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귀 / 강연희
붉은 해가 동녘 하늘에 걸렸다. 아직은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둥근 열덩어리는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돋을볕이 강렬하다. 해돋이 때 비치는 빛, 햇귀와 해 주위에 띠를 이룬 햇무리가 눈부시게 찬란하다. 사방으로 뻗어가는 햇살의 좋은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 본다. 햇물은 태양의 후광처럼 보인다. 무수 무량의 부처님의 후광처럼 느껴진다. 햇무리를 본 게 부처님의 가피加被는 아닐까. 상서로운 징조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동안 달무리는 많이 보았지만 햇무리를 보는 일은 드물다. 어제 겨울의 절정을 향해 서두르는 보슬비가 온종일 내렸던 까닭인가 보다. 햇물을 보게 되어서 행운이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태양의 존재를 그동안 너무 무심히 대했던 것 같다. 태양은 시련과 고통의 어둠을 밀어내면서 세상을 비춘다. 햇빛은 음지를 양지로 이끌어주는 힘이 있다. 자신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하며 온 우주를 빛의 세계로 밝혀주는 태양은 찬연하다.
희망을 품은 해를 본다. 오늘따라 유별나게 해가 밝다. 햇살은 온기를 품는다. 초겨울의 싸늘한 날씨와는 사뭇 다르다. 춥지 않은 날씨가 더없이 고맙게 느껴진다. 햇빛의 에너지는 희망을 선사한다.
햇빛은 사위를 비춘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 나무와 숲에, 파도가 일렁이는 바닷가에, 희망이 샘솟는 학교 운동장에 사념 없이 비춘다. 아무런 대가 없이 온 세상을 비추며 천지에 따스한 기운을 내뿜는다. 계절마다 내리쬐는 햇빛은 절기에 필요한 자양분을 선사한다. 햇빛은 만물을 풍성하게 돋우는 에너지이며 은혜로운 빛이다.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치르고 있는 작은딸에게도 햇살이 가득 내려주기를 바란다. 고사장을 향하는 딸을 힘껏 안아주었다. 풋풋한 딸의 체취가 코끝에 와 닿는다. 제법 성숙한 숙녀의 향기가 느껴진다. 일 년 동안 최선을 다해 달려온 딸에게 행운의 여신이 용기와 힘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딸은 작년에 이어 또 시험을 치른다. 필기고사에는 합격했으나 수업 시연과 통합 면접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딸은 방황했다. 긴 시간 동안 자신과의 싸움으로 힘겨워했던 딸을 보며 가슴이 아려온다. 늦둥이로 태어나서 마음 다칠 일이 없었던 딸이다. 엄마가 그랬듯이 교사가 되어 바른 인성을 지닌 제자들을 키우고 싶다고 한다.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귀한 일은 없다며 교사의 길을 선택하고 싶다고 했다.
농사 중의 으뜸은 자식 농사라고 한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부모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사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는 하지만 자식의 일은 부모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될 일이다. 자식이 원하는 바를 존중하며 부모는 욕심을 내려놓고 기다려야 한다. 자식 농사가 만사 중에 가장 어려운 일임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안타깝지만 부모로서는 욕심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농부가 지닌 무욕의 낮은 자세로 하늘이 만들어주는 튼실한 열매 맺기를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저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제 역할을 잘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과분한 욕심을 버리고 작은 기쁨에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가 누군가를 위해 가녀린 어깨를 내어줄 수 있다면 세상이 더 따뜻해지고 살만할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무수히 많은 인연과 관계 맺으며 살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한 생을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과 함께 오순도순 서로의 어깨를 감싸주며 살아가는 시간을 기다려 본다.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고 따사로운 햇볕을 받은 나목들은 숙연하다. 이층 카페 차창 밖으로 길게 늘어선 나무들이 보인다. 건물 담장을 둘러싼 메타세쿼이아 나무에 시선이 가닿는다. 세파에 흔들림 없이 꼿꼿이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다가올 새봄의 희망을 읽는다. 자존감이 큰 나무인 듯싶다. 흐트러짐 없는 자태를 잃지 않기 위해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였을 터이다. 나무의 가늘고 여린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따사롭다.
햇빛을 받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한 뼘은 더 성장할 듯싶다. 햇빛은 사랑의 기운이다. 나목은 남은 계절의 냉혹한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터이다. 따스한 기운을 굵은 둥치 속으로 꽁꽁 숨겨 둔다. 겨우내 저장했던 온기를 조금씩 내밀며 생존해 갈 것이다. 겨울나무의 푯대를 안으며 의연함을 잃지 않으리라. 나무는 잘 살아낸 연륜의 테두리를 몸속 깊이 남겨 둔다.
겨울나무는 언제나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찬란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 침묵한다. 꿈과 희망은 유효기간도 없고 자격 제한도 없이 무한하다. 꿈은 이루려고 노력하며 생각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 지닐 수 있다. 커다란 생각의 힘으로 꿈을 이뤄 나가리라 믿는다. 봄이 오면 겨울나무에서 생명의 새순이 얼굴을 내밀 듯이 말이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하늘을 향해 이등변삼각형의 수형으로 균형을 맞춰 안정된 자태로 서 있다.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우듬지가 밑동보다 가늘다. 키가 커서 멀리서도 눈에 띄는 나무이다. 높이 솟은 만큼 여느 나무보다 먼저 온몸으로 햇빛을 끌어안고 있다. 햇살을 품은 나무는 조금씩 높고 단단한 나무로 성장할 것이다. 나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믿음이 간다.
겨울나무는 생명의 싹을 틔우는 시간에서부터 든든한 뿌리로 성장할 때까지 햇빛을 품는다.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듬직한 나무로 성장한다. 나이를 몸속에 숨긴 채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며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다. 겨우내 붉은 희망을 품고 봄을 기다리며 침묵했다.
언제나 묵묵히 떠오르는 해처럼 딸에게 가없는 사랑을 품고 싶다. 햇귀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같이 느껴진다. 부모는 눈을 감을 때까지 자식의 모든 것을 기다린다. 어쩌면 삶은 기다림의 연장선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내일을, 올해는 새해를, 이별은 만남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때로는 기다림이 약이 되기도 한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하늘을 향해 꿋꿋이 서 있다. 그 나무 위로 햇살이 포근히 감싸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