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온 세상이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렇게 들뜨는 것일까요? 어느 한 나라만의 경우가 아닙니다. 나라도 초월하고 종교도 초월하는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크리스마스는 Joy to the world입니다. [온 세상의 기쁨]입니다.
한국 대전 지역신문이 보도하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트 캘린더'를 진행하고, 스탬프 이벤트를 통해 푸빌라 키링, 오너먼트를 증정한다. 또 28일까지 겨울 아웃도어 종합전과 젝시믹스 할인행사, 보브 아우터 특집, 락포트 특가상품전 등을 진행하며 고객 모시기에 나섰다.-
이런 보도는 극히 작은 한 예에 불과하지만 세상에 그 어떤 명절을 이렇게 성대하게 준비하는 경우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명절은 크고도 대단한 명절입니다. 세계적입니다. 즐겁고 기쁜 명절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이라면 아니 진실한 교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왜 우리가 성탄절을 최고의 명절로 지키며, 기뻐해야 하는가 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은 [성육신]의 명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the incarnation)은 기독교의 핵심 요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이 엄청난 사건이 바로 성탄절에 우리가 기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가... 라고 입이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그냥] 탄생하신 날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임스 이넬 패커(James Innel Packer)라는 복음주의 신학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속죄라는 그리스도의 수난절에 전하는 메시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부활이라는 부활에 전하는 메시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성육신이라는 성탄절의 메시지에 있다. 정말로 충격적인 기독교의 진리는 하나님이신 나사렛 예수가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신성을 상실하지 않은 채 인성을 취하셨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는 참으로 완전하게 인간이셨고, 마찬가지로 참으로 완전하게 신적 존재라는 것이다.]
로마 제국 최고 통치자로 알려진 트라야누스 황제가 플리니우스로부터 받은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들은 특정한 날의 새벽에 모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 때 그들은 번갈아 가며 그리스도께 찬양을 불러 드리고 어떤 악한 행위도 하지 않을 것을 엄숙하게 맹세하는데, 마치 하나님께 하는 것처럼 합니다.]
그의 편지는 그리스도가 다른 신들과는 달리, 땅에 살았던 하나님이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전능하신 분이 일반 아이와 마찬가지로 꼼지락거리고 누워서 부모를 빤히 바라보고 먹을 것을 받아 먹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모습을 [그는 연한 순처럼,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처럼 주 앞에서 자랐으니 그에게는 풍채나 위엄이 없고 우리의 시선을 끌 만한 매력이나 아름다움도 없다]고 예언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신 하나님께서 아기였던 시절이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인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성탄절은 단순히 기쁨의 절기 이전에 ‘성육신’(Incarnation)이라는 심오하고 특별한 신학적 의미가 있는 절기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는 요한의 기록처럼, 성탄은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신 예수께서 세상에 임하신 사건입니다.
영국의 복음주의 지도자, 존 스토트(J. Stott)는 성육신의 놀라움과 그 의미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어렴풋이 알아낸 실재가 아무리 풍성하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하나님은 여전히 무한히 멀리 계신 분이시다. 저 멀리 계시는 분이 단 한 번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셨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로 인간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그때에야 비로소 인간의 눈은 인간의 형태를 한 참된 ‘영광’, 궁극적인 인격적 실재의 광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요 1:14)을 보았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비천해지신 하나님의 행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죄인 된 우리 대신 끔찍한 십자가에 찢기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 앞에 예정된 죽음의 잔을 하늘의 왕께서 대신 마셔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이 행하신 사랑인 것입니다.
만 왕의 왕이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두번 째로 우리가 기뻐하는 이유는 성탄은 만 왕의 왕의 탄생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이 아니라 만왕의 왕께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탄생 이야기는 그 어떤 왕의 탄생과 비교할 수 없는 기이함과 놀라움이 있습니다.
스펄전(C. H. Spurgeon)은 그것의 특징을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천군 천사들이 장엄한 합창과 찬양을 올렸습니다.
우주의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고 이 땅에 탄생하신 그 광경은 실로 장엄한 모습이었습니다. 인간 찬양대나 성가대란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으로 구성되지만, ‘수많은’ 천군이 천사들이 그 밤에 찬송했습니다.(눅 2:13)
하늘의 총사령관이신 하나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오셨을 때, 수많은 천군이 그를 호위하며 지상에 내려왔으며, 그 하늘의 군대는 천사들과 함께 만왕의 왕의 탄생을 우주에 울려 퍼지도록 찬송했습니다. 아마도 그 밤은 천지 창조 이래 하늘의 군대와 천사들이 모두 참여한, 온 우주가 들썩였던 웅장한 밤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기의 탄생의 의미 또한 독특합니다. 천사들은 이 탄생의 놀라운 의미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아기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중의 새를 통해, 바다의 물고기를 통해, 들의 꽃을 통해, 번개를 통해, 시냇물을 통해 영광 받으십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의 탄생이야말로 지극히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참으로 영광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그분의 탄생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평화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줌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의 길이 열렸습니다.(막 10:45)
그리고 언젠가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아기들이 독사의 굴에 손을 넣으며 장난할 완전한 새하늘과 새 땅, 완전한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사 11:6-8)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행하셨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일방적인 성탄입니다. 불완전한 인간과 의논해서 된 일이 아닙니다. 완전하시고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일방적이신 뜻대로 된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M. Lloyd-Jones)의 말처럼, ‘무엇보다 성탄절은 일방적인 기쁜 소식과 위대한 선언의 절기’입니다.
성탄은 인간이 행한 어떤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 아래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성탄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신] 사건입니다.(갈 4:4)
이러한 하나님의 주도성은 성탄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을 면밀히 살펴보면 실로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사갸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더 이상 자녀를 가질 수 없는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천사가 나타나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아들이 장차 오실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눅 1:33)
마리아의 경우에도 똑같은 일이 나타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천사장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그녀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말합니다.(눅 1:28)
또한 들판의 목자들을 보라. 그들은 한밤중에 양 떼들을 지키며 들판에 있었습니다. 그전에도 목자들은 수백 번씩 수천 번씩 그런 일을 계속했었습니다. 그러니 무슨 특별한 일을 기대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천사들을 통해 일방적인 소식이 들려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성탄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그저 뒤로 물러서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그 기이한 일들을 경외심으로 바라보며 그분을 경배하며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 안에 탄생하십니다
내 마음의 성탄, 그래서 기쁜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부 오리게네스(Origenes)는 말합니다. [그리스도인 주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세상에 탄생하셨지만 만일 내 마음에 태어나지 않으신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다윗의 동네에 태어나신 우리의 유일하신 왕께 무릎을 꿇고 그분의 발에 입 맞추며 경배하자.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