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아래에서 / 최순덕

잔치는 감나무 아래에서 열렸다. 파란 하늘에 박혔던 보석 하나가 땅에 철퍼덕 떨어졌다. 태양의 붉은 색과 따가운 열기를 끌고 와 물들인 홍시 하나가 미물들에게 제물로 던져졌다. 녹색이 잦아드는 잔디밭에 흩어진 살점들은 빛 고운 단내를 마구 풍겨댄다. 벌들이 순식간에 모여들고 개미도 줄지어 덤벼든다. 나비도 기웃거리고 온갖 벌레들이 하늘이 준 먹이 앞에서 춤을 춘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이 맛난 먹거리를 취하다니 죽어도 좋다는 기세로 덤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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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물들에게 빼앗긴 홍시 한 알마저 아까운 인간이 장대를 치든다. 목이 아프게 쳐다만 보던 잘 익은 홍시에 요령 없이 비틀어대던 장대가 닿는다. 휘청거리던 나뭇가지에서 얌전히 떨어져 주지 않는 홍시다. 시달리던 가지에서 홍시가 사정없이 바닥에 떨어져 터져버린다. 아깝다. 포기할 수 없는 미련이 발동한다. 미물들 차지가 되기 전에 살며시 주워 입으로 가져가는 인간은 그렇게 가을을 삼킨다. 달달한 홍시 맛에 끌려 커다란 감나무 두 그루가 호위무사처럼 버티고 있는 시골집을 매입하였는데 이십 년의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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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멀리 떨어진 산 중턱에 드문드문 서 있는 감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옛날 집터였음을 알려주는 역할에 충실하며 혼자 붉게 가을을 익히고 섰다. 저지대 좋은 땅에는 돈이 되는 농사를 짓고 집은 자꾸 산으로 밀려서 올라갔다고 했다. 산골살이의 고된 삶이 짐작된다. 집도 삭아서 허물어지고 없는 빈터에 감나무만 덩그러니 옛날을 추억하며 홀로 서서 폭죽을 터뜨린다. 불꽃처럼 흘러내린다. 자축의 축포인 양 주렁주렁 달고 있는 주황색 감이 꽃보다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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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마을의 배경에는 감나무가 빠지지 않는다. 주황색 보석 같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는 가을날의 시골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하는 단골 배경이다. 감나무가 없는 풍경은 시골의 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십 년 전 우리가 시골집을 매입할 때도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감나무는 위로만 자라 있었다. 긴 장대로 설쳐도 목도 아프고 팔도 아프기만 할 뿐, 언제나 절반도 수확하지 못하는 시골집 감나무다. 혼자 독차지할 수도 없고, 독차지해서도 안 되는 자연의 이치를 서서히 알아채기 시작했다. 내 집의 감나무일지라도 봄부터 가을까지 감은 자연이 키운 것이지 않은가. 햇빛과 공기, 비와 바람, 생각해 보니 정작 주인이 한 것이라고는 제대로 한 것이 없다. 투덜거리면서 떨어지는 감꽃과 어린 감과 낙엽을 치우는 일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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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는 기쁨과 괴로움, 양면의 얼굴로 존재한다. 시골집에서 누리는 여유와 기쁨에는 그보다 더 많은 관리의 고통과 유지 보수의 힘든 시간을 요구한다. 봄날 솟아나는 새싹의 기운에 기쁨은 잠시고 바로 풀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초저녁의 선들선들한 바람과 새까만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여름밤의 낭만은 각종 벌레와 싸우고 난 뒤의 전리품이다. 푸른 하늘 맑은 공기와 풀벌레 소리 자지러지는 가을날의 밤도 마찬가지다. 주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다는 세상의 이치가 여기서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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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들어가지 못하고 어쩌다 가보면 폭탄처럼 일시에 떨어진 감이 잔디밭에 똥처럼 굳어있어 일거리만 가득 안겨준다. 자주 드나들면서 가꾸고 방치하지 않아야 누릴 수 있는 시골집의 낭만인 게다. 사람이나 집이나 적당한 거리 유지와 관계 속에서 사랑을 나눠야 서로는 존재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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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도 익어서 단내가 나는 가을이 되면 사방 천지에는 사색의 끈이 나풀거린다. 스러지는 풀잎에도, 바람에 밀려가는 구름 한 조각에도 사유가 내려앉는다. 그래서 가을을 사색의 계절이라는가. 짱짱한 햇살이 익히는 것은 나무에 달린 감뿐만이 아니다. 한 뼘 생각을 키우고 사람도 익힌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한 생을 정리하고 베풀고 나누고 비우며 떠나는 소중한 생을 엿본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 듯 멈추어 서서 천천히 바라볼 때 비로소 폭넓은 인식의 주름살이 잡히기 시작한다. 감나무 잎을 예술로 물들이는 싸늘한 공기도 갉아 먹는 벌레 한 마리도 온통 사랑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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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의 계절이다. 비바람에도 떨어지지 않고 생을 붙잡고 열심히 자라온 초록 감이 붉게 익어서 탐스러운 홍시가 될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한여름 땀 흘리고 애쓴 결과로 여기저기서 수상 소식이 쏟아진다. 라깡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는데 타인이 인내한 쓰라린 고통의 시간은 안중에 없고 오직 결실만 욕망하는 미성숙의 인간이 아닌가. 비록 땅바닥에 철퍼덕 떨어져 살점을 드러내고 터져버릴지라도 잘 익은 홍시로 가을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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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으로 익어서 미물들에게 한바탕 잔치를 베풀고 다시 생의 뿌리로 스며드는 한 알의 감이 얼마나 멋진가. 감나무 아래에 서면 난데없이 창작 의욕이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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