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두부 / 박청자

 시조모님의 제사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놋그릇을 닦고 있는데 친정아버지가 오셨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나 기침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등 뒤에 계셨다. 점심때가 설핏 지난 시각이었다. 토담 아래 가뭄을 탄 접시꽃들이 한낮의 열기로 조그마해진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황망히, 흩어진 그릇들을 포개려 했을까. 그런다고 그릇 수가 더 적어 보일 리도 없을 텐데.

아버지는 반주도 사양하고 점심도 얼마 뜨지 않은 채 총총히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분명 시장했을 터이고 어쩌면 하룻밤쯤 주무시려 했는지도 모른다.

친정 피붙이에게는 누구나 '사는 듯이 사는 꼴'을 보이고 싶다. 사는 듯이 사는 꼴, 그 속에는 일목 요연히 꿰어져 돌아가는 지치지 않는 삶의 질서, 활력이 있다. 일상을 살다 보면 그들이 보아주었으면 싶은, 보이고 싶은 순간들이 더러는 찾아온다. 나의 경우, 다리를 뻗고 앉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 처음 핀 채송화에 매달린 이슬의 반짝임을 고와라 들여다보는 여유의 순간들을 그들이 와 보아주었으면 싶은 때다.

촛대가 낀 유기그릇, 그리고 제삿날이 쭉 적힌 한지가 있는 자리에 시어머니는 나를 앉히셨다. '서 적'은 그때 처음 듣는 단어였다. "냉수를 올리더라도 '서 적'은 말아야 한다." 경주 지방의 방언인 그 말은 거역, 싫어함의 뜻이라지만 '지겨움'이란 의미가 더 클 것 같았다. 지겨워 말아라.

제사는 분명 고단한 작업이다. 누구는 재미라고 하지만 남편의 형제가 많은 나의 경우, 죽은 자를 핑계한 산 자의 잔치나 다름없다. 제사 음식을 뒤로하고 생선회 등 술안주 감은 물론, 큰 찜통 가득히 곰국이나 추어탕을 끓인다. 미리 와 늦게 가기 때문이다. 어쩌다 몇 년 만에 따라온 동서가 팔을 걷어붙이려 하나, 선 부엌에 거추장스럽기는 마찬가지니 손님의 위치를 벗기는 어렵다. 제기를 닦아 넣고, 썰물처럼 떠난 그들이 버려놓은 빨래까지 4,5일의 노역을 치르고 나면, 손목의 자갈 풍은 도지고 체력은 바닥이 난다.

어쩌다 아군인가 싶어 남편에게 조심스레 하소연해 보면, "보람이란 게 있잖아, 종가에 가 봐, 그래도 오래 사는 건 종부지." 불퉁스런 핀잔만 날아온다. 섣달그믐날, 오이가 든 바구니를 들고 목욕탕에 가는 여자를 유심히 보게 된다. 지차(아랫사람)라 해도 부럽고, 차례상 준비를 다 해 놓은 뒤라면 그 민첩함이 부러워서다. 목욕하고 머리하여 차 타고 가는 입장이 되어 보았으면 하다가, 수월하게 넘길 길이 없나 궁리도 해본다. 자정에 지내는 제사를 초저녁으로, 시 증조부모님 제사를 한 번에, 제수도 분담하자 이르고 싶다. 그러나 마음뿐, 내 편하고자 하는 뜻의 그런 말은 차마 비칠 수가 없다. 다리 역할 하는 이가 있어 말을 꺼내주었으면 싶으나 지금 이대로가 좋은 듯 아무도 아랑곳 않는다. 주문 제수상을 두어 번 시켜보나 그 실속 없음에 놀라고는 더 이상 이용할 생각이 없어진다. 나는 어느새 '서 적'하는 지경에 이른다.

육신의 피로가 몰고 온 권태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신적 문화의 가치를 지옥으로 만드는 과정을 본다. 돌파구를 찾는다. 갓 배운 요리를 실습해 보는 것은 즐거움의 하나다. 제사가 신명이 나서야 될까마는, 일품요리를 만들어 진설하기도 한다.

솔직히 일이 겁나다 보니 한때는 요상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송수권의 '얼간재비'란 시를 읽고 나서다. 혈혈단신인 머슴 김 서방은 아버지의 제삿날이 오면 주인을 찾는다. '顯考處士府君神位' 지방을 써 달라 해서는 앞섶에 단다. 그 길로 산소에 가 벌초를 한 후 장터를 누빈다. 떡 전, 어물전, 과일 전, 술집, 식육점, 청포묵 판도 돈다. 전마다 가선 앞섶을 제치고 '아부지요 마이 드소'한다. 다시 산소에 이르러 '아부지요 잘 잡수시니더.' 지방을 불사르고 하직 인사를 올린다. 이 이야기는 짓궂은 안동 선비들에 의해 와전되기도 한다. 얼간재비 차로 알고 실큰 드시게 하고 보니 똥차였겠다. 놀란 나머지 저고리를 벗어 거꾸로 흔들며 '이건 똥차네요. 얼른 토해뿌시소.'하더라나.

김 서방처럼 조상신을 모시고 외식을 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제칙치기엄祭則致其嚴이라고 제사가 엄숙해야 함을 내 왜 모르겠나마는 기제사에 예상외로 제관이 참석하는 통에 복잡할 때면 간절해지는 생각이다. 후손이 에스코트하여 모시고 간 음식집, 조용하고 정갈한 분위기에 음식 냄새 또한 향기롭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후손이 올린 술잔이 쌓이면 정겹고 흐뭇한 공기는 향불을 따라 감돈다. 고별의 장소라면 주위가 맑아 별빛이 한층 영롱히 비치는 곳이라야 하겠다. 무한 속도로 빨려 드는 혼령의 이륙을 감지하게 될지도 모른다.

제사를 모셔 갈 때가 되었다 싶은지 몇 해 전부터 자식들이 말을 비친다. 나도 '서 적'이란 말을 넣은 당부의 말을 준비해 뒀다. 그러나 막상 때에 이르면 보내드려지지가 않는다. 그러면서 여러 해가 지났다. 지청구로 여기면서도 움켜잡으려는 이 불가사의의 정체, 모순이랄 수밖에 없는 이 경우는 때로 다른 모순을 생각나게 한다. 무자식 상팔자니 애물단지니 하면서도 자식 낳는 일이며, 못 줘서 안달에 뺏길세라 겁내는 우리의 삶 말이다.

착각하고 있는지는 모르되, 아이가 어머니의 치마폭에 매달리듯 혼령들이 조금만 더 있게 해 달라 조르는 것 같아 생각될 때가 있다. 나의 차가움을 아랑곳 않고, 그 신통한 신기로 나를 꽁꽁 묶어놓은 듯 요지부동을 느끼기도 한다. 아랫대의 썰렁한 분위기를 예감하고 잔칫집 같은 이곳이 좋아 계속 머물려고 하는 듯도 보인다.

순간, 산 자나 죽은 자나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내가 몸담은 이승인들 무엇 하나 독불 난 게 있는가 말이다. 몸을 두고 숨 쉬는 것만 다를 뿐 꿈처럼 아득한 게 선명히 잡히는 거라곤 없다. 여기에 조상신들이 들러 한 덩어리가 되어 종종 축제를 벌인 거다. 이제 시간이 다하여 휘장 뒤로 뿔뿔이 흩어질 때가 되었다. 갈 때는 아무리 말려도 기다려 주는 법 없이, 굴뚝이 불을 당기듯 홀연히 사라질 것이다. 그러고 나면, 고단한 삶이라 하여 주어진 몫에 충실하지 못한 날들이 스산한 허망감으로 몰려와, 심신은 지방을 사르고 남은 재처럼 잦아지리라.

달력에 쳐 놓은 붉은 동그라미가 눈에 들어온다. 닷새 후에 있는 시 조모님 제삿날이다. 두부 만드는 솜씨가 기찬 분이라 한다. 나는 이름도 거창한 '웅장두부'란 요리나 올려볼 테지만 아니, 그것 또한 내 '서 적'의 소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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