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소나기 / 김애자

7월에는 초복과 대서와 중복이 들어 있어 더위가 절정에 이른다, 제 철을 만난 식물들은 긴 해를 붙잡고 저마다 광합성으로 성장 세포를 키운다. 베롱나무 곁가지도 어느새 목질이 단단해지고, 어미 새의 보살핌을 받으며 나는 연습을 하던 어린 새들도 날개죽지에 힘이 생겨 비상을 꿈꾼다. 눈동자가 알밤처럼 고운 고라니 새끼조차도 더 이상 어미 곁을 머물지 않는다. 다만 길고양이의 새끼들만 한낮이면 아파트 뒷담 으슥한 그늘에 모여 까무룩 졸고 있는 어미 곁에서 서로 엉기고 뒹굴며 장난질로 고즈넉한 풍경을 이룬다.

7월은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로 대지를 달군다. 지열을 견디지 못해 풀잎이 축축 늘어지고 매미의 울음도 탈진해질 때, 거짓말처럼 하늘 저편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온다. 비를 몰고 오는 기류의 속도는 빠르게 번진다. 하늘이 온통 검은 구름으로 뒤덮이면서 번개가 번쩍 섬광을 긋는다. 뒤이어 천둥이 성난 짐승처럼 우르릉 쾅쾅 포효할 양이면 굵은 빗방울이 대지를 난타한다. 점점 거세어지는 빗줄기가 뽀얗게 시야를 가린다. 소나기의 장쾌함이 전신을 휘감는다.

초목들 또한 내리꽂히는 빗줄기에 태질을 당하면서 빗물을 탐한다. 여름철 소나기는 식물들에게 질소를 공급받을 절호의 기회이다. 흙물을 흠씬 뒤집어쓰고서도 넌출거리며 갈증을 풀고, 질소를 전신으로 흡수해 뿌리에 간직한다.

오늘 쏟아진 소나기는 3악장을 고사학고 후렴조차 따르지 않는다.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피아노 협주곡 마지막 악장에서 지휘봉을 높이 들며 선을 긋고 멈추듯, 소나기도 10여 분 동안 강타 하던 비의 선율을 멈추었다.

번개와 천둥과 빗소리가 멈춘 갑작스러운 정적이 생소하다. 그러나 대지는 10여 분 동안 퍼붓고 거친 소나기로 하여 생동감이 넘친다.

소나기가 퍼붓고 난 뒤 구름이 밀려가는 사이로 빛이 부챗살처럼 퍼지는 가운데 무지개가 뜬다. 미처 분산되지 못한 빗방울이 햇살을 만나 굴절을 일으키며 반사되는 일곱 빛 무지개는 허공에 걸린 홍예문이다. 소나기에 갇혀 학교 복도에서 웅성거리던 학생들과, 비를 피해 상가에 들어가 잠시 몸을 피했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저마다 스마트 폰을 꺼내 허공에 걸린 빛의 홍예문을 카메라에 담으며 환하게 웃는다. 어런 날이면 나는 기어이 차를 몰고 들녁으로 나간다. 물냄새와 흙냄새가 그리워 송신증이 일어서다.

내가 사는 신도시에서 차로 15분만 달리면 강촌에 닿는다. 강변 쪽으로 사래가 긴 밭에는 수십 가지 농작물이 자란다. 강변의 토질은 비단처럼 부드럽고 기름지다. 기름진 땅에는 가을 옥수수와 대파와 콩과 김장용 배추와 단무지용으로 심어 놓은 무 싹이 나붓나붓 자라고 있다.

나는 매번 사래 긴 밭 농작물을 한 번 훑어본 다음, 다시 차를 몰고 강변 반대쪽으로 5분 정도 달려간 다음 차를 세운다. 경지정리가 잘 된 논 수만 평이 한눈에 들어온다. 1980년 대에 충주댐이 건설된 후 농업용수로 쓸 수 있도록 수로를 별도로 만들어 가뭄 걱정없이 해마다 풍작을 이루는 들녘이다. 게다가 지금은 7월이다. 벼 포기가 한껏 불어나 논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쭉쭉 뻗어간 초록빛 잎사귀마다 윤기가 흐르고 논바닥에선 습한 기운과 함께 비릿한 논물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논배미에 서서 길차게 펼쳐진 들녘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농사가 아니어도 흐뭇하다. 나는 이 흐뭇함을 좋아서 7월 소나기 끝이면 들녘으로 차를 몰고 나오곤 한다

이제 머지 않아 들녘을 가득 채운 논에서 벼 포기마다 배동이 설 것이다. 8월 18일은 쌀의 날이다. 그쯤엔 벼 포기에서 소담하게 올라온 이삭마다 자디잔 벼꽃 암수가 피어 바람의 빗질을 기다릴 게다. 바람은 벼들의 자화수정을 돕는 은총의 손길이다. 용케 농축산부에서 쌀의 날을 벼꽃이 필 땔 정해 놓고 쌀밥 먹기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편이다. 젊은 세대들은 배고픔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쌀이 귀한 줄 모른다. 쌀이 생명이고 우주의 기운인 줄을 모른다. 그러나 미래학자들은 예언햇다. 오래지 않아 인류는 지구의 재앙으로 양식이 모자라 굶주림에 시달릴 것이라고.

다시 들녘으로 시선을 돌린다. 초록으로 길차게 평정된 들녘을 볼 적마다 농사꾼들의 항심과 뚝심을 나는 존경한다. 항상 돌아가는 일이 어수선하고 수매값이 성에 차지 않아도 그들은 땅 한 번 놀린 적이 없다. 한결 같은 그들의 항심과 노고에 성호를 긋고 미소를 짓는다.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썩 좋아 강복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논배미에서 물러 나와 차에 시동을 건다. 오늘도 7월 소나기 축제를 제법 잘 한 것 같아 필연 저녁밥이 달고 잠은 곤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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