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진실된 체험을 담는 그릇 - 유안진

 

 

문학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에서 체험은 중요합니다. 인생의 어느 부분이든 간에 체험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지식은 책에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책을 읽어가면서 빨간 줄을 그어 놓았다가 좋은 구절은 외워서 인용할 수가 있지만, 우리 삶에서 터득할 수 있는 지혜라는 것은 체험을 통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체험을 해도 지혜를 얻지 못할 경우도 있습니다. 체험을 다 하고서도 거기서 지혜를 빼내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젊은 날의 체험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 간접 체험의 일환으로 우리들은 책을 많이 읽습니다.

일찍이 이제마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앞뒤로 나아가는 시간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고, 우리의 마음은 공간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다."라고. 시간이라는 것을 돌아보면 인간이 백년도 못 사는데, 오백 년 전의 일이라든지 이천 년 전의 일이나 앞으로 천년 후의 일은 전혀 생각할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인류가 쌓아온 지혜 같은 것은 "이천 년 전에 예수그리스도 같은 분이 계셨구나", "이런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구나", "참 기가 막힌 말이다"고 책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우리가 간접 체험을 하는 것이고, 대한민국에 태어나 좁은 공간에 살면서 별로 얻지 못하는 것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 것을 간접 체험이라고 하고 간접 체험에서 상상을 합니다. ", 이렇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하겠지" 하고 상상력을 발동하는데,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선험(先驗)이라고 말합니다. 선험이라고 하는 것은 미리 생각을 하고 미리 체험을 해보는 것입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고, 문학이 없다면 상상력도 고갈되고 말 것입니다. 예술가들, 예컨대 화가라든지 조각가, 음악가 여러분들도 왜 책을 읽는가 하면 상상력을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우리의 기억력을 도와줍니다. 인류가 살아오면서 많은 실패와 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입니다. 때로는 제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짓을 많이 하고 사는데, 역사를 배움으로써 잘못된 것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를 일깨우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잘못된 것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역사는 우리에게 기억력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문학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역사와 철학인데, 특히 철학은 우리들의 추리력을 키워 줍니다. '이러이러한 관계니까 이렇다', '저런저런 관계니까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따위의 추리력을 키워 주는 것입니다. '··(文史哲)'이라고 해서 문학과 역사와 철학은 항상 한 묶음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학하는 사람이 문학에 관한 책만 읽으면 좋은 작품을 쓰지도 못하고 그 사람의 생각에 한계가 드러나고 맙니다. 그래서 좋은 작가는 철학서를 반드시 읽게 되고, 지은이의 철학이 어떠한가는 곧 문학 작품의 질과 깊이로 연결됩니다. 똑같은 역사적 현상을 두고 그것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은 철학의 영역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넓게 보면 신학도 문학에 속할 수가 있고 성경이나 불경을 해석하는 것도 전부 철학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체험을 준다는 것은 반드시 문학과 관계가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문학은 역사와 철학과 동반자가 되어야

사실 실존 여부는 역사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지만, 임진왜란 때 왜적들을 물리치는 데 크게 공헌한 것으로 알려진 서산대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의 제자로 임진왜란(壬辰倭亂) 7, 정유재란(丁酉再亂) 714년간의 외침으로 우리 나라를 초토화되었을 때 왜구들을 물리치는 데 큰 공헌을 한 분이 사명대사입니다. 이 두 분에 얽힌 에피소드입니다.

사제지간인 두 분이 길을 가시는데, 지금처럼 워크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루하고 따분해서, 사명대사가 "선생님, 재미없지요. 심심하지요." 그러니까 " 심심하네" 하셨답니다. "선생님, 저 들판에 검정소와 누렁소 두 마리가 풀을 뜯어먹고 배가 불러서 누워있는데 저 두 마리의 소 중에서 어떤 소가 먼저 일어날까요?" 하고 물으니 서산대사께서 하는 말이 "사명당 자네가 먼저 알아맞혀 보시게" 했답니다. 사명당이 효()를 뽑아 봤더니 '불 화()'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명당이 "선생님, 누렁소가 먼저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효를 뽑았더니 불화자가 나왔거든요" 하고 말하니, "아닐걸" 걸자가 끝나기도 전에 검정소가 벌떡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누렁소가 따라서 일어났습니다. 사명당께서 " 선생님, 제가 분명히 주역의 효를 잘못 뽑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해서 누렁소가 먼저 안 일어나고 검정소가 먼저 일어납니까?" 했더니 "사명당, 자네는 불도 안 피워 보셨는가? 불을 피워 보면 검정 연기가 푹 나고 누런 불꽃이 오르지. 누런 불꽃이 오르고 검정 연기가 나는 법이 없네. 그래서 효는 그렇게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닐세"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두 분이 길을 하루 종일 걸어서 늦은 저녁 때 어떤 불자의 집에 도달했습니다. 그 불자가 저녁을 다 먹고 기름도 없어서 일찍 자려고 누웠는데 두 스님들이 들이닥친 것입니다. 두 대사님을 방안으로 맞아들이고 보니까, 하루 종일 굶으신 것 같아서 "저녁 공양을 못하셨지요." 하니까 "저녁은 무슨 그냥 자지 뭐. 냉수나 한 대접씩 주시게" 하더랍니다. 지금 대사님 두 분이 오셨는데 저녁 공양을 못하신 것 같으니 빨리 저녁을 지어서 내오라고 하니까 자기 부인이 짜증이 나서 하는 말이 "우리가 가진 것도 아무 것도 없고 죽을 써먹고 말았는데 뭐가 있느냐"고 이 저녁에 뭘 가지고 하느냐고 부인이 말하니, 아무 것이라도 찾아서 내오라고 했답니다. 독 안을 찾아보니 밀가루가 한 사발이 있었는데, 그 밀가루를 가지고 뜨끈뜨끈하게 국수나 말아서 드리면 두 분의 노독도 풀리면 괜찮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부처님이 무슨 요술을 부려서 먹여주시는 것은 아니니까 아무리 유명한 스님이라도 배가 고플 것 아닙니까. 그래서 사명당이 "선생님, 오늘 저녁 공양으로 무엇이 나올까요?" 하니까 "자네가 알아맞혀 보시게" 했답니다. 효를 뽑아보니 '뱀 사()'가 나왔다고 합니다. "국수가 나오려나 봅니다. 국수나 한 그릇 먹고 자면 속이 확 풀릴 것 같고 너무너무 좋겠습니다" 고 말하니, 서산대사 하시는 말씀이 "나와 봐야 알지" 하셨답니다.

그런데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이번에는 선생님이 지셨습니다. 제자분이 맞히셨습니다. 우리 내자가 반찬이 없다고 국수를 한다고 했습니다." 했더니 서산대사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와 봐야 알지" 하셨답니다. 한참을 있다가 문밖에 상이 왔다고 해서 문을 열고 상을 들여놓는데 보니까, 국수가 아니고 수제비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사명당이 "선생님, 분명히 뱀사였는데 어떻게 수제비가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고 하니, "사명당, 자네는 어찌 경험을 활용할 줄을 모르시는가. 지금은 늦가을일세. 이때는 뱀들이 전부 굴속으로 들어가 잘 때야. 잘 때도 전부 꽈배기를 틀고 잔다네. 그러니까 국수가 꽈배기를 틀면 수제비가 되지 않겠는가?" 하고 얘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주인이 자기도 져서 부인에게 "당신은 왜 국수를 한다고 하더니 수제비를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부인은 "반죽을 하다가 물을 실수로 더 부어버려서 밀가루가 남은 게 있으면 더 넣어서 뭉쳐가지고 국수를 만들 수 있는데, 밀가루가 없어서 너무 지니까 수제비를 만들었어요." 하더랍니다.

 

특이한 체험보다 일상의 체험을 잘 활용해야

누가 이런 우스운 얘기를 만들어 냈을까요. 실제로 두 분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가운데에는 경험을 하고도 활용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별것도 아닌 경험을 하고 근사한 것으로 포장을 해서, 자기가 마치 뭘 한 것처럼 작품을 써냅니다. 반면에 인생이 기가 막히게 진달래꽃으로 삼천리 강산으로 다 피우고도 남을 뼈아픈 경험을 하면서 살면서도 한 편도 못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꽃 한 개 시로써 못 피우고 글 한 줄 못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경험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얼마 전 제가 재직 중인 서울대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을 초청해서 학생들에게 강연을 듣게 했습니다. 도대체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저도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연사는 강연 내내 경험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는 집이 가난해서 대학에 갈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아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 동안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제재소에서 나무 자르는 것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조수 노릇을 하면서 나무를 켜는데, 가로로 켜면 잘 안 켜지고 결을 따라서 세로로 켜면 잘 되더랍니다. 어떤 칠을 하면 전혀 칠을 안한 것 같고, 어떤 칠을 하면 나무의 본래의 색깔과 문양이 다 죽어 버린다는 것을 3년 동안 아버지한테 배운 것입니다.

3년이 지난 후 집안 형편도 나아지고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 4년 동안 배우고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지만, 아버지의 제재소에서 3년 동안 배운 것보다 훨씬 배운 것이 적었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했습니다. 이공계 학생들이 실험을 해보지 않고 공부를 한다고 하는 것은 전부 가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책을 안 읽어도 좋으니까 실험을 먼저 하고 책을 읽으라고 권했습니다.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탈 수가 있습니까?" 하고 질문했더니, 그는 의외에도 "노벨상을 타는 것은 운"이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보다 더 훌륭한 기여를 하고 공헌을 많이 한 사람도 그걸 타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자기 같은 사람이 탄 것은 운이라는 겁니다. 노벨상의 삼분의 일 정도는 유태인들이 타 버렸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미국 사람이 탔습니다.

올해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 탄신 5백주년 기념의 해입니다. 퇴계가 우리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고 중국이나 일본, 구라파의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퇴계 한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일은 지적으로 먹여살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양반이 어떻게 하다가 운이 나빠서 우리 나라에 태어나 퇴계 탄신 5백주년인데도 전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그 이론과 학설이 사장되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독일에는 퇴계 학회도 있고 연구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는 우리 나라에서는 퇴계 공부를 하지 못하고 미국에 가서야 비로소 공부하면서 그 분을 새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산서원에 가보면 우리 나라 국비로 비싼 세금을 내면서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한 것보다 나은 학문적 성과를, 선구적으로 도형 같은 것을 사용하여 이미 5백년 전에 다 이룩해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분의 진가를 그 동안 우리가 못 알아봤구나 하는 후회가 크게 들었습니다. 그렇게 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도 왜 자기가 노벨상을 탔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에 관한 몇 가지의 학설이 있습니다. 지금도 서울에는 점집이 굉장히 많고 사주보는 집이 많은데 저도 가끔 가서 봤으면 하는 유혹도 느낄 때가 참 많습니다. 아득하고 답답하고 일이 잘 안될 때에는 도대체 내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고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 이미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런 사고 방식은 우리 인간을 수만 년 동안 지배해 온 것 같습니다.

옛날 그리스에 테베라는 조그만 왕국이 있었는데, 그 왕국에 라이오스라는 왕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이 목에 탯줄을 감고 애기집을 쓰고 나왔는데 이상하다고 느껴서 신하들을 시켜 신전에 가서 물어보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이 아이를 당장 죽여라. 죽이지 않으면 자기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을 해서 아버지의 왕권을 뺏을 저주스러운 운명을 타고난 아이다"라고 말했답니다. 그런 운명을 타고 나오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그런 아들을 낳고 싶은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텐데, 한 나라의 국왕이 그런 아들을 낳았습니다. 신하들은 정이 들기 전에 빨리 죽이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어떻게 제 핏줄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자라서 아버지한테 대들기나 하고 왕위를 안 내놓는다고 그러면 죽이고 싶은 생각이 가끔은 들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자식을 죽인다는 것은 생각을 못할 것입니다. 영조 임금도 아마 사도세자를 억지로 죽였을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할 수 없이 가져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버린 아들이 강물을 타고 내려가 어느 먼 나라의 해안에서 어부에 의해서 구출이 되어 어부의 아들로 성장을 하는 겁니다.

망각에 필요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바닷가의 기온이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일기가 불순해지자 비를 피해서 오두막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오두막에는 눈이 초롱초롱하고 얼굴이 반듯하게 생긴 비범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왕은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잘만 교육을 시키면 우리 나라를 위한 좋은 인재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부를 보고 "네가 이 아이를 아무리 잘 키워야 어부밖에 더 되겠느냐. 잘못하면 바닷가에 나가서 난파선을 만나 죽는다. 그러나 나를 주면 데리고 가서 잘 키워 이 나라의 큰 인재를 만들 수가 있으니까 다오."라고 했습니다.어부 내와는 진심으로 그 아이를 사랑했기 때문에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왕에게 주었습니다. 왕이 그 아이의 이름을 오이디푸스(Oidipous)라고 짓고 그 아이를 잘 키웠습니다. 귀족의 자제들이 잘 차려입고 왕실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는데, 그 아이는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알고, 열을 가르쳐 주면 백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가히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습니다. 왕은 아이가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나머지 자기의 왕비가 낳지 않았다는 말을 못하게 했습니다. 이 아들이 잘 자라서 아버지를 대신해서 전쟁에 나갔는데 번번이 이겨서 아주 나라가 부강하고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점쟁이들이 하는 말이 왕자가 국왕을 죽이고 모후를 아내로 삼아서 아버지의 왕권을 뺏을 관상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 들을 때는 괜찮았지만 여러 번 수군거리는 말들을 반복해서 듣자니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세상에 하고많은 팔자 중에서 그런 팔자를 가지고 태어났는지 안타까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왕자는 슬픈 편지를 한 장 남긴 채 그를 따르는 백성들을 데리고 아버지의 나라에서 멀리멀리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혹 자기의 후손이 아버지의 후손과 부딪치기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왕자는 멀리멀리 갔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자신을 낳아준 생모의 나라로 갔습니다. 나중에 아버지는 군대를 일으켜 이 나라를 쳐들어갔지만, 그만 젊은 왕자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왕을 죽인 자는 그 왕비와 결혼을 하면 그 나라의 왕이 될 수 있다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격을 알아보기 위해 스핑크스의 비밀 세 가지를 풀게 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네 발로 다니고, 자라나면 두 발로 다니고, 늙으면 세발로 다니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 그 퀴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것을 풀지 못하면 스핑크스에서 불과 괴물이 나와 잡아먹고, 풀면 왕이 될 수 있는 거죠. 오이디푸스는 그 문제를 다 풀고 아직도 아리따운 왕비와 결혼을 하여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거지가 하나도 없이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에 비가 한 방울도 안 오는 가뭄이 닥쳤습니다. 그 다음에는 큰 질병이 찾아와 백약이 무효인 채 짐승이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다 쓰러져 갔습니다. 이런 재앙이 닥치자 왕은 신하들을 시켜 신전에 나아가 물어 보도록 했습니다. 신하들이 물어 보았더니, "이 나라에 자기 아버지 죽이고 자기 어머니와 결혼한 자가 있는데, 그 패륜아를 찾아 응징하지 않으면 재앙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당장 그 패륜아를 찾아내라"도 호통을 쳤습니다. 하지만 신하들은 아무리 해도 그 패륜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찾다가 지친 신하들 사이에서는 "우리 주변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없는걸. 혹시 26년 전에 난데없이 왕이 어딘가에서 나타났는데, 저 왕이 그 패륜아가 아닐까?" 하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왕 앞에 나아가 그 말을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왕비를 찾아가 26년 전의 이야기를 소상하게 말해주도록 부탁했습니다. 왕비는 "이래저래 태어난 아이를 버렸는데, 그 아이는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만 분의 일이라도 만약 그 아이가 살아 있다면 당신 나이일 것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왕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증거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만 그 아이는 분명히 자신이었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이 두 눈을 가지고 적은 잘 물리치고, 백성은 잘 다스렸다. 하지만 어머니 아버지는 몰라보았다'고 자책한 나머지, 왕은 자신의 두 눈을 뽑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거지가 되어 속죄하면서 떠났고, 왕위는 맏아들에게 승계되었습니다.

그런데 둘째는 '맏이라는 이유만으로 왕이 된다는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똑똑하고 용감하지 않은데도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 왕이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죠. 그래서 둘째는 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둘째는 대관식을 치르기 전에 외적이 쳐들어오는 사태를 맞이하여, 나가서 싸우다가 죽고 맙니다.

이번에는 왕위가 외삼촌에게 돌아갔습니다. 외삼촌은 왕이 되었지만 너무나 겁이 났습니다. 자기 동생이 자기를 죽이고 왕이 될까봐 얼른 법을 만들었습니다. 즉 누구든지 왕을 죽이고 왕이 되려 한 자는 죽여서 가장 가혹한 벌로 다스리며, 죽어도 시체를 땅에 묻어 주지 않는다는 게 그것이었습니다.

오이디푸스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녀는 시녀들을 데리고 왕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대들었다가, 재판에 회부되어 죽었습니다. 그녀는 왕비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라서, 상심한 나머지 왕비도 뒤를 따라 죽었습니다. 이래서 줄초상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왕] 3부작의 줄거리입니다. '운명에 도전하는 자마다 반드시 죽여라. 하지만 운명에 도전하는 자는 반드시 이룬다'는 것이 그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20세기에 이르러 사르트르 같은 사람은 여기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 보니 바로 왕의 아들이었고, 어떤 사람은 거지의 아들이었다.' 즉 우리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것은 운명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것입니다. '우연'이라는 생각을 잘 반영한 작품이 싸르트르의 []이라는 소설입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던 싸르트르는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빨리 죽어주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아마도 그의 경험에서 우러났을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경험은 문학적인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20대 젊은 청년이 부처님을 한 번 만나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내가 부처님을 한 번 만나보고 죽으리라는 결심으로 부처를 찾아서 길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어머니에게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면 절대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기다리지 마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길을 떠나 유명한 절로 다니면서 유명한 스님은 다 찾아다니면서 부처님이 어디 계시는지 물어보면서 다니다가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20대의 청년이 집을 나와서 고생을 하니까 완전히 중늙은이가 넘어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못 먹고 병이 들어 한쪽에 쭈그리고 누워 있는데, 한참 있다가 햇빛이 가리면서 뭐가 덮어지는데 몸이 따뜻했습니다. 거지 중이 있다가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거지에게 덮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님, 나는 부처님을 찾아 20대에 나왔는데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모릅니다. 혹시 스님께서 아시면 저한테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죽기 전에 부처님을 한 번 뵙고 죽는 것이 소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님이 가만히 보니 기가 막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스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부처님은 당신 집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당신 집으로 가십시오. 지금 당장 일어나서 당신 집으로 가지 않으면 부처님이 당신을 기다리다 떠나 버릴지도 모릅니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 사람이 몸에 백 배 기운이 생겨서 수백리 밖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밤낮 쉬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가서 보니까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집을 나가서 20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그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밤낮으로 내다보는데 거지 하나가 절룩거리면서 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자기의 아들이었습니다. 맨발로 쫓아가서 봤더니 어머니는 그 아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아들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우는데 어머니는 아들이 살아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고마운 것이었습니다.

그때 이 아들이 깨달았습니다. 바로 우리 어머니가 부처님이었구나. 그 청년이 20년 동안 방황하지 않았으면 어머니가 부처님이라는 걸 알겠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부처님입니다. 이 세상에 성모마리아가 아닌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식을 위해서 팔도 잘라줄 수 있고 자기의 몸도 잘라줄 수 있는 어머니는 다 성모마리아고 부처님입니다. 이 사람이 이십 몇 년 동안 부처님을 찾아 헤맨 방황의 과정을 몸소 체험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가 부처님이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인류학의 태두인 마가렛 미드 같은 여자는 인디언 부족의 문화를 알기 위해서 인디언 추장과 8년을 동거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인디언의 풍속과 습성을 다 알고 책으로 기술을 해서 대학교수가 된 사람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은 그런 사람이 대학교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체험하지 않으면 다 엉터리입니다. 체험하지 않고 쓰는 것은 감동이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우리 할아버님이 저녁에 죽 한 그릇을 먹고 배가 고파서 찬물 한 대접을 떠오라고 하시면 제가 물심부름을 했습니다. 무릎을 끓고 대접을 드리고 할아버지께서 마시고 난 다음 가거라 해야 가지, 삐죽 돌아서는 것은 요새 애들이나 하는 짓이지 옛날에는 큰일이 납니다. 내가 큰일이 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어머니가 반쯤 죽는 것입니다. 무릎을 끓고 가만히 있으니까 할아버지가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옛날 어떤 훈장이 내게 글을 가르쳤는데, 서리가 내리는 가을 아침이었지. 서리 상자를 주고 시를 지으라고 하셨단다. 그러니까 부잣집 아들이 뭐라고 시를 지었는가 하면, '서리가 오면 눈이 내리니 둥지가 따뜻한 새는 알을 까서 새끼를 친다' 지었어. 그런데 가난한 과부의 외아들은 뭐라고 시를 지었는가 하면, '서리 오고 눈이 내리니 집이 없는 호랑이는 눈 덮인 산에서 할아버지께서는 두 번째 아이가 시를 잘 짓는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할아버지 당신이 과부의 외아들이니까 그러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가 기미 만세 때 만세를 부르다가 총 맞아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다섯 살, 할아버지의 누이동생이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살았습니다. 계속 가난한 생활을 하다가 내가 원고를 써서 돈을 모았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자손은 몇 대가 가난합니다. 증조 할아버지의 제사 때마다 그걸 자랑거리로 말씀을 하십니다. 부잣집 아이도 시를 잘 짓지 않았느냐고 여쭈었더니, "새가 봄에 새끼를 치지, 가을에는 새끼를 치지 않고 알도 놓지 않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봄에 알을 낳은 새끼를 쳐야만 벌레가 있고, 풀은 1년에 몇 번씩 씨를 맺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풀씨와 벌레를 잡아서 새끼를 먹이고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기 때문에 새끼가 자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을에는 풀씨도 땅에 떨어지고 벌레도 번데기가 되어서 나무 속에 숨어버리고 먹을 것이 없고 날씨가 점점 추워지기 때문에 어린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눈이 내리고 서리까지 덮어버리면 풀씨가 다 덮여서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는 억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흘러야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시이기 때문에 만들었다고 해서 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문학 잡지를 보면 억지로 만든 시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읽고 나서 뭉클하지 않은 시는 다 그런 시입니다. 모든 동물이든지 사람이든지 초년의 고생은 금을 주고 사서라도 해야 됩니다. 성공하려면 가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시는 몇 번씩 떨어진 사람들이 뒤에 가서 꼭 성공을 합니다. 그래서 삼수 사수하는 것도 저는 괜찮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끔씩 인류 역사상의 위인을 찾아보라는 과제를 내곤 합니다. 학생들에게 반드시 위인전 세 편을 읽고 요약을 해서 그 중에 공통점을 찾아서 내라고 일러줍니다. 리포트를 제출 받아 분석해 보면, 음악가 멘델스존이나 영국 수상 처칠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어려서 가난했던 이들입니다.

시라는 것은 체험에서 우러나야 합니다. 체험 이상의 것을 쓰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나 소설이라는 것은 아름답고 곱게 꾸미려 든다고 반드시 좋은 작품이 탄생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에 추하고 더러워도 진실을 토로하는 것이 문학입니다.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는 것이 과연 고려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나라를 세웠을까요. 역성 혁명을 일으키고 위화도회군을 하고 임금을 잡아죽이고 내쫓고 자기가 왕이 되었을까요. 나와 내 자손도 한 번 잘 살아 보자고 하는 마음이 없었을까요. 99%가 백성을 위했다고 하면 1%쯤은 그런 진실이 있었을 겁니다. 역사는 사실을 얘기하지만 문학은 진실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그게 감동을 주는 겁니다. 아름다운 거짓보다는 추한 진실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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