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한 송이를 놓고 들여다보다가 포도알이 몇 개나 달려있는지 세어 본다. '몇 개 달려 있는지 세어본다는 것도 쓸데없는 일인데 바로 잊어버릴 숫자이지 않은가. 왜 이러지? 기억의 천재 푸네스가 되려나…' 그런 생각으로 숫자 세기를 포기한 채 포도를 먹기 시작한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는 단편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 불면증을 앓으며 끊임없이 전 인생을 기억하는 일에 몰입하다 죽은 열아홉 살의 이레네오 푸네스를 묘사했다.
푸네스는 포도나무에 달려있던 모든 잎들과 가지들과 포도 알들의 수를 기억하고, 모든 숲의 나무들 나뭇잎과 그 순간까지 기억한다. 1882년 4월 30일 새벽 남쪽 하늘에 떠 있던 구름들의 형태를 기억하고 있다. 라틴어도 몰랐던 푸네스는 라틴어 사전을 읽고 대화가 아닌 어떤 단락을 통째로 암송한다. 하루 전체를 복원하는 작업으로 하루를 보내느라 그는 잠들지 못한다. 다른 각도에서 거울을 볼 때마다 달라지는 자신의 얼굴을 이해하지 못해 화들짝 놀라는 푸네스의 세계는 풍요롭지만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세부적인 것만 있을 뿐이어서 플라톤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나의 기억은 쓰레기 하치장과 같지요" 푸네스는 말했다.
보르헤스는 푸네스를 등장시키면서 기억세포가 끝없이 증식되는 세상이 올 것을 내다본 것일까. 스마트폰의 무한 기억능력을 예견한 것처럼 '기억' 해내느라 '불면증'을 앓는 사람에 대한 글을 20세기 초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잠들지 않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닮은 스마트폰을 갖고 산다. 언제 어디서나 잠들지 않은 채 저장과 기억의 반복뿐인 기기에 매달린 사람들을 만난다. 모든 정보와 자료들이 수천수만 가지의 형태로 나타나는 기적에 놀라며 검색과 입력, 무한복제와 퍼나르기에 몰입한다.
무슨 이유인지 대용량의 기억 기계 앞에 나의 기억력은 곧 불도저에 뭉크러지고 말 형편없는 모습이다. 이제 무엇이든 굳이 힘들여서 기억하고 생각해 낼 필요가 없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검색 기계에 원하는 식당, 가고 싶은 여행지, 궁금한 인물, 읽고 싶은 책에 관한 단어를 친다. 예전처럼 내 머릿속 뇌의 지도를 꺼내거나 수첩을 열고 이리저리 생각하고 연구하면서 따져보지 않는다. 택시를 타도 기사는 자연스럽게 검색창에 갈 곳을 입력하고 어느 길로 가야 지름길인지 실시간으로 기계가 가르쳐 주는 대로 움직인다. 경험이 풍부하다는 의미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노래방 기계가 나온 뒤 나는 노랫말을 잃어버렸다. 어느 한 구절이라도 암송하느라 애쓰고 곱씹으면서 불렀던 그 노래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총기가 좋다며 어머니 앞에서 노래 가사를 들려주던 나의 시간도 묻혀 버렸고 향수와 애절함도 잊은 지 오래이니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정감도 가뭇하다. 학생들은 수업 도중에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선생에게 틀린 부분을 지적한다. 학생 출석부를 받아들고 자기반 학생들 이름을 외우던 선생님의 기억력은 관심과 사랑이지 않았을까. 더 이상 종이 성적표에 점수를 주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기기에 저장하고 불러내고 관리하는 일만 남아 실체가 약한 세상이다. 상처에 아파하고 어른들의 잔소리를 곱씹고 친구를 배려하던 그런 내 인생의 맛은 어디로 간 것일까. 단수수대를 씹으면서 단물을 삼키고 거친 밀과 질긴 나물을 씹던 튼튼한 나의 턱은 기억을 잃고 바슬거리기 시작한다.
불러내기와 퍼즐 맞추기 앞에 내 상상력은 곧 절단 나버릴 모양새다. 기억을 어떤 형태로 빚을 것인가. 작가의 기억력은 기억의 천재 앞에서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작가들의 기억장치는 효모라도 있는 듯 세상사를 발효시키고 숙성시켜 슬픔까지도 얼마나 아름답게 그려내는 필기도구였던가. 그냥 기억만 해내도 독특하면 대단한 금맥이라도 찾아낸 것처럼 빛을 보고 그 이야기 자체로 사랑받던 기억담이었다.
우주 질서까지 상상력으로 버무려내던 작가의 기억력은, 스마트폰 안에 떠도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 유령들을 치유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포도알이 몇 개나 되는지 집착하는 천재들에게 포도송이마다 하늘이 울다 웃고 비바람이 춤을 추어 포도주가 익어가는 그 시간의 유산을 들려주어야 한다. 우리들은 날마다 수 억 건씩 기억되는 부질없음에 보르헤스의 말처럼 쓸데없는 몸짓들을 증식시키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까마득한 현기증을 느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