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양옆으로 가르며 차가 달린다. 플로리다 본토에서 섬과 섬 사이를 다리로 이어 만든 ‘바다 위 하이웨이(Overseas Highway)’는 미 대륙의 남쪽 끝 키웨스트까지 이어진다. 열대 나무가 우거진 정원 안에 연둣빛 창문을 활짝 연 2층 저택이 보인다. 붉은 벽돌 담장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집’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안내자는 작가 존 도스 페소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파리에 살던 헤밍웨이에게 “키웨스트에 오니 꿈속을 떠다니는 것 같다”는 그의 편지가 전해졌고,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헤밍웨이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결국 둘째 아내 폴린의 삼촌이 결혼 선물로 이 집을 사주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거실에 들어서니 벽에는 헤밍웨이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의 석판화가 걸려 있다. 푸엔테스는 20년 동안 헤밍웨이의 낚싯배 필라(Pilar)의 요리사이자 친구였으며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다. 헤밍웨이는 전쟁터에서는 종군기자로, 아프리카에서는 사냥꾼으로, 스페인에서는 투우 애호가로, 멕시코만에서는 낚시꾼으로 살았다. 술과 여자도 그의 삶에서 빠지지 않았다.
2층 침실로 올라갔다. 침대의 헤드보드는 스페인 수도원의 문을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침대 위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 관람객에게는 관심조차 없다. 친구 피카소가 선물했다는 고양이 조각도 눈에 띈다. 사방으로 이어진 베란다에서 3에이커에 이르는 정원을 내려다본다. 주말이면 이곳에서 결혼식도 열린다고 한다. 세 번 이혼하고 네 번 결혼한 헤밍웨이의 집에서 열리는 결혼식이라니 묘한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내 마음은 어느새 그의 서재로 향했다. 베란다와 연결된 별채 2층의 작은 방이 집필실이다. 예전에는 침실과 서재를 쇠로 만든 다리가 연결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셔도 아침이면 반드시 일어나 글을 쓰던 그에게 필요한 길이었다. 방 안 한가운데 낡은 타자기가 놓여 있다. 그는 이 타자기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오후의 죽음』 등을 썼다. 의자에 앉아 타자기를 두드리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헤밍웨이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자. 지금까지 써왔으니 다시 쓸 수 있다. 우선 내가 아는 진실한 문장 하나를 쓰자. 그러면 그다음은 쉬워진다.” ‘진실한 문장 하나.’ 그의 이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좋은 글은 거창한 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진실 하나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아래에는 키웨스트 최초의 가정용 수영장이라고 하는 커다란 수영장이 있다. 스페인 내전에서 돌아온 헤밍웨이는 아내 폴린이 보여준 막대한 공사비에 놀라며 “내 마지막 1센트까지 가져가라”고 했다. 그때 던져준 페니가 수영장 바닥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곳에서 그는 수많은 모험을 경험했고, 사랑하고 헤어졌으며, 무엇보다 끊임없이 썼다. 그리고 그 모든 삶의 흔적을 문학으로 바꾸었다. 결국 글쓰기란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진실한 문장 하나를 찾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