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셈법 / 김정옥

요가 교실 회원들과 밥을 먹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씩 같은 공간에서 만난다. 위로 아래로 몸을 잡아 늘이고, 접었다 펴며, 들숨 날숨으로 호흡을 맞춘다. 접히고 늘렸던 몸이 다시 원위치로 금방 돌아가듯 수업이 끝나면 늘 제자리로 돌아가기 바쁘다. 서로의 몸 펴는 모습은 익숙해도 삶의 자락을 펴 놓기는 어설픈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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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함께한 동인들과 밥 한 그릇 나누기 위해 뭉쳤다. 그동안 힘들게 몸을 비틀고, 늘이고, 곧추세우고, 버렸다는 자축의 의미였다.

 

불맛 주꾸미의 매콤한 맛에 하얀 쌀밥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식사 후 녹색 식물에 둘러싸인 카페에 앉자, 그동안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어져 나왔다.

 

이날 경비는 참석한 사람끼리 1/N으로 나누어 내기로 했다. 내가 먹은 만큼을 나누어 내는 계산에는 군말이 있을 수 없으니, 세상에서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계산이 명확하면 마음도 편해진다고 믿었다.

 

회장이 내가 카드로 계산하고, 참석한 회원들에게 입금을 부탁한다. 계산기 위에서 손놀림이 잠시 멈칫했다. 식사 금액을 아홉 명으로 나누자, 금액이 딱 떨어지지 않았다. 22,444원씩 내면 4원이 모자라고 22,450원씩 걷으면 50원이 남았다. 4원쯤이야 빠져도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세상은 늘 몇 원쯤의 오차를 품고 굴러가지 않던가. 그냥 22,444원씩 보내달라고 했다.

 

"딩동" 하고 통장에 입금 알림이 속속 이어졌다. 그런데 정확히 그 금액을 보낸 회원보다, 우수리를 얹어 보낸 회원이 훨씬 더 많았다.

 

"혹시 금액을 잘못 보낸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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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에게 물었더니 모두 아니라고 했다. 같은 계산을 해 놓고도 몇백 원쯤은 자기가 더 내겠다는 선택이었다. 끝전을 깎아내는 대신 올리는 계산법을 쓴 것이다. 계산기에는 나오지 않는 항목을 스스로 추가한 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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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우수리에는 어떤 마음이 얹혔을까. 십 원, 백 원 단위까지 맞춰야 마음이 편하다고 여겼을까. 아니면 회장 노릇 하느라 여러 가지로 신경 썼다는 뜻으로 쓴 인심일까. 이런들 저런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정확한 계산이 아니라 조금 넉넉한 쪽을 택한 마음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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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 원과 몇백 원이 모여 몇천 원이 되었다. 카드값은 다음 달에 빠져나갈 텐데, 현금은 이미 들어와 있었고 웃전까지 붙었다. 돈이 늘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남아서 흐뭇했다. 살다 보면 가끔은 이렇게 뜻밖의 잔돈이 생겼다. 손해도 이익도 아닌, 관계가 남긴 여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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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끼리 '우수리를 얹자'라고 상의했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그들의 셈법은 서로 통한다. 아마도 그들은 돈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나누고 있던 것은 아닐까. 몇십 원, 몇백 원은 경제적 가치로 보면 붕어빵 하나도 못 사는 돈이다. 하지만 그 돈 위에 얹힌 그들 속마음은 무엇으로든 값을 매길 수 없기에 나는 그저 황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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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확한 셈을 좋아한다. 더도 덜도 말고, 우수리까지 깔끔해야 마음이 놓인다. 가족과의 계산도 예외는 아니다. 계산이 흐트러지면 관계도 흐트러질 것 같아서다. 이번 경우에도 나라면 1원 단위까지 정확히 맞춰 보냈을 것이다. 그들의 셈법으로 보면 나는 야박하고 인정머리 없는 차가운 사람이다. 정확함은 공정함일 수 있지만, 야멸참과 인색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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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사면 몇백 원의 마일리지가 쌓인다. 그 마일리지는 다음 책을 살 때 쓰라고 주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다. 문득 내가 받은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몇십 원, 몇백 원으로 쌓인 ‘정 마일리지’ 같은 것이니 이건 나도 누군가에게 정을 얹어야 할 순간에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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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는 결코 칼로 무 자르듯 나누어지지 않는다. 늘 조금 남고 약간 모자라고, 살짝 손해를 보며 균형을 맞춘다. 그러니 이번 셈에서 202,00 : 9 = 224만이 정답일 리 없다. 22,500도 23,000도 25,000도 모두 정답이다. 숫자의 세계에서는 틀린 계산이지만 삶에서는 모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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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똑같이 나누는 차가운 계산법이 아닌 넉넉한 정을 우선시한다. 이들 품에서 나도 삶의 단추를 느슨하게 풀어본다. 한결 마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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