 해오던 판소리 공부를 포기할 수 없었다. 박봉이 문제였다. 늘어가는 빚을 감당하기 위해 교수로 임용되기 전에 운영했던 어학원을 다시 시작했다. 무슨 일이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때로는 비장한 각오가 필요한 법이다.
아내는 아들과 딸이 포기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했다. 집안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들이 행여 학업을 중단할까 노심초사했다. 예술을 시켜본 부모들은 자식을 어엿한 예술인으로 키워내려면 재능만으로 안 된다는 사실을 안다. 아파트 두 채 정도는 팔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조차 있는 게 현실이다. 아내는 불안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의 노를, 나는 늘어만 가는 부채를 줄이고 가정 경제를 일으키기 위한 재기의 노를 불끈 틀어쥐었다. 아내는 오른쪽 노를 잡은 남편의 노 젓기에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물살을 썰었다. 인생의 배가 때로는 조금씩 밀려날지언정 맞바람에도 유속이 빠른 물목에서도 뒤집히지 않도록 호흡을 맞추었다. 남편이 앞만 보고 묵묵히 노를 저어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부부 일심동체!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노를 하나쯤 가슴에 품어야 한다. 인생이란 배는 큰일을 하던 작은 일을 하던 위험한 조류와 물목을 지나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높은 파도를 넘기도 해야 한다. 노와 배가 일체가 되면 험한 바다에서 난파되지 않고 항해할 수 있는 것처럼 가슴에 품은 노와 몸이 하나가 되면 온갖 역경과 시련을 헤쳐 나아갈 수 있다. 오른손 노잡이는 가슴에 품은 노 한 자루로 세상의 높은 파도와 변화무쌍한 조류에 맞선다.
인생이라는 배를 세상의 바다에 띄운다. 그 배가 순항하도록 가슴에 품은 노의 끈을 조절하고 만사(萬事)의 물살을 썰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