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에 성민희 선생의 "글이 가면(假面)이 될 때"를 읽고 퇴고한 글입니다. 재작년 봄인가 써놓았다가 처박아 놓아둔 글인데 “작가 정신”에 대한 고뇌가 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맹렬히 퇴고 하고 퇴고 하였습니다. 저에게 자극을 주고 분발하도록 동기부여를 주신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며 졸필을 올립니다.

 

 

  

 

                                      서울, LA, 호접지몽(胡蝶之夢)

 

 

 

 드디어 봄이 왔다. 복숭아꽃이 피고 하얀 나비가 꽃 사이를 춤추듯 날아다닌다.

 지난해 겨울은 참으로 혹독했다. 영영 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내 조국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내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LA는 산불로 전쟁터보다 더 참혹한 폐허가 되었다. 내게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두 곳 모두 내 삶의 근간을 이루는 곳이기에 충격은 컸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느 한쪽의 아픔은 다른 한쪽의 나를 흔들어 놓았다.

 

 호접지몽은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莊子)의 저서 『장자』 「제물론」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나비가 된 꿈이라는 뜻이다.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은 장자였다. 그렇다면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장자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이 이야기에는 나와 사물, 꿈과 현실의 경계가 과연 분명한 것이냐는 물음이 담겨 있다. 장자는 사물의 옳고 그름, 선악과 미추, 빈부와 화복을 나누어 판단하는 일에서 벗어나 만물이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일 것이다. 나와 세계를 가르는 경계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두통이 오면 습관처럼 나비가 되는 꿈을 꾼다. 꿈속의 나는 가벼운 날개를 달고 이 꽃 저 꽃을 너울너울 날아다닌다. 나름대로 평온을 되찾는 나만의 방식이다. 내게 나비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LA가 겪은 참담한 현실 앞에서 나는 겨우내 마음속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만 되뇌었다. 지금은 두 곳 모두 피해를 복구하는 데 힘을 쏟고 있지만, 앞날은 여전히 험난하다. 걱정과 근심이 깊어질수록 두통도 잦아졌다. 나는 또다시 나비가 되는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견딘다. 지금 내게 호접몽은 마음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심리 치료제다.

 

 복숭아꽃을 볼 때마다 고국이 생각난다. 고향 마을 동구 밖에는 큰집 과수원이 있었다. 봄이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그 꽃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들떴다.

 꽃 가꾸기에 일가견이 있는 아내는 복숭아 묘목을 사다 심으라고 권했지만, 그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직접 복숭아씨 세 개를 현관 앞, 눈에 잘 띄는 곳에 심었다. 세 개 모두 싹을 틔워 잘 자랐으나, 두 그루는 어느 해 태풍에 꺾여 죽고 한 그루만 살아남았다. 그 나무는 해마다 조금씩 자라더니 어느덧 내 키만큼 커졌다.

 올해도 어김없이 꽃이 피려는 듯 팥알만 한 꽃눈이 나뭇가지 끝에 맺혔다. 엊그제 일 같은데, 어느새 꽃이 활짝 피었다. 신비롭다. 복숭아는 지난해에야 처음 열매를 맺었다. 직접 따서 먹어 보니 달고 맛있었다. 씨앗을 심은 뒤 열매를 맛보기까지, 나무는 말없이 제 시간을 살아온 것이다.

 작은 씨앗, 그토록 작고 단단한 씨앗이 마침내 껍질을 깨고 나와 나무가 되었다. 땅속에서 주변의 조건과 섬세하게 교감한 결과일 것이다. 비와 바람과 햇빛이 없었다면 씨앗은 자랄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씨앗은 홀로 자라는 듯 보이지만, 실은 세계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자란다.

 씨앗은 우주를 호흡하는 존재다. 겉은 바늘구멍 하나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단단하지만, 그 안에는 온 우주의 기척을 느낄 만큼 예민한 촉수가 숨어 있다. 강함과 부드러움이라는 서로 다른 성질을 한 몸에 품은 존재다.

씨앗은 그 작은 몸속에 안드로메다의 수많은 별빛과 새소리, 대나무 소리, 달그림자, 기차 소리, 아기의 살 냄새, 오이 향기,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까지 모두 담아 두었을 것이다. 마치 진공 포장지에 온갖 것을 압축해 넣듯, 거대한 세계를 작디작은 몸 안에 접어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단단한 껍질로 감싸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 씨앗은 제 몸을 썩혀 그 안에 품었던 것들을 아낌없이 세상에 내놓는다.

봄날 내가 바라본 복숭아꽃은 아득히 먼 행성에 사는 소녀의 눈빛이고, 내가 맛본 복숭아는 나비의 춤사위인지도 모른다. 내가 복숭아를 먹은 것인지, 복숭아가 나를 먹은 것인지, 모를 일이다.

 

 공자 사상의 핵심인 인(仁)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제 일처럼 느끼고 함께 아파할 줄 아는 마음, 타인의 처지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마음이 어진 사람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나도 감성적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민감하고 까탈스러운 성격이 글쓰기에는 조금 도움이 되지만, 인격적으로는 형편없는 칠푼이다. 어려서부터 약골로 살아온 탓인지 내 몸의 아픔에는 예민하면서도 남의 아픔에는 무심하고 둔감했다. 아니, 어쩌면 나는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말 뒤에 숨어 내 감정만 귀하게 여겨 온 이기적인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을 위해 평생 문학을 해 왔던가?

 작가란 씨앗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씨앗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제 안에 품은 세계를 끝까지 지키다가 때가 되면 껍질을 깨고, 마침내 자신마저 허물어 그 세계를 바깥으로 내어놓는다. 작가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자기 안에 쌓아 둔 감정과 기억을 자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의 아픔과 기쁨을 받아들여 다른 이의 마음에 건네야 하지 않을까.

 내가 훌륭한 작가가 되지 못한 까닭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씨앗처럼 세상을 품는 법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내 아픔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데는 익숙했지만, 그만큼 타인의 아픔을 깊이 느끼지는 못했다. 문학을 오래 했다고 해서 저절로 어진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씨앗의 품성을 배워야겠다. 감히 씨앗의 기품을 따라갈 수야 없겠지만, 세상을 진실로 느낄 수 있도록 마음과 귀와 눈을 활짝 열어 두어야겠다. 내 안의 고통에만 머물지 않고, 타자의 아픔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어쩌면 문학이란, 내가 나비가 되어 잠시 고통을 잊는 일에서 시작해, 다시 한 알의 씨앗처럼 세상의 고통을 품는 일로 나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