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 / 김성진
버스 정면에 국화 다발이 훈장처럼 달려 있다. 직원이 리본의 매듭을 다시 조여 묶는다. 손동작에는 묘한 조심성이 배어 있다. 매듭을 당기던 순간 리본 끝이 그의 손목에 스치자, 그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구부리며 말한다. “죄송합니다.” 아무도 그에게 화를 낼 이유가 없는데, 그는 두 번이나 고개를 숙인다. 어쩌면 그 짧은 사과가 오늘 하루 동안 가장 많이 반복될 말일지 모른다.
나무로 덧입혀진 몸, 작은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갈아입은 옷은 오동나무 옷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벌거숭이로 오지만, 떠날 때는 나무 옷을 입고 돌아간다.
버스 짐칸에 관을 밀어 넣는다. 관을 실을 때 누군가 발이 걸렸는지 잠시 기우뚱거린다. 그 순간, 숙모님이 “조심하세요”라고 말한다. 관을 든 사람과 관 안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한 말이다.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사람에게 여전히 조심을 요구한다. 그 말에는 습관처럼 몸에 밴 보호 본능이 섞여 있다.
무릎을 굽히지 못하는 망자는 짐칸 바닥에 누운 채 이동한다. 살아 있을 때는 수없이 자세를 바꾸던 사람이, 죽음 앞에서는 단 하나의 자세로만 옮겨진다. 육신의 자세 중 가장 편안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움직이지 않는 몸의 자세가 버스의 이동을 지배한다. 그 아이러니한 역설 앞에서 우리는 말이 없어진다.
장례에 따라온 사람들은 버스 안에 빽빽이 앉아 있다. 내 앞자리에는 망자의 딸인 사촌 여동생이 앉아 있다. 그녀는 휴대전화 메모장을 켜고 무언가를 적다가 지운다. 아마 부고 답장을 쓰다 말았을 것이다. 몇 번이나 글을 적다가 멈추더니 결국 화면을 끈다. 손에 쥔 핸드폰이 쓸모없는 물건처럼 무겁게 내려앉는다. 오늘은 어떤 문장도 충분하지 않은 날이다.
망자가 브레이크를 자주 밟는 것일까. 버스는 유난히 느리다. 뒤따르는 차들이 많지만, 아무도 경적을 울리지는 않는다. 속도가 늦다고 아무도 창밖을 향해 욕하지 않는다. 장례행렬만큼은 모두가 속도에 대해 관대하다. 그제야 깨닫는다. 이 버스의 속도를 정하는 것은 운전석이 아니라 짐칸에 있는 작은아버지라는 사실을. 누워 있는 망자가 페달을 누른다.
도심을 벗어날수록 도로변 간판들은 세월의 흔적을 알리듯 색을 잃은 채 허공에 매달려 있다. 장례식장을 출발한 버스는 마지막 고개를 오른다. 고갯마루에 오르자, 담벼락이 긴 빈집 하나가 보인다. 작은아버지 생전 단골이던 보신탕집이 있던 자리다. 담장에는 오래전 그려진 분꽃 벽화가 비에 씻긴 흔적처럼 빛이 바래 있다. 담장을 타고 오르던 마삭줄 꽃 진 자리에 분꽃 그림이 묘하게 잔상처럼 남아 있다. 계절은 이미 지났는데, 꽃은 여전히 지지 않고 벽에 붙어 있다.
버스는 대로를 벗어나 좁은 산길로 들어선다. 이 길은 저승으로 가기 위해 육체를 털어내는 화장장 입구다.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다른 일방통행로다. 인생의 오는 길과 가는 길이 다르듯 일부러 출입구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아마도 누군가가 이미 방향을 염두에 두고 길을 그려놓은 것 같다.
일방통행로에 접어들자, 산 그림자가 길 위로 길게 드리워진다. 바퀴가 굴러갈 때마다 그림자는 접히고 찢기며 다시 이어진다. 우리 생은 바퀴에 짓밟히는 저 산 그림자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화장장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자 버스 맨 뒷자리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난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울음조차 서로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하다. 슬픔에도 통행 규칙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화장장에 도착하자 문이 열리고 바람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온다. 관을 들어 올리는 순간 내 손바닥에 관 옆면의 미세한 나뭇결이 느껴진다. 생각보다 따뜻하다. 짐칸의 답답함에 데워진 나무의 온기일 뿐인데, 나는 그 온기를 오래 쥐고 싶어진다. 무게는 같지만, 움직임이 멈추었을 때가 더 무겁다. 고인의 마지막 무게에 이별이 함께 실려 있기 때문이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길을 다시 내려온다. 방향이 바뀌어도 길은 여전히 일방통행이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남은 사람만 되돌아간다. 인생길은 분명 왕복표가 없는 길이다.
버스 창밖으로 다시 보신탕집 벽화가 스쳐 지나간다. 분꽃은 여전히 피어 있다. 우리는 그것이 살아 있는 꽃이 아니라, 떠난 계절의 기억이라는 것을 안다. 꽃은 지고도 그림으로 남고, 사람은 떠나도 흔적으로 남는다.
집으로 돌아온 밤, 신발을 벗다가 흙먼지가 묻은 검은 구두 앞코를 본다. 화장장 마당에서 밟았던 흙이다. 일부러 닦지 않고 그대로 둔다. 오늘 하루의 방향을 잊지 않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속도를 조절한다. 너무 빨리 가지 않기 위해, 너무 가볍게 살지 않기 위해. 언젠가 관 속에 누워 짐칸에 실릴 날을 생각하며, 지금의 발걸음에 무게를 싣는다.
삶은 이동이 아니라 귀가다.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살아가는 길,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방향을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