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보집 아이 / 김봄

어릴 때 우리 마을에 엿장수 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할아버지와 아저씨 부부 그리고 내 또래의 아이 경수가 살았다. 할아버지는 청각장애를 가졌고, 아저씨는 말을 할 때 한쪽 입가가 심하게 위로 올라가 언어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장애가 있었다. 아주머니는 생활하는 데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의 소아마비 장애인이었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장애가 없는 식구는 어린 아들인 경수였다.

외형상으로는 온전하지 못한 가족 구성원이었지만 그들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며 동네에서 제일 먼저 굴뚝에서 연기나는 집으로 기억할 만큼 부지런했다. 무엇보다 달달한 엿을 언제든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경수가 참 부러웠다. 아저씨 부부는 낮이면 어느 곳으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엿을 팔러 다녔고, 날씨가 궂은 날에는 집에 머물렀다. 아저씨 부부가 집에 있으면, 엿 사 먹을 생각에 없던 고물도 생길 것 같아 괜스레 좋았다.

동네에 엿장수 집이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옆 동네 아이들마저 부러워했으니 말이다. 집집이 못 쓰는 농자재나 낡은 가재도구들에서 분리된 고철이나, 유리병과 고무를 모아 두었다가 양이 좀 되면 엿으로 바꾸었다. 아저씨는 눈대중 저울로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 엿을 떼어 주었다.

어린 눈에 널찍한 사각 엿 모판이 방을 메울 만큼 크게 보였다. 엿칼로 툭툭 쳐 떼어내는 소리에 어깨가 들썩이고, 입안에서는 이미 침이 고였다. 아저씨는 그런 나를 보며 맛보기로 파치를 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냉큼 받아 입속에 넣기에 바빴다.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 엿을 씹어 생긴 단물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그 정도로 기막힌 맛에 엿은 최고의 군것질이었다.

엿 맛을 보고 나면 입이 더 감질났다. 엄마가 달챙이 놋숟가락으로 감자 껍질을 벗기거나 가마솥에 누룽지를 긁어모을 때마다 저것이 어서 무지러져 엿이 되기를 바랐다. 댓돌 위에 놓인 할머니의 멀쩡한 고무신이 생채기라도 나서 그곳으로 들고 가는 상상을 했다. 밑이 은색으로 닳은 애먼 양은 세숫대야는 엄마 몰래 내동댕이 수난을 겪기 일쑤였다. 여하튼 간에 그것들이 엿이 될 날을 호시탐탐 노렸다

하루는 온 집을 헤매어도 엿으로 바꿔 먹을 만한 고철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창고에 방치되어 있던 할머니의 쇠 요강이 타깃이 되었다. 뒷일은 나 몰라라 하고 혓바닥의 달달한 호사로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신이 난 하루를 보냈다.

영원한 비밀로 하자던 일은 엿 조각을 누구보다도 입속에서 오래 녹혀 먹던 막냇동생의 고자질로 들통이 나고 말았다. 당장 가서 찾아오라는 할머니의 불호령에 주춤거리며 엿장수 집으로 갈 때, 발걸음이 천근만근과도 같았다. 얼굴에 창피함을 깔고 손을 어색하게 꼬고 있었더니 경수는 예견이라도 한 듯 배시시 웃으며 몰래 요강을 내어 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어서 경수는 누가 무얼 들고 왔는지 아는 것 같았다.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누가 볼세라 얼른 자리를 피했다. 냅다 뛰다가 슬쩍 돌아보니 경수가 어서 가라고 손짓을 하는데 또래라서 자존심이 더 상했다.

경수 할아버지는 큰 고철이나 고물이 들어오면 마당가에서 저울 재는 일을 했다. 어른들은 엿장수 집을 말할 때 ‘별보 집’이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별칭이 ‘별보’였다. 개구쟁이 또래 아이들은 왜 별보인지 무척 궁금해서 주위에 물어보면 예전부터 그렇게 불렀다고만 말하지 의문을 해소해 주지는 못했다.

동네 아이들은 짐작으로 할아버지가 작은 체구에 얼굴은 쭈글쭈글 주름으로 덮여있어 못생겨서 별보라고 부른다고 단정지었다. 그래서 귀가 들리지 않는 할아버지가 보일 때마다 ‘별보’ 라고 부르면서 도망을 쳤다. 할아버지는 그러든가 말든가 신경 쓰지 않고 묵묵하게 일만 했다.

그날도 우리는 골목을 지나가다가 할아버지가 보이자 “별보다!” 큰 소리로 말해 놓고 줄행랑을 치는데 뒤로 검정 고무신 한 짝이 잽싸게 날아왔다. 그리고 경수의 힘찬 한마디가 따라붙었다.

“너거는 바보들이네. 별보가 무슨 뜻인고 아나? 별처럼 아름다운 보석이라는 뜻이거든.”

못생겨서 별보라고 확신했던 우리는 처음으로 들어 보는 고급 진 해석에 호되게 당한 느낌이었다. 정말 그런 뜻이라면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별보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부를 수가 없었다.

그 다음 해 가을, 학교에서 돌아와 드디어 못 신게 된 할머니 고무신을 들고 촐랑거리며 엿장수 집으로 갔더니 마당에 짐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경수는 입이 삐죽 나와서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나는 경수와의 이별보다는 엿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슬퍼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어디선가 소식을 듣고 이내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는데 하나같이 표정이 침울했다.

마당의 짐이 트럭에 마저 실리고 바퀴가 돌아 우리 곁을 스쳐갈 때 왜 닭똥 같은 눈물이라고 표현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짐칸에 실려 손 흔드는 경수 옆으로 어긋지게 실린 엿판이 비포장 돌부리를 넘을 때마다 작별 인사를 하는 듯 들썩거렸다. 모퉁이를 돌아설 즈음에 경수가 우리를 향해 목청껏 외쳤다.

“야, 이 별보들아, 잘 살아라!”

엿장수 집 굴뚝 연기도 멈췄고, 찰그락거리던 엿 가위질 소리도 사라졌다. 텅 빈 마당에 우뚝 선 감나무만이 시간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동안 단맛을 훑은 자리는 참으로 크게 느껴졌다.

가을 밤하늘에 별이 총총거린다. 별만 보면 그때의 경수가 생각난다. 경수는 지금 어느 곳에서 살고 있을까. 별처럼 빛나는 보석으로 살고 있기를.

profile