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꽃, 그리움의 계절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 첫 구절과,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첫 구절이 아침저녁으로 떠오르는 계절이다.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보다는 지나간 것을 돌아보게 한다. 한낮의 햇살은 아직 여름의 온기를 품고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에는 벌써 떠남의 기색이 묻어난다. 계절은 말없이 우리에게 시간의 흐름을 일깨운다.

 

 플루메리아 꽃이 지고 있다.

 내가 사는 남부 캘리포니아에서는 흔한 꽃이다. ‘러브하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플루메리아(Plumeria)는 열대 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자라는 꽃이다. 하와이에서는 ‘알로하의 꽃’이라 불리며 사랑과 환영을 상징한다고 한다. 다섯 장의 꽃잎이 포개진 모양이며 흰색, 노란색, 분홍색, 붉은색 등 빛깔도 다양하다. 향기가 좋아 향수나 비누, 입욕제 등에 쓰이고, 하와이에서는 꽃목걸이인 레이(Lei)를 만들어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고 한다.

 꽃말도 곱다.

 ‘당신을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 ‘사랑의 인사.’, 축복받은 사람.’

 이렇게 좋은 뜻을 가진 꽃이 또 있을까.

 여름 내내 출퇴근길에 대문 옆에 서 있는 플루메리아를 바라보며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집 앞뒤 정원에는 대략 열 그루쯤 되는 플루메리아가 있다. 꽃의 색도 제각각이다.

 그중에서도 지난해와 올여름 내 눈길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새하얀 플루메리아였다. 새하얗다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우윳빛에 가깝다. 목련꽃 같은 색이다. 청순하면서도 우아하고, 어딘가 기품까지 있다.

 참으로 예쁜 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꽃을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늘 하나뿐이다. 아름답다. 그 이상은 없다. 아름답다는 감탄 뒤에 따라오는 이야기가 없다.

 플루메리아는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꽃이다. 지금은 기후가 많이 변했으니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자라던 시절의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다.

 내가 이 꽃을 처음 만난 것은 군대도 대학도 모두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온 뒤였다. 그러니 플루메리아와 나 사이에는 함께 보낸 시간이 없다. 어린 시절의 기억도 없고, 누군가의 얼굴도 없고, 어느 골목길의 풍경도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플루메리아를 좋아하면서도 어딘가 서먹하다. 아름답기는 한데 마음이 깊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쩌면 박제된 아름다움인지도 모르겠다. 눈으로는 아름답다고 감탄하지만 마음이 그 꽃과 함께 갈 곳이 없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복숭아나무는 다르다. 복숭아꽃이 몽우리를 맺고 피어나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가슴부터 먼저 흔들린다.

 고향 동구 밖 과수원에 봄이 오면 복숭아꽃이 한꺼번에 피었다. 나는 그 꽃밭을 뛰어다녔다. 큰집 과수원이었던 덕분에 어린 나는 그 꽃대궐을 마음껏 누빌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꿈 같은 시간이었다.

 고흐의 그림보다 아름다웠다고 말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아니다. 내게는 정말 그랬다. 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그 꽃 속에 어린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복숭아꽃은 꽃이기 전에 그리움이다.

 유년과 청소년 시절, 그 유정했던 성장의 시간과 함께했던 꽃들은 모두 그렇다.

 개나리꽃. 진달래꽃. 아카시아꽃. 살구꽃. 붓꽃. 맨드라미. 코스모스. 국화.

 이 꽃들을 떠올리면 나는 먼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움이 먼저 밀려온다. 꽃보다 사람이 먼저 떠오르고, 사람보다 시간이 먼저 떠오른다.

 내 어린 손가락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주던 윗집 경이 누나의 커다란 눈망울. 우리 집 장독대에서 채송화꽃을 따 소꿉장난을 하던 영희의 마늘쪽 같은 콧잔등. 고등학교 시절,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밤 아홉 시 마지막 버스를 타고 내려 이십여 분을 걸어 마을로 들어가던 길. 그 캄캄한 시골 길을 함께 걷던 미선이. 수줍고도 겸연쩍었던 하굣길.

 지금은 모두 지나간 일이다.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들은 내 안에서 늙지 않는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때의 얼굴은 그대로이고, 꽃은 여전히 피어 있고, 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 나는 그리움을 ‘영혼의 안식처’라고 생각한다.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애틋하고, 다시 만날 수 없기에 더 아름다운 곳.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는 아니지만 내 마음속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곳.

 그곳에서는 시간도 늙지 않는다. 사람도 늙지 않는다. 꽃도 지지 않는다.

 그리움이란 어쩌면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에 마음이 잠시 머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에게 플루메리아는 아름답지만 각별하지는 않다. 그러나 하와이 사람들에게는 아마 정반대일 것이다. 그들이 플루메리아를 바라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가족과 친구가 떠오르고, 고향의 풍경과 지나간 계절이 떠오를 것이다. 내가 복숭아꽃을 바라보며 느끼는 다정한 마음을 그들은 플루메리아에서 느낄 것이다.

 아름다움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기억과 함께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꽃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꽃과 내가 맺어온 관계가 그 꽃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플루메리아가 아무리 고와도 내게는 아직 낯선 꽃이다. 나와 공유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눈으로 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마음속에 이야기가 생겨야 비로소 감동이 된다. 이야기가 없는 아름다움은 아름답지만 외롭다.

 

 생각해보면 추억과 역사도 결국 기억에서 비롯된다. 개인에게 기억은 추억이 되고, 공동체에게 기억은 역사가 된다.

 흘러간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형태로 우리 안에 쌓인다. 마치 땅속에 지층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평온하고 행복했던 기억은 오랜 세월 퇴적된 수평의 지층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 언제나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어떤 기억은 지층처럼 휘어진다. 양쪽에서 힘을 받아 산처럼 솟거나 골짜기처럼 내려앉는다. 그런 기억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끊어져버린 것처럼 깊은 단층을 이루는 기억도 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평평한 기억만 있는 것이 아니다. 휘어진 기억도 있고, 부서진 기억도 있고, 깊이 갈라진 기억도 있다.

 나는 그것들을 각각 그리움과 상흔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과 자연 사이의 관계.

 사람과 시간 사이의 관계.

 우리는 관계 속에서 기뻐하고, 관계 속에서 상처받는다. 그래서 기억은 관계의 화석인지도 모른다. 한때 서로 맞닿았던 사람과 시간의 흔적이 굳어져 내 안에 남아 있는 것이다.

 기억이 없다면 감정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음식의 맛도 그렇다.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된장국의 맛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 맛이 특별한 것이다.

 어느 골목에서 맡았던 빵 냄새 하나가 평생 마음을 붙잡는 것도 그 냄새와 함께했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맛도, 향기도, 그리움도 어쩌면 기억에서 태어난다.

 그렇다면 플루메리아를 바라보며 내가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그 꽃과 함께한 기억이 없으니까. 그래서 아름답다는 감탄은 있지만, 그리움은 없다. 향기는 나지만 이야기는 없다. 꽃은 피었지만 내 기억 속에는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복숭아꽃. 채송화꽃. 봉숭아꽃. 아카시아꽃.

 그리고 경이 누나. 영희. 미선.

 이 이름들을 떠올리면 꽃과 사람이 구별되지 않는다. 꽃은 사람의 얼굴에 스며들고, 사람은 꽃의 색깔과 향기에 스며든다. 자연과 사람이 따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한데 섞여 살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꽃들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때의 내가 아름다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 시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안에 조용히 쌓여 있을 시간.

 가을이 깊어간다.

 플루메리아 꽃잎이 하나둘 떨어진다. 여름이 물러가고 있다. 나뭇잎이 색을 바꾸고, 바람이 차가워진다. 계절은 그렇게 또 하나의 기억을 남기고 지나갈 것이다.

 나는 떨어지는 플루메리아 꽃잎을 바라본다.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눈앞에 있는 꽃의 모양이 아니라, 그 꽃과 내가 맺은 시간의 깊이인지도 모르겠다.

 꽃은 지고 기억은 남는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떠난다. 그러나 한때 우리와 관계 맺었던 것들은 마음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지나간 시간을 돌아본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한다.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을 너무 오래 붙잡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잊어서도 안 될 것들은 오래 기억하게 하소서.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눈만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 속에서 사람과 시간과 사랑을 알아보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