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의 유택 / 이치운
집은 생명과 영혼의 공간이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집이 있듯 죽은 사람에게도 집이 있다. 그곳은 서럽고 서늘하고 적막하지만 서로를 걱정하는 정과 배려가 있다.
한 번도 죽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란 불가능하다.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하며 들어가 누울 관을 직접 짜는 사람들이나, 자신이 묻힐 자리를 미리 정해야 하는 담담함은 삶에 대한 애착을 얼마나 내려놔야 가능할까. 언제 올지 모르지만 죽음을 공포가 아닌 언젠가 통과해야 할 삶의 과정으로 생각해야 가능할까.
아버지는 생전에 당신의 유택을 마련하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명절에 내가 섬을 찾아가면 아버지는 불편한 몸을 동백나무 지팡이에 의지하고 섬 곳곳을 다녔다. 소리도는 대부분 절벽이고 바위 투성이어서 묘 터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유택을 선택하는 조건은 까다롭지 않았다. 땅속에 누워있어도 늙은 아내의 거동을 살필 수 있는 집 마당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갯벌 포구에 용골(龍骨)만 남아 있는 어선을 볼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섬에는 가장이 해야 할 일이 험하다. 남정네가 없는 집안은 안 사람이 그 일을 대신하지 않으면 가정을 꾸려나갈 수 없다. 측간에 오물을 정리해 절벽을 끼고 있는 벼랑 밭에 거름을 져내어 농사를 짓는 일. 추수한 보릿단이나 고구마 가마를 머리에 이고 벼랑길을 오르내리는 일. 쟁기 날이 흙을 곱게 먹지 못할 만큼 박토(薄土)인 자갈 보리밭을 갈아 눕히는 일. 이런 일들을 저승에 있는 나를 대신하는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호리병 포구에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갯벌은 밤새 입고 있던 해무 옷을 벗고 부드러운 잔물결과 햇살에 반사된 잔잔한 수면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해무는 밤사이 작은 배를 지키기 위해 보초 임무를 다하고 흩어지는 유령들처럼 갯벌 속으로 은밀히 사라져 간다. 갯벌 깊숙이 박혀 있는 폐선은 모진 해풍과 바닷물이 삭혀 버린 선체를 훌훌 벗어 버리고 용골과 뼈대만 남아 있다. 어선도 거친 바다를 평생 누볐고 가족의 생계를 지켜준 동반자다. 노수부는 이 어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을 찾은 것이다.
아버지는 자유롭지 못한 발을 절뚝이면서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 거친 땅을 다듬었다. 쓰러진 돌담을 다시 쌓고, 흙 속에 박혀 있는 돌을 파내고 땅가시나무와 칡넝쿨의 잔뿌리까지 걷어냈다. 시골사람은 이 식물들이 번식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안다. 자식들의 수고스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려고 유택이 들어설 터를 미리 고른 것이다. 밭 귀퉁이에 산 더덕 뿌리를 캐와 심고, 주황색 꽃이 피는 원추리 뿌리를 바위틈에서 캐어 오고, 흰 꽃이 피는 어린 동백나무를 터 모퉁이에 가지런히 심었다. 자식들과 손주들이 이곳에 왔을 때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을까. 아버지는 영전을 집안 정원처럼 다듬고 가꾸었다. 한 해가 지나면서 푸슬푸슬 뭉쳐지질 않던 흙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유택의 터를 다듬다 잠시 쉬면서 섬 곳곳에 눈길을 주었을 것이다. 절벽 바위틈에 둥지를 튼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려고 거친 파도 속으로 활강하는 물수리를 보았을까. 뱃길을 재촉하려고 당신을 깨웠던 새벽 해풍소리를 마음 깊숙이 담고 있었을까. 어부로 사셨던 아버지는 칠십 평생을 하루하루의 일과를 더듬어 유택의 나무와 돌로 구현하려 했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는 소장 절제 수술을 받은 후 2주가 지나자 패혈증 증세로 대장이 괴사 되었다. 회생할 가망이 없다 했다. 가족이 동의하면 산소 호흡기를 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루 병원비가 수십만 원씩 들어가는 상황에, 집안 어른들은 산사람은 살아야 하니 의사의 제안을 고려해보라고 했지만 자식들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당신이 살아갈 숨을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바다로 돌아갈 숨 역시 당신이 직접 거두는 엄중한 권리를 지켜드리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다. 마지막 숨은 누구도 대신 거두어 갈 수 없다. 평생 숨을 붙들어온 당신만이 가능하다. 아버지는 그렇게 숨을 거두어 가셨다.
아버지는 어부의 삶을 평생 업으로 삼았다. 늘 목숨을 바다에 맡기고 살았으니 죽음을 대단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노수부는 무덤으로 들어가는 일이 죽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모태(母胎)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파도는 노수부의 이승에서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고 점잖게 하얀 상복을 입었다. 아버지를 유택에 모시는 날 꽃상여를 맨 젊은 뱃사람들과 섬은 노수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그들은 평소 아버지가 자주 찾던 호리병 포구를 돌면서 망자가 누워 있는 관을 메고 배가 파도를 타고 넘는 듯 둥실둥실 춤을 추었다. 먼바다에서 날아온 갈매기들이 합창하듯 노래하고, 해풍이 불어와 상여에 매달려 있는 종이 봉황을 더 높이 날게 했다. 갯벌도 감추었던 비린내를 한껏 품어냈다. 뱃사람들과 갈매기와 해풍과 갯벌은 꽃상여가 유택으로 가는 길이 엄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까.
아들 역시 슬퍼하지 않았다. 유택으로 정한 당신의 속마음을 알기에. 집 마당이 훤히 눈에 들어오고, 함께 바다를 누볐던 작은 어선을 볼 수 있어 좋다고 미소 짓던 모습을 보았기에. 아버지가 유택이 들어설 터를 신중히 물색했던 것처럼 그 시기가 오면 나는 어떤 터를 선택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