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 최지안

고라니의 발목은 얇고 길었다. 빳빳한 털이 성냥개비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들개들이 내장만 파먹고 남겨진 고라니는 네 개의 발목만 온전하고 가지런했다. 불과 한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자유로웠을 발목. 방향을 모르고 쫓기다 포식자의 이빨에 물리는 순간 운명을 감지했을 것이다. 더는 뛰지 못하는 발목이, 기다랗고 가녀린 발목이 슬퍼졌다. 자꾸만 망막에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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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낮은 부위. 무게를 지탱하며 몸의 수발을 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발목. 볼록 솟은 복숭아뼈 주변 오목하게 들어가며 동그란 뒤꿈치와 이어진다. 몸의 균형도 잡고 다리의 선을 잡아주는 곳은 가늘어 측은한 마음이 든다. 새의 모가지 같기도 한 발의 목. 발의 목이니 숨을 끊어놓을 정도로 중요한 곳이란 말일까. 약점이라는 관용어로 쓰일 만큼 발목은 발과 다리를 이어주는 중요한 몸의 길목이다. 어디 몸 뿐이기만 하겠는가. 잘 나가던 유명 정치인도 여성 문제로 발목이 잡혀 정치생명이 끝났으며 마약으로 발목이 잡혀 연기 인생이 끝난 배우도 있으니 발목을 잡히는 일은 치명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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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발목을 접질렸다. 발등이 푸르게 부풀자 엄마는 동네 침쟁이한테 데려갔다. 침쟁이는 부은 발등을 보더니 손때로 반질거리는 상자에서 큰 바늘을 하나 꺼냈다. 그건 침이 아니라 그냥 바늘귀가 있는 바늘이었다. 침쟁이는 그것으로 부은 발등을 찔렀다. 기겁을 하며 발목을 빼고 뛰쳐나왔다. 절룩이며 뛰었다. 나를 부르는 소리가 길게 등 뒤를 따라왔다. 침쟁이는 돌팔이였다. 이후로는 발이 삐어도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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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힐 발목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침쟁이 집에서 달아난 이후 나는 여러 개의 발목을 가지고 살았다. 발목은 수시로 잡혔다. 내 발목을 잡았던 것들처럼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발목을 잡히며 산다. 어떤 이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좋은 대학도 가지 못하고 어떤 이는 장애가 발목을 잡아 불편하게 살기도 한다. 그것들은 몸에서 발로 가는 길목 어디쯤 스며들어 콤플렉스를 만들고 저울질을 한다. 잡혔던 발목 하나를 떼어내면 또 다른 손이 발목을 잡는다. 부실한 발목일수록 잘 잡히고 잡힐 발목은 계속 생겨나고 떨어지고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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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발목을 잡히기도 하면서 더듬더듬 길을 간다. 때론 절룩이며 갈 때도 있다.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길과 오르막은 희망으로 견디나 너무 높은 턱은 넘지 못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학교나 직장처럼 진입 장벽은 늘 높기만 하다. 열심히 뛰다가 때로는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기도 한다. 그러면 어디쯤에서 살 구멍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 길지 않다. 눈먼 행운은 아주 가끔 적은 양으로 잠깐 비치다 말고 다시 발목은 감당할 만큼의 무게를 지고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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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이 얇아서였을까. 세상 사는 것이 녹록치 않았다. 신은 어쩌면 내 발목을 얇게 만들어 놓고 몇 번 넘어지는지 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길목마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남들에게는 가랑비여도 내게는 폭우로 쏟아졌다. 물론 우산 같은 것은 없었다. 신이, 혹은 운명이 우산 같은 것을 준비해 놓고 내 발을 걸지는 않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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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다 발목이 잡힌 고라니는 새끼였다. 아직 더 뛰어다녀도 좋았을 발목이었다. 죽은 고라니는 군청 직원이 수거했다. 들개들을 포획해달라고 민원도 함께 넣었다. 남해에 살면 꿩도 보고 이렇게 고라니의 발목도 보게 된다. 아니 보았으면 좋았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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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에 맨발. 내 발목을 쳐다본다. 비록 얇은 발목일지라도 여기까지 왔으니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발목 간수를 잘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발목에게 부탁도 한다. 고라니 발목처럼 처량하게 끝낼 순 없다고. 좀 더 버텨달라고, 하던 것 마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살면서 진 빚은 처분하고 가야 하지 않겠냐고. 그만큼 헛디뎠으니 이제 더는 발목 잡히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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